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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5,1066,1067,1068] 공부 - 겸손과 교만 (1,2,3,4)

by 웰빙원 2025. 11. 27.

정법강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있게 한다. 지금까지 몰라서 못했으니, 있게 알려준다. 알려주니 이해가 되면 버릇이 나빴다가 이해가 된다. 그러면 버릇을 고치는 연습을 하면 된다. 습관을 숫자화해서 100까지 잘못 습을 들였다고 치면, 30까지는 내가 바꿨을 , 자연계에서 내가 노력한다는 것을 인정해준다. 30까지 오면, 너한테 성불을 주고 기운을 달리 이끌어주고, 몸도 낫게 해준다. 그럼 30까지 가는데 걸립니까? 아니다. 하루만에도 있다. 너의 노력에 따라 달린 것이다.

내가 100 공부하겠다고 하고 노력하면 100 끝까지 가지 않고, 노력의 질량이 찼다면 30, 40, 60 만에도 성불 받는다. 너는 지켜봐야곘다 싶어서 92일만에 성불 수도 있고, 너는 간당간당하다 해서 시험지 넣어봐서 떨어지니 다시 시작하는 수도 있다.

공부의 정체. 어떻게 하면 최고 공부가 되냐?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다. 사람한테 겸손하면 AI처리로 자연이 앞에 공부거리를 들어와서 너가 스스로 공부되게 한다. 겸손은 비굴한 것이 아니다.

(대자연과 연결되지 않고 힘의 논리에 있어서 내가 욕심을 내면서 뭔가 얻으려고 비굴한 것어고, 대자연을 알고 대자연과 순응하면서 가는 것이 겸손이다. 상대를 존중할 있을 겸손이다. 내가 거지를 존중하지 않으면, 거지한테 존중받지 못한다. 이는 100% 법칙이다.)

내가 잘못된 버릇을 갖고 있다보면, 물질이 없을 겸손한 같은데, 있으면 교만해진다. 똑같이 지식이 없을 겸손한 같은데, 지식을 많이 갖고 있게 되면 교만해진다. 얼굴이 못생기면 겸손한데, 예뻐지니 고개를 빠딱 들고 교만해진다. 인성공부가 되어 있으면, 너가 힘을 가질 교만해져서, 교만함이 어느 선을 넘으니, 네게 줬던 힘을 다시 뺐는 것이 사기 당하는 것이다.

대자연이 지식인한테 돈을 주는 이유는 공부시키기 때문에 준다. 너가 지금 뭔가 공부를 해야 된다는 이야기이다. 경제를 주면 너는 경제를 벌기 위해서 노력을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한테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되고 이럴 너한테 이득이 온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지식인한테는 너가 완전히 갖출 때까지 돈을 준다. 돈을 주면 너가 지식을 갖추게 된다. 그래서 부자집 아이들이 공부가 된다. ? 돈이 많으니까. 그래서 자식이 돈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부모가 준다. 안주면 있는 준다고 반항심이 생긴다. 그렇다고 경제를 주면 애가 돈을 쓰는데 시간을 보내지 자신을 갖추는데 시간을 보내니 지식이 갖춰진다. 그래서 성장을 하고 사람 구실을 하고 산다.

공부할 때는 공부할 필요한 것만 있으면 된다. 경제는 공부할 필요없다. 지식인들은 30대까지는 열심히 공부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과 사회실습공부까지 해서 마치는 것이 30대이다. 때는 공부를 해야지. 너가 실력이 있다고 껍쩍되는 것은 교만이다. 교만을 떨다가 어려워진다. 보통 20대에 교만하다. 그래서 30 후반에 떨어진다. 그래서 평생을 힘을 쓴다.

최연소 과장, 최연소가 결국 그렇게 된다. 사람들이 50 되어서 어떻게 사는지 봐라. 사람들은 50 되어서 힘을 쓰고 평생 20,30 시절 이야기하면서 어렵게 산다. 교만 속에서 너가 바르게 갖추지 못했다.

너가 바르게 갖추면 절대 하늘이 가만히 두질 않는다. 바르게 갖춘 사람은 항상 대접받으며 살고 절대 어렵게 살지 않는다.

30대까지 공부를 사람은, 40대에 시험을 친다. 어떤 시험? 실력을 끌어낼 있는 환경들이 생긴다. 대자연이 40대에 너가 실력을 끌어낼 있는 환경에서다 배치를 해준다. 그래서 거기에서 바른 실력이 나오면, 이들을 선별해서 CEO, 리더 등의 힘을 준다.

