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인연 – 오는 자 막지 말고 가는자 잡지 마라.
일반적인 사회에서의 인연을 말해보자. 인연을 붙들어 놓는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가려고 할 때 놔주는 것이 최고 좋은 인연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이 떠나려고 할 때, 떠나게 놔두면 이 사람은 꼭 돌아온다. 제일 빨리 돌아온다. 그런데 잡았다. 잡았는데 안 떠나냐? 조금 있으면 또 떠나려고 한다. 한번 떠나려고 했던 사람은 꼭 또 떠나려는 환경을 만든다. 그래서 나중에 잡고 또 잡고 하면 결국 떠날 환경이 오는데, 이 때는 서로 원수가 되어서 떠난다.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마귀처럼 지긋지긋해지고 트라우마가 되어서 떠난다. 그래서 마음이 멀리 멀어져서 살아서 못 볼수도 있다. 맨 처음에 갈 때 보내줬으면 좋은 헤어졌으니 좋은 생각이 많이 난다.
이 사람이 왜 떠나냐? 내가 너의 욕심에 차지 않으니 떠난다. 그럼 떠나게 놔두고 좋은 환경으로 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떠나보내고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내 힘을 갖춰놓으면 그 사람이 다시 와도 품을 수 있을만큼 힘이 만들어진다. 떠난 사람은 힘이 없어서 헤매고 하니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된다. 돌아왔을 때 내가 품을 수 있는 환경, 내 에너지와 힘을 키워놨다면 이 때 다시 손을 잡을 수 있다.
자꾸 붙드는 것은 내가 여기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나라는 환경을 안 키워놓는다. 자꾸 그러면 이 사람이 떠날 때까지 나는 못 자란다. 그리고 이 사람이 떠나고,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와도, 나는 의지하려고 했지 내 힘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받아줄 힘이 없다. 이렇게 되면 영원히 같이 못 간다. 오는 자 막지 말고, 가는 자 잡지 마라.
내가 힘이 없어서 떠나려고 하는 것이다. 이 때는 보내놓고 내 힘을 갖춰야 한다. 내가 잘 갖추고 있는데, 상대가 힘이 없으면 정확하게 다시 돌아온다. 이 때 품어주면 된다. 지금은 내 옆에 있어도 저 사람도 손해고, 나도 의지하는 바람에 나도 크지 못해서 손해이다. 서로가 도움이 안 된다.
떠나려고 하면, 아 아직 내가 이 사람을 품을 만큼 되지 않았구나. 내가 그럴 힘이 없으면서 잡고 있었구나. 이런 것을 알고 내가 미안함을 알고 이 사람이 갈 수 있게 잘 도와줘서 항상 어려울 때는 다시 올 수 있도록, 잘 마무리를 해서 보내야 한다. 내친 게 아니다. 지금 너가 원하는 욕심을 채워줄 실력이 없고, 그것을 욕심이라 이해시킬 수 없어 성장시킬 수 없으니, 내가 이 실력, 이 힘이 없으니 보내주는 것이다. 내가 성장하고 나서는 항상 돌아오라는 것이다. 너가 필요할 때 항상 찾아오너라. 이는 사실 보낸 것이 아니다. 연결되어 있다. 떠날 때는 잡지 마라.
스승과 제자
스승과 제자 사이는 너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승이 아직 큰 힘을 갖춰놓지 않았을 때 사람들이 오면 서로가 제자되려고 한다. 온 사람 다 제자되는 것 처럼 된다. 허나 이는 임시 제자이다. 스승은 엄청 빠른 템포로 이 세상을 리드해나기 때문에, 이 템포를 따라올 수 있느냐의 문제다. 지적인 일을 해야 하는데, 너가 내 옆에 있어야 한다면, 이 일을 감당해낼 실력이 되어야 하는데, 감당할 수 있느냐? 민초들만 있을 때는, 너가 스승 옆에서 역할을 하겠지만, 훗날 만장 재벌 총수들이 왔을 때에는 그 질량들을 너가 감당하면서 역할을 할 수 있느냐. 미안하지만 실력이 안 된다. 단계가 있는 것이다.
스승님과 처음 인연된 사람들이 착각을 해서 스승님 옆에 붙어서 궁디를 딱 붙이고 한 자리 차지하려고 한다. 편안히 대해주니 길이 들어서 이 자리가 내 자리라고 안 비켜주려고 한다. 그럼 이 사람 때문에 더 이상 못 간다. 이 사람 때문에 더 못 간다. 내가 한발짝 더 가면 또 바싹 붙어서 가려고 할 것 아니냐. 그럼 이 사람을 보고 상대와 왔다가 그냥 간다. 그래서 제자를 안 삼는다. 제자를 보면 스승을 안다.
