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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8,3629] 공부 중 자존감, 자신감이 떨어지는데 공부 과정인지(1,2)

by 웰빙원 2025. 11. 18.

스승님이 자꾸 가르치는 것을 듣다보니 나를 자꾸 낮춰야 하고 겸손해야 하고 이렇게 가져간다. 겸손이 뭔지를 공부해야 되는데, 겸손이란 개념을 내가 생각하는 개념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겸손이란 상대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나만 잘난 아니고 상대도 났다. 만약 내가 진짜 잘났으면 잘난 값을 해야 한다. 내가 진정 잘났다면 남보다는 뜻있고 보람있는 일을 하고, 남들이 없는 질량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 돈을 가진 사람이 질량 있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질량 있는 사람이 된다.

잘생긴 사람이 못생긴 사람보다 질량 있는 맞다. 잘생긴 자체가 질량이 있는 것이다. 잘생긴 사람은 사회에 그만한 일을 하면 내가 어렵게 살아야 한다. 생긴 사람은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아도 괜찮다. 잘생긴 사람이 허드렛일 하고 있으면 뭔가 잘못된 것이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잘난 사람은 사회에 그만한 질량으로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상대한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럼 상대가 나를 존중하고 나를 존경한다.

내가 겸손하라는 것은 무슨 소리냐면, 내가 아무리 잘생기고 질량이 높더라도, 사회에 것이 뭐가 있느냐? 사회에 것도 없는데, 사람들이 너한테 질량 있는 삶을 살도록 에너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오산이다. 누가 나한테 대접을 해주고, 존경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생각이 오산이고, 생각이 건방진 것이다.

내가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고 있으면, 이는 자동으로 오는 것들인데, 내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상대들이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것이 사회에 접근하는 방법이, 겸손해라. 상대를 존중할 , 내가 겸손해진다.

예를 들어, 나는 공주과이고 내가 어떤 남자를 만났는데, 돈만 많지 아주 실력이 딸리고 못난 남자를 만났다. 살면서 내가 사람에 필요한 행위를 한다면 사람이 나를 존중한다. 그런데 내가 사람에게 필요한 행위는 하고 방법대로 안된다고 자꾸 짜증을 내면 그럼 사람이 싫어하기 시작한다. 사람이 인연을 만나는 것은 사람이 내게 필요하기 때문에 만난다. 그런데 나한테 필요한 짓을 해주고, 잘난 맛에 자꾸 나를 혼낸다. 그러니 사람이 좋겠어요 싫겠어요? 그러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다. 질량이 모자란다고. 내가 무시하면, 사람도 나를 무시한다. 나는 너가 질량이 작아서 무시하지만, 사람은 나보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질량을 못하니 잘났다고 하는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아무리 못한 사람도 존중해줘야 한다. 존중을 해줄 안이 보인다. 내가 모자란 부분을 도와주면 나를 엄청나게 존중한다.

상대를 존중하라고 하니 나를 낮추라고 착각한다. 자연이 남을 무시할 자격은 주지 않았다. 남을 존중할 자격만 있다. 도시에서 귀촌해서 농촌사람들을 무시한다. 이것이 멀어지고 담을 쌓기 시작한다. 구두 닦는 사람을 무시한다. 그럼 남이 되는 것이다. 무시는 누가 하냐? 잘난 놈이 무시한다. 결국은 잘난 놈이 외톨이가 된다. 오늘날 지금 내가 외톨이가 되어 있다.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지 못하면, 백성을 존중할 없다. 앞에 인연들을 아끼고 존중하지 못하면 존경할 없게 되어 있다. 인연을 주는 것은 굉장히 좋은데, 이를 내가 무시한다던지 가린다던지 하니 이제부터 내게 필요 없는 사람이 되고 있는 중이다. 내가 필요한 것만 달랑 얻고 나머지는 내가 무시하는 것이다.

니를 낮추라는게 아니라 상대를 알고, 백성들을 아는 공부를 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가져가니 자꾸 내가 기어야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생활로 가져가면 받친다. 그런데 공부라고 생각하고 가져가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도 견뎌내며 있는 것이다.