남을 탓한다? 너의 실력이 없어서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못난 사람이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모르고 있다. 지식을 갖춘 사람은 절대 남탓을 하지 않는다. 남탓하면 절대 신들이 너를 돕지 않는다. 만약 신들이 너를 도왔다. 신들은 바로 잡혀간다. 이것이 정법시대이다.

지식인들의 총체적 문제가 분야의 지식을 채웠는데, 이를 어떻게 써야할지를 모른다. 것을 빛나게 쓰진 못하고 남의 것을 보기 시작하면서 탓하기 시작한다. 남의 것은 내가 탓할 있는 것이 아니고, 남의 것을 내가 공부를 했기 때문에 사람의 심정을 모르는 것이다.

나의 소질은 너가 뒹굴며 놀아도 스스로 소질이 개발이 된다. 수학 소질이 있다면, 매일 극장가서 놀고 수학은 한달에 2번만 봐도 남들보다 월등히 수학을 잘한다. 이것이 소질이다. 장사소질 있는 사람은 장사 공부 해도 장사를 월등히 한다. 고함을 지르는데 소질 있는 사람이 있다. 이도 상대의 기를 꺾을 있는 소질을 갖고 있는 것이다. 시중들고 아부 떠는 것도 소질 중에 소질이다. 아부를 못하는 사람은 돈다발을 건네줘도 아무 한다.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자기 실력을 갖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상대의 것을 이해 하는 것이다. ? 나의 소질만 개발시키고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나의 소질을 개발할 때는 혼자 가도 된다. 그러나 나의 소질을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지금 시대는 나의 소질을 써야되는 시대이다. 쓸려고하니 상대에게 적용이 되는 것이다. 것만 알고 상대를 모르니 이해를 시키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소질을 갖추는 이유는 결국 상대에게 쓰기 위해서이다. 부분의 공부를 우리가 못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를 바르게 정리해서 우리도 공부하고 앞으로 자손들도 바르게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몫이다.

소질을 상대가 이해되게 쓰려면, 상대를 알아야 한다. 소질 갖추는데만 애를 썼지, 상대를 알려고 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력을 쓰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막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받아온 소질, 강점은 알아서 개발된다. 소질이 아닌 분야를 노력해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공부는 나의 소질이 아닌 것을 공부하는 것이 노력이다. 모르는 분야를 내가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

너가 너의 소질이 아닌 분야는 아무리 노력해도 30% 이상 알지 한다. 소질은 아무리 노력해도 70%까지 밖에 못한다. 그래서 소질 70%에다가 다른 분야, 내가 노력해서 갖춘 것들 30% 와서 100%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르게 성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장하면 소질이 개발됐을 , 상대를 만나니, 상대 역시 나와 똑같이 자신의 소질을 갖춰서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끼리끼리 만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것을 나한테 이야기하니 70% 갖춘 사람이 나한테 정리해서 이야기를 한다. 나는 동안 분야를 갖추려 노력했으니 상대방 분야에 대한 30% 이미 알고 있다. 여기에 상대가 자기에게는 하찮은 것이지만 자기 분야를 이야기하면 상대가 이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지도자 공부이다. 모든 분야를 30% 상대가 하는 말을 이해할 있게 되고, 사람이 이해되게 설명할 있게 되고, 소질을 있게 된다. 그래서 소통이 일어나게 된다.

상대를 모르면 나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상대는 도저히 이해가 가는 것이다. 그래서 소통이 일어난다. 부부가 말이 통하냐? 상대의 소질을 서로 공부를 안하고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분야를 알려고 노력 안했으니, 나를 모르니 내가 이해되게 말할 없는 것이다. 내가 사람을 알려고 노력 했으니, 내가 사람이 이해되게 말할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소통이 되기 시작하니, 불통이 일어나고 집안이 힘들기 시작한다. 내가 자식을 모르니, 자식한테 이해가게 설명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불통이 일어난다.

소질은 스스로 갖춰지고, 소질이 아닌 분야는 내가 노력해서 갖춰야 한다. 자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니, 분야가 아닌 것이 갖춰지게 되는 것이다. 자식이 내게 말을 하는데 자기 소질을 기준으로 말을 한다. 나는 노력해서 자식의 소질을 갖춘 있으니, 이제 자식이 이렇게 말하는지를 이해하게 되는 원리이다. 상대방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면서, 것만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느냐는 것이다.

