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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산에 가고 싶은 마음

by 웰빙원 2026. 2. 21.

[411] 산에 가고 싶은 마음

 

 

질문: 산에 가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래서 주말이 되면 가족도 버리고 무작정 산에 가게 되는데 왜 이렇게 산에 가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드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살다가 어려운 일을 당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왜 어려운 일을 당했느냐 하면 우리가 잘못 살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입니다. 살다가 잘못 살게 되면 어려운 일을 당합니다. 당하면 이것이 많이 어렵게 되면 누구의 도움을 받기 시작을 합니다. 내 혼자는 안 되니까 도움을 받는 중에서 어떤 사람이 교회 가자 하든지, 어떤 사람이 절에 가자 하든지, 어떤 사람이 저 도인한테 가자 하든지, 어떤 사람이 기 수련 하러, 마음 수련 하러 가자든지, 어떤 사람이 산행하러 가자든지, 또 어떤 사람은 하이킹이 좋더라 가자 이렇게 하고 다 잊어버리고 가자 이러고 간다든지, 어떤 사람은 나물 캐러 한번 가보자고 합니다. 어디 한때는 돌 주우러 가자고 그랬습니다. 돌, 즉 수석 말입니다. 난바람 불 때도 있었고 수석 바람이 불 때도 있었습니다. 수석이 먼저 왔고 그다음에 난이 수준이 좀 높으니까 돌 줍는 것은 수준이 좀 낮을 때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요렇게 저렇게 끌고 갑니다.

끌고 가는 중에서 산도 하나입니다. 교회 가는 것이나 산에 가는 것이나 똑같은 리듬이 있었습니다. 만일 산에 데리고 간 사람이 가면서 산을 오르며 좋은 대화를 나누면서 역할을 해 주었더라면 진짜 좋은 산이었겠지만, 그냥 산에만 데리고 간 것입니다. 교회에 가서 목사님이 나한테 진짜 세상을 살며 잘못 사는 것을 일깨워 주고 바르게 살게 해 주었다면 그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없고, 절에 가니까 절에 중생들이 있습니다. 스님이 이렇게 아주 잘못 살아서 어려워진 것을 이제 바르게 잡아보고 잘 살게 이끌어 준다면 굉장히 잘 간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이 산도, 교회도 마찬가지고 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가서는 산에 오면 이렇게 좋다며 공기가 좋다는 말만 하면 내가 지금 잘못 사는 것은 안 알려 주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니까 하느님을 안 믿어서 그런 것이라며 하느님을 열심히 믿으라고만 하고, 주여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준다고만 했으니 내가 지금 잘못 사는 것을 안 가르쳐 준 것입니다. 지금 이런 식으로 전부 다 내가 잘못 살아서 어려워졌다는 것을 잘 풀어서 내 근기에 이해되게 하여 인생을 잘 사는 길로 이끌어 준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까 어떻게 되느냐 하면 절에 가도 내 몸은 낫고 교회에 가도 내 몸은 낫습니다. 산행을 해도 내 몸이 낫고 자전거를 타러 가도 내 몸이 낫습니다. 어려울 때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려움에 고통스러울 때, 마음이 어려울 때 그럴 때도 여기 가면 낫고 저기 가면 낫고 여기 가면 낫고 저기가 낫습니다. 왜냐하면 리듬을 바꾸어서 여기서 고민하고 곰삭히던 시간을 빼서 요렇게 좀 하다 보니까 이것이 풀려버립니다. 산행을 요렇게 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에 빠져 있지 않고 끌어내 버렸으니까, 해소시키니까 이것이 나아버립니다. 교회도 그러하고 절도 그러합니다. 똑같은 원리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이렇게 나았다가 보니까 삶을 잘못 살아온 것, 이런 것을 바르게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건강은 좋아졌는데 '건강 좋아지는 데는 산이 최고더라'라고 누가 그것을 자꾸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산을 자꾸 다닙니다.

