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예전에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자식이 출세를 하면 '개천에서 용 났다'고 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사회구조상 어쩔 수 없는 결과인지,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보세요.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것은요, 우리가 그걸 배운 것이지만 그것은 기존의 서는 겁니다. 상민과 양반이 있는 시절, 글을 배울 수 있는 조건이 없는 데가 있지요. 상민들이고 뭐 사는 집이 아니고, 사대부고 글을 배울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데가 있습니다. 요런 데서는 그걸 다 배울 수 있는 조건이 있으니까 이렇게 하면 그걸 또 알 수 있고 이렇게 하는데, 조건이 안 좋은 데서도 아까처럼 노력을 해가지고 그런 걸 뛰어넘으면 용이 난 거죠. 조건이 같은데도 더 잘 되기도 힘든데, 조건이 안 되는 데서 더 잘 되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문제는 여기서 이제 묘한 비유를 내가 하나 해 줄게요. 여러분과 스승님의 차이입니다. 여러분들은 부모님도 있고 아주 그 조건이 좋았어요. 어릴 때부터 어떤 사람은 샌들도 사 준 사람도 있다고 하고, 또 이렇게 뒷바라지해서 밥도 다 해주고 했습니다. 스승님은 네 살 때부터 내동댕이쳐져서 아주 조건이라는 것이 전혀 없이 해서 던져놓은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을 크게 준 것도 아니고, 행적을 잘 이렇게 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줄 사람도 없고, 가정이 가정생활을 나한테 가르쳐 준 조건도 안 좋았고, 모든 이게 부모와 자식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이런 걸 아무도 나한테 보여준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오늘 지금 어떤 사람이 됐나요. 선생도 아닌 스승이 되어버렸어. 박사들이 가르침을 받으러 오고, 뛰어난 선생들이 가르침을 받으러 오는 이런 스승이 되어버렸다는 얘기죠, 고아로 자란 사람이. 내 자랑하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고 뭐를 이야기하느냐 하면, 배움은 어떠한 조건에서도 배우게 해 놨다는 겁니다. 우리가 배움이란 게 뭔지 기준을 잡지 못했다는 거죠. 배움이라는 것은 책을 많이 볼 수 있는 조건을 줘서 배운 게 아니고, 책을 한 개도 안 줘도 내 생활 속에서 너는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이 어떤지 갖추어 갖고 준다는 사실이거든요.
책을 봐야만 물리가 일어나고 분별을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람은 내 앞에 어떤 것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 책이에요. 지금 즉 부유한 집안에서 볼 수 없는 것까지 내가 다 보았다면 나는 엄청난 지식을 갖출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추워서 몸소 겪었다면 이것은 내 몸이 실험 도구가 되어 연구원이 되어 있는 거예요. 아주 척박한 환경을 주어서 내가 몸소 거기에 들어갔다면, 이 몸으로 나는 전부 다 체크를 해 가면서 배운 것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았을 뿐이지요.
조건이 좋은 데서 공부하고 한 사람은 그런 걸 모르잖아요. 그런 책을 못 받은 거죠. 스승님 보고 어떤 사람은 그래요. "어떻게 공부도 안 하는 분이 이걸 다 아느냐"라고 그러거든요. 공부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 아느냐고, 세상에 그런 법칙이 어디 있느냐고, 공부도 안 했는데 우리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유학도 갔다 오고 그렇게 노력을 해서 다 아는데, 어찌 스승님은 공부도 하나도 안 하신 분이 우리가 대항할 수 없을 만큼 논리를 갖다 대어 가지고 어떻게 뭔가 허점을 찾아보려 해도 그 앞에서는 낙엽이 되느냐 이거죠. "그거 때문에 나는 환장하겠습니다"라고 하거든요.
이 미친놈아. 어찌 노력 없이, 어떻게 공부를 안 하고 선지식이 되느냐. 어찌 네가 하는 것만 공부라고 생각을 하느냐 말이야. 어찌 그런 편파가 있어. 네가 하는 방법대로 하는 것만 공부라고 생각을 하느냐. 아주 밑바닥에서 이렇게 모든 사물을 보는 것은 공부가 아니더냐 이 말이야. 공부의 방법은 수없이 많습니다. 우리는 조건을 주어지지 않아서 나는 공부 못 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너는 멈추게 되는 거라. 어떤 사람한테는 어떠한 조건도 다 같이 준 거예요. 너는 이런 조건을 줬고 나는 이런 조건을 준 것이지, 이 조건 안에서도 이거보다 월등히 훌륭한 분별력을 가질 수 있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어요.
나는 그 속에서 배우지 않았고 세상 사물에서 나는 공부를 한 사람이고, 내 앞에서 스치는 아픔 한 개도 그냥 버리지 않았다 이 말이죠. 모든 걸 이렇게 흡수하고 거두어서 나는 내 공부로 삼은 거죠. 그 사물을 분별하는 게 틀리게끔 지금 내가 갖추어진 겁니다. 그 우리가 그 용어를 조금 정리를 해야 될 겁니다. 그렇다면 섭섭하죠. 개천 없어요. 개천에서 용 나는 게 아니고 개천이라는 데 없다는 얘기입니다. 환경은 주어졌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그렇게 편파적으로 운용하지 않았다.
용어를 조금 바꿔야 될 겁니다. 하나님은 너한테 딱 맞는 조건의 환경을 주었고, 너한테 딱 맞는 조건의 환경을 주었을 뿐이지 네가 미워서 나쁜 조건에 나게 하지 않았다 이 말이죠. 요런 분별력을 요렇게 만들어 우리한테 주입시키는 바람에 나는 낙심을 해버리도록 했고, 너는 자만을 갖게 해서 너를 멈추게 하고 더 이상 성장이 안 되고 있다 이 말이죠. 어떻게 조건이 더 좋단 말이냐. 설탕 속에 파묻어 놓으니까 조건이 더 좋아라, 그러면 아주 씀바귀 같은 데다 파묻어 두는 그 조건이 나쁘다 이 말이냐.
여기도 한 조건, 여기도 한 조건이에요. 너는 여기서 불만을 하지 않고 어떻게 이 안에서 나한테 준 조건을 전부 다 흡수를 하고 성장을 하느냐, 아니면 불평을 하고 멈추고 있느냐, 요거 차이입니다. 이 사람은 어떠한 조건에도 불평하지 않았고, 그 차이가 지금 나고 있는 거예요. 개천에서 용 나는 부분은 없습니다. 거기에도 하나의 세상이에요. 여기도 하나의 세상. 이 세상의 색깔이 조금 틀릴 뿐이지 내가 성장하는 데는 전부 다 자기한테 맞게끔 줬으니까 그 자리가 제일 좋은 자리예요. 내가 노력을 할 줄 모른다면 내가 성장하지 못하는 건 똑같습니다. 그렇게 부잣집에 조건 잘 줬다고 해서 이 사람이 거듭나느냐, 아니거든요. 이해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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