상대방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다면 대가를 얻으려하지 마라.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선천 시대는 법칙을 도출해서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실험들을 해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사회문제, 세계문제는 소질들이 모여서 융합해야지만 풀어나갈 있는 질량의 문제인데, 아무런 소통이 일어나니, 아무 사회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다.

정법강의를 생각해봐라. 너희들 분야가 아닌 것도 전부 안에 넣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소질은 너가 들어도 이해가 되는데, 분야가 아닌 모르는 분야는 열심히 들어서 갖춰라. 이것이 노력이다. 분야가 아니고, 이해가 가는 것을 열심히 들어라. 이것이 노력이다. 분야가 아닌 것은 이해가 가게 되어 있다. 부분들을 많이 들으려고 노력해라. 듣다보니 이해가 조금씩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하면 이해 가던 것이 이해가 간다. 그러니 상대가 다가와서 내게 하는 말이 이제 이해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키를 잡아보면, 내게 누가 와서 이해가 소리들은 한다? 이는 100% 공부이구나.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공부이고, 이것이 신께서 내게 갖다준 선물이다. 사람이 내게 이해 못할 말을 하는데, 실상은 사람은 내게 정성껏 말해주고 있는데, 내가 모자라서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들어놔라. 내게 선물을 가져온 것이다. 어떤 사람이 와서 이해 못할 소리를 하면 받아놓아라. 이렇게 받아놓다보니 저번에 사람이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가게 된다. 이런 실력이 없었던 것이다. 너가 이해 되는 것만 들으려 하지 말고, 이해 되는 것은 유독 들으려고 해라.

인연들이 내게 때는 4:3:3으로 온다. 내가 이해되게 오는 것이 40%, 이해가 될듯 말듯 오는 것이 30%, 이해가 아예 되는 것이 30% 온다. 그러니 주는 것을 겸손하게 받아라. 이해 된다고 들고 차지 마라. 이것을 내차면 너는 너의 복을 내차는 것이 된다.

금을 너가 갖고 있어도 질량이 안되면 못쓰고 집안에 둔다. 결국 나중에 도둑이 오던지, 자식이 도둑이 되던지, 사고를 내서 손으로 직접 들고 나오게 한다던지 해서 이동하게 된다. ? 너가 못쓰지 않냐? 그러니 대자연이 옮기는 것이다. 너가 돈을 못쓰고 있으니 사기꾼이 와서 가져가게 한다. 대자연은 너가 쓰면 주고, 잘못쓰면 뺏어가서 다른 쓸만한 사람한테 준다.

우리가 이해가 안되는 30% 겸손하게 받아놨을 , 다른 30% 이해과 될지 안될지 하는 부분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해될지 말지 하던것이 이해되는 40% 옮겨가고, 아예 이해 되던 것은 이해될지말지로 옮겨오고, 이해가 되는 새로운 재료들이 온다. 이렇게 너의 실력이 갖춰지는 것이고, 분별을 하게 되괴 세계를 알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내게 소리를 하는 사람도, 이유없이 내게 달려드는 사람도, 내게 축복을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유 없이 것이 아니다. 이해가 되니 나도 버럭하는 것이다. 내가 잘못했다고 나한테 욕을 하냐? 이렇게 된다. 이유가 있어서 것이다. 이해 되는 것도 겸손하게 받아들여라. 그럼 이것이 너에게 영약이 것이다. 어찌 사람은 나한테 이해가 안되는 말만 하고 있냐. 너는 그것을 들어놓아야만 한다. 그래야 내가 발전한다. 이것이 자연 공부이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만 골라먹다보니 골다공증에 걸려있다. 세상을 아무것도 모르고, 상대를 이해할 모르고, 분별할 모르고 일을 처리할 모른다. 이렇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는 어려운 삶을 산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실력차이가 난다.

30대는 30대의 실력을 갖고 살아야 풀리고, 40대면 40대의 실력을 갖고 40대가 해야할 일을 하고 살아야 삶이 풀린다. 50대면 50대가 해야할 분별을 해야 한다.

나이만 50 됐지 생각은 아직 30 생각을 하는데 어떻게 50대에 너가 하는 일이 풀릴 것이라 생각하느냐. 이래서 너는 멈추어 있기 때문에 막혔다가 된다. 나이가 들어가는데 성장 못하고 아래에서 막혀있다. 50대에는 정확히 대자연이 50 일을 주는데, 30 정신연령이니 처리를 못할 밖에 없다. 그러니 계속 어려워진다. 이렇게 해서 어려운 것이다.