다니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하면 또 집에서 살살 끓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이제 건강이 좋아졌으니 우리 저쪽 놀이 동산에 좀 놀러 가면 안 되느냐고 하면 '너희끼리 가라 나는 산에 간다'라고 합니다. 똑같은 것입니다. 내가 하이킹이나 이런 것을 하다가 좋아진 것에 빠졌고, 또 이것 외에는 안 봐줍니다. 그러면 교회 가던 사람도 똑같습니다. 오늘 주일이라서 교회 가야 한다고 하며 너도 교회 가자고 합니다. 그러면 '나는 안 갈래'라고 하는데도 가야 한다고 고집하며 내 고집대로 또 가야 합니다. 또 절에 가자고 자꾸 그러니까 가족들이 자꾸 멀어집니다. 이제 다시 아픔이 다른 것으로 다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요렇게 해서 산에 계속 다니는 사람은 이제 고집통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절에 가는 사람도 고집통, 교회에 가는 사람도 고집통이 생깁니다. 이제 고집통이 만들어집니다. 이것이 시간이 더 가면 뿔통이 됩니다. 똑같습니다. 하이킹 고집불통, 산행 고집불통 이렇게 되니까 고집불통하고 가족들하고 안 맞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 깊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다시 아팠던 사람은 다른 것이 다시 아파 옵니다. 산행을 하는데도 다시 아픔이 온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산에서 못 낫습니다.

그러면 교회에 이렇게 다니던 사람도 어려운 것이 풀렸었고 내 아픈 것이 풀렸었는데 다른 병이 또 옵니다. 절에 갔다가도 다른 병이 또 옵니다. 왜냐하면 네가 안 고쳤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원리를 바르게 알고 그것을 공부해 가지고 너를 바로 고친 게 아니고, 네가 그렇게 방향을 틀어서 노력을 하니까 일시적으로 풀어 준 것인데 이것을 방편으로 풀어 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또 고집이 생기고 자기 버릇이 안 바뀌니까 또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픔이 또 옵니다. 우리가 산행을 하는 것이든 교회를 가는 것이든 이런 것은 똑같은 논리로 우리에게 작용된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든지 어려움에 부딪힐 때는 리듬을 한번 바꿔 주십시오. 그러면 그 어려움은 풀립니다. 바꿔주면서 나의 공부들을 열심히 하면 두 번 다시 어려움이 안 옵니다. 그런데 나의 공부는 안 하고 리듬만 바꿔놓고 그 짓을 계속합니다. 또 그렇게 파고들면 나중에 어려움이 또 옵니다. 요럴 때는 또 리듬 바꿔주면 좀 낫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조금 지나면 이제는 좀 빨리 아픔이 옵니다. 요런 식으로 계속 우리는 그렇게 하다가 몇 번 그렇게 하고 나면 이제는 리듬 바꿔 주는 것은 안 됩니다. 요런 큰 아픔이 왔는데 이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국민이 전부 다 이 병이 걸린 것입니다. 조그만 것들은 여기 가서도 풀고 저기 가서도 풀고 산에 가면서도 풀었는데, 다시 어려움이 오는 아픔은 누구도 못 풀어주고 있습니다. 목사도 못 풀어주고, 스님도 못 풀어주고, 산신도 못 풀어주고, 못 풀어줍니다. 산의 힘도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이킹을 아무리 해도 네 다리만 아프지 안 됩니다. 페달 밟는 것이 잠깐은 풀어주지만 완전히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지금 다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어려워지는 아픔 말입니다. 너무 방편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노력을 하고 깨달으려고 하는 그러한 정법을 너희들이 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정법은 네가 왜 어려워졌는지 공부를 하려고 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이든지 전부 다 낫게 됩니다. 어떤 것도 낫게 되어 있습니다 정법은. 이것으로 나은 것은 두 번 다시 어려움이 안 온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정법으로 가야지 사도는 안 됩니다. 이것은 방편일 뿐이었습니다. 잠깐씩 풀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정도로 우리는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해가 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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