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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4,1325]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마라 (1,2)

by 웰빙원 2025. 12. 4.

일반 인연 오는 막지 말고 가는자 잡지 마라.

 

일반적인 사회에서의 인연을 말해보자. 인연을 붙들어 놓는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가려고 놔주는 것이 최고 좋은 인연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이 떠나려고 , 떠나게 놔두면 사람은 돌아온다. 제일 빨리 돌아온다. 그런데 잡았다. 잡았는데 떠나냐? 조금 있으면 떠나려고 한다. 한번 떠나려고 했던 사람은 떠나려는 환경을 만든다. 그래서 나중에 잡고 잡고 하면 결국 떠날 환경이 오는데, 때는 서로 원수가 되어서 떠난다.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마귀처럼 지긋지긋해지고 트라우마가 되어서 떠난다. 그래서 마음이 멀리 멀어져서 살아서 볼수도 있다. 처음에 보내줬으면 좋은 헤어졌으니 좋은 생각이 많이 난다.

사람이 떠나냐? 내가 너의 욕심에 차지 않으니 떠난다. 그럼 떠나게 놔두고 좋은 환경으로 있게 해줘야 한다. 떠나보내고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힘을 갖춰놓으면 사람이 다시 와도 품을 있을만큼 힘이 만들어진다. 떠난 사람은 힘이 없어서 헤매고 하니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된다. 돌아왔을 내가 품을 있는 환경, 에너지와 힘을 키워놨다면 다시 손을 잡을 있다.

자꾸 붙드는 것은 내가 여기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나라는 환경을 키워놓는다. 자꾸 그러면 사람이 떠날 때까지 나는 자란다. 그리고 사람이 떠나고,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와도, 나는 의지하려고 했지 힘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받아줄 힘이 없다. 이렇게 되면 영원히 같이 간다. 오는 막지 말고, 가는 잡지 마라.

 

내가 힘이 없어서 떠나려고 하는 것이다. 때는 보내놓고 힘을 갖춰야 한다. 내가 갖추고 있는데, 상대가 힘이 없으면 정확하게 다시 돌아온다. 품어주면 된다. 지금은 옆에 있어도 사람도 손해고, 나도 의지하는 바람에 나도 크지 못해서 손해이다. 서로가 도움이 된다.

 

떠나려고 하면, 아직 내가 사람을 품을 만큼 되지 않았구나. 내가 그럴 힘이 없으면서 잡고 있었구나. 이런 것을 알고 내가 미안함을 알고 사람이 있게 도와줘서 항상 어려울 때는 다시 있도록, 마무리를 해서 보내야 한다. 내친 아니다. 지금 너가 원하는 욕심을 채워줄 실력이 없고, 그것을 욕심이라 이해시킬 없어 성장시킬 없으니, 내가 실력, 힘이 없으니 보내주는 것이다. 내가 성장하고 나서는 항상 돌아오라는 것이다. 너가 필요할 항상 찾아오너라. 이는 사실 보낸 것이 아니다. 연결되어 있다. 떠날 때는 잡지 마라.

 

 

 

스승과 제자

 

스승과 제자 사이는 너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승이 아직 힘을 갖춰놓지 않았을 사람들이 오면 서로가 제자되려고 한다. 사람 제자되는 처럼 된다. 허나 이는 임시 제자이다. 스승은 엄청 빠른 템포로 세상을 리드해나기 때문에, 템포를 따라올 있느냐의 문제다. 지적인 일을 해야 하는데, 너가 옆에 있어야 한다면, 일을 감당해낼 실력이 되어야 하는데, 감당할 있느냐? 민초들만 있을 때는, 너가 스승 옆에서 역할을 하겠지만, 훗날 만장 재벌 총수들이 왔을 때에는 질량들을 너가 감당하면서 역할을 있느냐. 미안하지만 실력이 된다. 단계가 있는 것이다.