우리 할일을 바르게 하면 인간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존경받고 절대 외로워지지 않고 거록한 분으로 변하는 것이 인간이다. 할일을 바르게 하고 있지 못해서 주위로부터 외면당하고 멀어짐을 당하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자신을 알아야만 너의 길도 찾을 있다. 남을 모르고 남한테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남을 이해시키고 말이 들어가기를 바라느냐. 남을 위해서 노력했다면 분명히 들어간다. 노력 없이 말을 전달할 수가 없다.

글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공부를 하는 것이다. 상대를 알아야 한다. 이러한 분류가 있고 저러한 분류가 있으니 이러한 분류의 핵을 우리가 조금 만지고 공부했더라면 어떤 분류가 와도 전부다 처리할 있게 된다.

이런 공부를 하다보니 오만 분류가 섞인 곳으로 간다. 그곳이 교회이고, 절에도 가고, 도파에도 갔다. 이런 곳에 가려면 너가 힘들고 아프고 어려워야 간다. 환경에 가면 바르게 하는 것은, 너가 여기에 가면 말도 들리고 말도 들리고, 사람도 보고 사람도 보는 환경이 열릴 것이니, 이를 전부 겸손하게 받아들여라. 듣고 음직이지 말고 흡수만 해라. 그럼 너의 모자람이 채워질 것이다. 여기에만 오면 너의 모자란 분야의 공부거리에 여기에 있느니라. 서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있어서 서로 윈윈이 되게 공부하는 원리이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너는 항상 어려워진다. 이런 공부를 시키려고 집단으로 모아놓은 것이다.

상대가 말을 하는 것을 내가 온전히 받아들일 , 말이 안에서 영스러운 에너지가 된다. 지혜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상대의 말을 바르게 듣지 못하고 지혜를 얻는 법은 없다. 너가 악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기준이지, 앞에 왔다면 그냥 쓸어마셔라. 흡수하면 나중에 이것이 영스러운 에너지로 바뀌어서 너의 내공으로 쌓인다.

니가 모르는 것을 옳다 그르다 하지마라. 내가 모르는 것은 입을 대는 것이 아니다. 너가 처리할 없는 것은 너가 모르는 것이다. 앞에 있는 상대의 너에게 부치이다. 이들만이 너에게 힘을 있고 너의 모자람을 채워줄 있다.

이런 원리는 가르치고 종단에서 사람들을 그냥 빌어라, 기복해라라고만 하니까 나이는 50 됐는데 20-30 생각에 멈춰있다. 이렇게 무식해진 신도들을 이제는 군림하려고 한다. 이런 미련한 신도들 군림못하는 사람이 어딨냐. 바보가 됐는데.

대자연은 너희들이 한뜸 한뜸 자라서 사람구실을 하길 바란다. 사람구실을 하면 내가 너희들에게 하늘의 힘을 것이다. 이것이 공부이다. 공부만 열심히 해라.

 

 

질문2. 아부도 소질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체질이다보니 평생 애교와는 상관없이 살았다. 그래서 사랑 받고 원인 중에 하나가 같은데, 노력하면 30% 정도는 애교도 가능한지?

 

노력하면 30% 애교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지, 내가 직접 애교를 부린다는게 아니다. 상대 것을 비아냥 거리지 말고, 상대가 사근사근하게 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가를 알아야 한다. 내가 비아냥거리고 저것은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애교가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있냐 말이다. 이것을 하기 때문에 결과를 이뤄내는 것이다. 그런데 기준과는 맞다고 저러면 뭐하노 이렇게 하니 너의 공부가 된다. 상대를 모르는 것이다. 애교도 실력이고 소질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대쪽같은 사람도 닭살돋아라고 말은 하지만 안에 부족한 것이 있기에 30% 좋아하게 밖에 없다. 그래서 여포같은 대장군도 애교에 녹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알고 기준과 맞다고 비아냥거리지 말고, 겸손하게 행동들을 바라볼 , 흡수는 스스로 되고 있다. 억지로 분석하라는 아니다. 존중하면서 바라볼 , 공부가 스스로 된다는 사실이다. 공부는 방법을 알면 저절로 되는 것이 공부이다. 상대가 기준과 다르다고 무시하지 말고, 상대를 존중하고 반복해서 바라볼 시간이 가면서 흡수가 일어난다.