사회 나오는 것도 똑같다. 30 까지는 사회에 내가 공부하는 태도로 접근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 불만을 갖기 시작한다. 생활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불만인 것이다. 벌려고 사회에 나오고, 먹고 살려고 나오니, 불만을 갖고 남을 뜯게 된다. 모든 것을 공부로 접근하면 불만을 가진다. 그러니 뜯어야되고 아니다라고 해야된다. 공부거리를 주는데 답을 주는 경우는 없다. 답을 풀라고 공부를 주는 것이다. 사회는 뭐든지 그렇게 내게 접근을 해온다. 뭔가 모순있고 모자라게 나한테 다가온다. 답을 풀라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이렇게 됐는데도 공부가 이것 밖에 됐으니, 내가 직접 풀어주고 있다. 모르기는 해도 들어놓고, 모르기는 해도 들어놓고 하니, 물리가 계속 일어난다.

나중에는 종합적으로 보여서 문제가 풀린다. 이것저것 종합적으로 알아야 문제를 푼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백성들의 삶을 몰라서도 된다. 이것을 알아야 뭔가 관련된 문제가 왔을 내가 이해할 있다. 사장님이라 해서 종업원의 깊이를 몰라서는 된다.종업원을 모르고 종업원을 다루니 불만이 쌓이고 이해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공부하라 했지 나를 낮추라고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자꾸 바닥에 내려가볼 때까지 내려가보려고 한다. 내가 오행이 좋고 기운이 좋으면 사람들이 내게 도움을 받으려 온다. 그럼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만나니 내가 배워야 한다.

이렇게 겸손하게 계속 갖추고 있으면 자연이 자꾸 준다. 이것들이 에너지이다. 나는 사람과 앉아 있기만 해도 사람이 풍기는 에너지를 먹는다. 사람의 에너지를 먹으면 내가 질량이 갖춰진다. 그러니 윗사람에게는 아무말도 하고 듣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한마디 하고 싶을 때는 의논 상의하는 것이다. 주장하면 된다. 주장은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의논 드리는 수준에서 넘어가면 너가 다친다. ? 너의 에너지가 작잖냐. 내가 의논을 드리면, 윗사람이 에너지를 풍겨주는데, 이를 내가 받아 먹는 것이다.

내가 사장님한테 심부름만 해도 질량이 내가 엄청 들어온다. 내가 사모님 자꾸 만난다. 사모님 되려고 하는 것이다. 사모님이 되려면 어느정도 질량을 먹어서 무게가 된다. 사장님이 되려면 사장님과 자꾸 놀아야 한다. 사장님의 비서가 되던, 자꾸 뒷바라지 하면서 같이 있으면 에너지를 자꾸 먹는다. 에너지가 70%까지 차야 사장이 있는 질량의 무게가 생긴다. 박사를 자꾸 만나면 내가 박사가 된다. 자꾸 만나면서 질량이 차니, 이제 보이고 들리고 이해가 된다. 스스로 문리가 일어나면 스스로 모든 것이 보이고 이해가 된다.

그런 분들과 어울릴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성불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근본을 모르니 반항으로 하고 나는 심부름 시키려고 여기 데려다 놨는가? 하면서 자꾸 불평을 한다. 심부름을 시킬 같으면, 너를 옆에 놔둘 이유가 없다. 옆에 같이 있는 자체가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분들과 같이 있으면서 내가 질량이 차는 것이다.

그런데 분들이 하는 일이 나와 조금 맞다고 해서 자꾸 고개를 흔들고 불만을 품는다. 그럼 결국 튕겨난다. ? 분의 질량을 먹어서 여기에 앉을 수가 없다. 비물질 에너지를 자꾸 먹어야 한다. 비물질 에너지가 물질 에너지를 움직여 낸다.

질량 있는 사람들이 일을 바르게 하면 어렵게 사는 백성들이 명도 없어진다. 질량 있는 사람들이 일을 못하면 백성들이 어려워진다. 일을 못하는데 살려고 하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생각이야.

내가 망했으면 빨리 건방떨지 말고 빨리 나를 알아라. 에너지를 갖추는 것만이 길이 없다. 내가 갖추고 있으면 질량과 맞는 사람들이 온다. 이렇게 가야 바른 길이지, 내가 사람들을 쫓아가지 마라. 내가 지식의 질량을 갖추면 사람들이 움직여. 스스로 앞에 온다. 미국에서도 온다. 지식은 물질을 움직인다. 내가 따라가지 마라. 질량을 갖춰 놓으면 나는 절대 외롭지 않게 된다. 앞으로 미래가 중요한거지 지금 당장 젊었을 이렇다고 원하는 삶이 오는게 아니다. 젊을 고뇌하는 것은 미래에 빛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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