스승님과 처음 인연된 사람들이 착각을 해서 스승님 옆에 붙어서 궁디를 붙이고 자리 차지하려고 한다. 편안히 대해주니 길이 들어서 자리가 자리라고 비켜주려고 한다. 그럼 사람 때문에 이상 간다. 사람 때문에 간다. 내가 한발짝 가면 바싹 붙어서 가려고 아니냐. 그럼 사람을 보고 상대와 왔다가 그냥 간다. 그래서 제자를 삼는다. 제자를 보면 스승을 안다.

 

지적인 사람들은 처음부터 스승에게 갖다대지 않는다. 제자를 먼저 만나보고 제자를 먼저 상대한다. 그런데 제자가 실력이 안되서 우쭐되거나 모순있는 행동을 하면 사람이 제자 상대하다가 떠난다. 이런 모순이 만들어지면 되기 때문에 제자를 삼는 것이다. 그럼 언제 제자를 삼냐?

 

인연이 상층까지 오고 나서이다. 전에는 전부 공부를 시킨다. 사람이 오고 나면 여기에서 제자를 만든다. 제자는 처음부터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인연이 오고 나서, 거기에서 공부를 가르치면서 실력이 되는 자들을 제자를 삼는 것이다. 처음에 세상에 나오자마자 제자를 삼지 않는다. 공부를 시킨다. 그래서 처음에는 공부하는 자들이 제자인 것이다. 세상에 나와서 처음부터 제자 삼을 생각 없다. 공부해라. 제자는 나중에 인연이 오고 나서 시험쳐서 제자를 만든다. 제자는 어떻게 시험 치느냐? 너를 바칠 있느냐? 너를 내놓을 있느냐?

 

너를 바칠 있느냐하니 너는 돈도 없고 하니 얼른 바치겠습니다 한다. 아무것도 없는데. 목숨 있느냐? 겁니다 이런다. 말을 이렇게 하나 건다. 그런데 사람은 10 재벌이다. 사람이 제자 되려고 온다. 10 내놓을 있느냐? 바로 움찔한다. 그러니 제자 되려고 하겠냐? 한다. 하고 제자되려고 하지 마라. 제자는 이렇게 해서 제자 되는 것이다. 제자가 되면 스승말을 들어야 한다. 재벌 제자한테 10 내놔라하면 스승말 따라야 되나 따라야 되나? 제자면 따라야 한다. 목숨을 걸고 저기에 뛰어 들어라. 하면 따라야 되나 따라야 되나. 이것이 스승과 제자이다. 죽음도 있느냐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묻게 되느냐? 너가 그만한 것을 바치지 않고 스승을 얻을 없다. 스승은 목숨을 없이 바쳐가면서 갖춘 사람이다. 스승의 값어치는 세상 재산 전부를 가져와도 없다. 그러니 세상에 스승을 얻고자 한다면, 너를 바쳐도 사실 얻을 없는 것이 스승이다. 그럼 스승은 어떻게 되냐? 역시 너를 위해서 바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스승과 제자이다. 그만한 각오 없이는 스승과 제자가 없다.

 

그래서 스승은 제자를 함부러 삼지 않는다. 처음에는 가르치니 제자이다. 백성이 제자이다. 그러나 진짜 제자를 남길 때에는 아무나 하는 아니라, 상단의 근기를 가져야 한다. 시험 때는 많은 것이 기준이 아니라,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시험의 기준이다. 스승이 인류를 이끌 나간다면, 제자는 인류를 사랑할 알아야 한다. 스승만큼의 깊이가 아닐지라도 정도까지는 가야 된다. 공부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것이다. 얼마나 세상을 이해하고 품어내느냐가 공부이다. 이것이 됐는가 됐는가를 보는 것이다.

 

스승은 항상 공부를 시킨다. 그런데 얼만큼 자랐느냐를 항상 보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제자가 작아도 3천명은 것이다. 벌써 하늘의 숫자가 나와있다. 사람의 제자가 사람들의 숫자들이도파들이 이미 예언한 숫자들이 있다. 그만큼 제자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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