지적인 사람들은 처음부터 스승에게 갖다대지 않는다. 제자를 먼저 만나보고 제자를 먼저 상대한다. 그런데 제자가 실력이 안되서 우쭐되거나 모순있는 행동을 하면 이 사람이 제자 상대하다가 떠난다. 이런 모순이 만들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제자를 안 삼는 것이다. 그럼 언제 제자를 삼냐?
올 인연이 상층까지 다 오고 나서이다. 그 전에는 전부 다 공부를 시킨다. 올 사람이 다 오고 나면 여기에서 제자를 만든다. 제자는 처음부터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올 인연이 오고 나서, 거기에서 공부를 가르치면서 실력이 되는 자들을 제자를 삼는 것이다. 처음에 세상에 나오자마자 제자를 삼지 않는다. 공부를 시킨다. 그래서 처음에는 공부하는 자들이 다 제자인 것이다. 세상에 나와서 처음부터 제자 삼을 생각 없다. 공부해라. 제자는 나중에 인연이 다 오고 나서 시험쳐서 제자를 만든다. 제자는 어떻게 시험 치느냐? 너를 바칠 수 있느냐? 너를 내놓을 수 있느냐?
너를 다 바칠 수 있느냐하니 너는 돈도 없고 하니 얼른 다 바치겠습니다 한다. 아무것도 없는데. 목숨 걸 수 있느냐? 예 겁니다 이런다. 말을 이렇게 하나 못 건다. 그런데 이 사람은 10조 재벌이다. 이 사람이 제자 되려고 온다. 너 10조 다 내놓을 수 있느냐? 바로 움찔한다. 그러니 제자 되려고 하겠냐? 못 한다. 너 것 너 하고 제자되려고 하지 마라. 제자는 이렇게 해서 제자 되는 것이다. 제자가 되면 스승말을 들어야 한다. 재벌 제자한테 10조 내놔라하면 스승말 따라야 되나 안 따라야 되나? 제자면 따라야 한다. 너 목숨을 걸고 저기에 뛰어 들어라. 하면 따라야 되나 안 따라야 되나. 이것이 스승과 제자이다. 죽음도 걸 수 있느냐라고 하는 것이다.
왜 이것을 묻게 되느냐? 너가 그만한 것을 바치지 않고 스승을 얻을 수 없다. 스승은 목숨을 수 없이 바쳐가면서 갖춘 사람이다. 스승의 값어치는 이 세상 재산 전부를 가져와도 살 수 없다. 그러니 이 세상에 스승을 얻고자 한다면, 너를 다 바쳐도 사실 얻을 수 없는 것이 스승이다. 그럼 스승은 어떻게 되냐? 나 역시 너를 위해서 바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스승과 제자이다. 그만한 각오 없이는 스승과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스승은 제자를 함부러 삼지 않는다. 처음에는 다 가르치니 다 제자이다. 온 백성이 다 제자이다. 그러나 진짜 제자를 남길 때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 상단의 근기를 가져야 한다. 시험 칠 때는 돈 많은 것이 기준이 아니라,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시험의 기준이다. 스승이 인류를 이끌 고 나간다면, 제자는 그 인류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스승만큼의 깊이가 아닐지라도 그 정도까지는 가야 된다. 공부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것이다. 얼마나 세상을 이해하고 품어내느냐가 공부이다. 이것이 됐는가 안 됐는가를 보는 것이다.
스승은 항상 공부를 시킨다. 그런데 얼만큼 자랐느냐를 항상 보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는 제자가 작아도 3천명은 될 것이다. 벌써 하늘의 숫자가 나와있다. 이 사람의 제자가 될 사람들의 숫자들이… 도파들이 이미 예언한 숫자들이 있다. 그만큼 제자가 생길 것이다.
'1001-2000'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471,1472,1473,1474,1475,1476,1477,1478,1479,1480] 스승 - 청출어람 (1-10) (0) | 2025.12.04 |
|---|---|
| [1428,1429,1430] 신내림 (1,2,3) (0) | 2025.12.04 |
| [1295] 제자리 걸음 (0) | 2025.12.04 |
| [1951,1952,1953] 남의 아픔을 몸으로 느낀다 (1,2,3) (0) | 2025.12.01 |
| [1588,1589,1590] 깨달음 (1,2,3) (0) | 2025.1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