내가 사람을 존중하면 사람과 가까워진다. 가까워지면 사람이 나는 애교를 갖게 되었는지 조금씩 이야기한다. 이게 지금 애교 1:1 과외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커피 값으로 나는 지금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만나면서 듣다보니 30% 까지 질량이 차니, 이제 사람이 이해가 된다. 이제 당신하고 멀어지지 않는다. 내게 없는 재주를 사람이 갖고 있으니 같이 있게 것이다.

절대 남을 업신여기지 마라. 존중 것은 하나도 없게 대자연이 만들어놨다. 영혼 하나하나의 소질과 특성이 필요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함부러 깔보면 너가 어려워진다. 앞에 상대를 존중해라. 그러면 결국 너한테 힘이 된다. 내가 뭔가가 걸리니까 내가 불편한 것이지, 걸리는 것이 없으면 불편하지 않고 전부 내게 이로운 것들 뿐이다. 사람을 존중하라. 서로 존중할 힘이 된다.

실력이 있는 사람은 상대가 이렇게 하는지 주위 조건들을 살펴보고, 먼저 사람이 좋아하는 말부터 하면서 무안하지 않게 부분을 간접적으로 말한다. “요거는 그런 같다그러니 상대가 바로 고친다. 사람을 다스릴 때는 직설법으로 다스리는게 아니고, 옆에서 무안하지 않게 사람을 위해서 다스려야 한다. 나는 위해서 하는 것은 직설법으로 다스리는 것이고, 사람이 무안하지 않게 다스리는 것은 내가 너를 위하기 때문이다. 말에 충격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그럼 어려워지지 않을까? 이렇게 상대를 생각한다.

정신병자한테 자꾸 채찍질을 하면 정신병이 고도적으로 올라간다. 주위에서 살살 만져가면서 간접적으로 만들어가니 사람이 점점 좋아진다. 그래서 항상 상대를 위할 떄는 비유법을 쓰고, 사람이 무안하지 않게 이끌어야 한다. 직설법을 쓰면 무안해지고 상처를 받는다. 비유법을 써서 다른 것을 설명해서 이해되게 만들어준다. 효과가 사람의 정서를 바꿔놓는다.

그래서 문제해결할 때는 문제가 여기에서 보인다고 여기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려 들지 마라. 여기에는 해결법이 없다. 문제가 생기면 좌우위아래 환경부터 살펴야 한다. 사람이 이렇게 하는가를 먼저 주위를 살펴서 알아야 한다.

몸에 병이 왔을 때에는 직접적으로 병만 쳐다보지 말고, 어떤 환경이 되어서 병이 왔을까를 봐야지 명의가 된다. 이렇게 전체를 보고 근원적인 원인을 알고 치료하면 2 다시 병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눈에 거슬린다고 해서 거슬리는 것만 직접적으로 처단하면,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못해서 다음에 일이 일어난다. 눈에 거슬리는 것은 놔두고, 주변 환경을 살펴서 진짜 원인을 찾았을 , 뿌리 이를 뽑아낼 있다.

도둑놈이 있다고 해서 이놈만 교도소에 넣으면 다른 도둑이 생긴다. 도둑놈을 보면서 환경을 살피면서 근본 원인을 찾을 , 뿌리 문제를 해결할 있다.

 

 

질문3: 그런데 저희 아날로고 세대 중에서도 특히 남자들은 학창시절이나 군생활 답습되어 것이 미꾸라지 마리가 시냇물을 흐린다고 하여 두번 그릇된 행동을 반복하면 시범 케이스로 다스려 왔습니다. 이런 것은 잘못된 것이며, 이러한 행동을 고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지요?

 

미꾸라지가 아예 오려면, 환경이 만들어지면 온다. 공구리 쳐놓으면 미꾸라지 들어온다. 그러나 미꾸라지가 있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미꾸라지를 잡아도, 오게 되어 있다. 대자연의 원리이다.

미꾸라지가 환경에 들어와서 물을 구정물을 흐트려 놓는데, 아예 구정물이 없는 맑은 곳은 꼬리를 세게 쳐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미꾸라지가 와서 꼬리 흔들어준 것을 감사해해야 한다. 이제 환경을 바르게 잡을 있는 것을 찾을 있게 것이다. 현상을 보지 말고 근원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 와서 흔들어주는 것을 고마워할 아는 사람은 대인이다. 내가 수준이 낮고 그릇이 작으면,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내가 이런 사람들 오도록 환경을 만들었으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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