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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1,1472,1473,1474,1475,1476,1477,1478,1479,1480] 스승 - 청출어람 (1-10)

by 웰빙원 2025. 12. 4.

선생과 스승

 

청출어람은 선생과 제자 사이에서 나온 것이다. 제자는 누구든지 선생보다 월등하게 되어 있다. 선생은 내가 배운 것을 너에게 주입해주는 것이고, 너는 여기 위에다가 너의 시대에 배우는 것이 얹혀서 낫게 된다. 제자는 절대로 선생의 지식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제자는 미래를 사는 사람이고 선생님 과거를 사는 사람이다. 과거가 나은 질량의 지식 시대일까요, 미래가 나은 질량의 지식 시대일까요? 그래서 제자는 누구든지 선생보다 결국 뛰어나게 된다. 이것이 정상이다. 어릴 때는 나의 제자이지만, 훗날 이가 컸을 때는 내가 이에게 배워야 한다.

 

스승은 너희들이 선생들한테 배워서 70% 갖춘 이후에 스승을 만나지 처음부터 스승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스승은 너가 지식을 배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실력을 발휘할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스승이다. 너가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것은 사회에서 하지만, 지식을 어떻게 써야할지 아는 공부는 어디에서도 없다. 경제를 얻을 있다. 그런데 경제의 힘을 이뤄놓을 있지만, 이를 어떻게 쓰는지 방법을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가 갖춘 것을 쓰는 것은 빛나는 방향으로 써야 한다. 이를 빛나게 쓰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이럴 만나야 하는 것이 스승을 만나는 것이다.

 

선생과 스승은 근본이 다르다. 그런데 선생, 멘토, 스승을 다같이 혼용해서 쓰고 있다. 멘토는 선생을 뛰어 넘는 자이다. 멘토는 아직까지 공부를 마친 자가 아니고, 자기 분야의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 이자들이 스승을 찾는 것이다. 멘토들을 찾는 것이지만 스승들을 찾는게 아니라 스승을 찾는다. 스승은 1 밖에 없기 때문에 스승을 찾는다. 멘토는 소질의 실려과 힘을 갖춘 사람이고, 지도자가 사람들을 말하며, 자들이 스승을 찾는다. 예를 들어, 기업의 오너들이다. 스승을 만나지 않고서는 1발도 나간다. 갑갑한 것에서 벗어날 없다. 많이 이룬 것을 오랫동안 내가 갖고 가면 내가 답답하게 되어 있다. 많이 이룬 것을 빛나게 써서 이것이 운행이 되어 버려야 너가 갑갑하고 가벼워지니 날라다닌다.

 

지식을 갖춘 사람이 내가 가진 지식을 빛나게 써서 이것이 운행이 되어야 너가 아주 가벼운 것이다. 그래서 기쁘고 즐겁게 행복한 것이다. 기술이나 재주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갖고 어떻게 해야 빛나게 있느냐. 이것이 나의 인생이다. 힘들게 고생하면서 이룬 경제, 지식, 재주를 얼마나 빛나게 쓰느냐에 인생이 걸려있다.

 

나라에 적용해도 말이 된다. 나라가 이렇게 힘과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는데, 이를 바르게 쓰니 나라 국민들이 점점 갑갑해져간다. 힘을 갖추고 실력을 갖춘 나라가 어렵다. 내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초창기 때는 답답하고 재미있다.

이는 스승을 만나야만 있지 스스로 올라간다. 이래서 지금은 스승이 필요할 때이다.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져놓고 아무것도 못하니 답답한 것이다. 나라가 그렇고, 지도자들이 그렇고 국민 개개인들이 그렇다. 가진 것을 가지고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고 있어서 힘든 것이다.

 

,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는 절대 나올 없고, 존재할 없다. 스승은 대자연의 근본을 깨친 사람이다. 스승은 누구나 있는 것이 아니고, 타고 나야 하고, 전생에 공부한 것이 있어야 하고, 시대에 맞춰 와서 일을 하러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은 일반인과는 다르다.

 

스승은 천자를 깨쳐야 한다. 사람이 백성을 위해 떄는 땅에 내려온다. ? 너희들에게 펼쳐야 되기 때문이다. 너가 1자일 스승은 3자에 있는다. 천지인 3기라 2자에 가있는다. 2자에 있으면 혹시 그림자가 밟힐 수가 있잖아. 항상 2 앞에 있는다. 항상 제자가 커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서 스승은 2 앞에 있는 것이지, 제자가 커나오지도 않는데 멀리 천자에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지 않는다. 너의 눈높이에 항상 맞춰주면서 같이 가기 때문에 스승의 깊이는 너희들이 있는 깊이가 아니다.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마라가 아니라 스승의 그림자를 밟을 없다가 근본이다. 스승의 그림자를 밟을 있으면 밟아라. 그것은 스승이 아닌 것이다. 밟히면 선생이지 스승이 아니다. 그림자가 나한테 밟히면 밟아라. 그래야 되기 때문에 환경이 왔으니 밟아야만 내가 성장해서 간다. 허나 진정한 스승은 그림자를 밟을 수가 없다.

 

초중고에서는 선생이고, 대학가서는 교수라 하는데 교수는 노력을 많이 해서 분야를 많이 갖춰놓은 사람이다. 그러나 교수도 선생이다. 대학 선생이다. 제도권 공부가 끝나서 사회에 나가서 찾는 사람이 멘토이다. 선생의 수준을 넘어가서 멘토를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멘토와 사회에서 사회학 공부를 한다. 때는 교실에서 이론을(이론은 기초공부 = 1 공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딪치면서 실전을 배우는데, 나를 이끌어줄 있는 사람이 멘토이다. 이것이 2 공부이다. 멘토한테 도움을 받으면서 사회를 배우고 지식이면 지식, 경제면 경제, 기술이면 기술을 갖춘다. 이때 사회경험도 하고, 이룰 것도 이루고, 힘도 갖춰놓게 된다. 힘을 갖추면서 발전할 때에는 그렇게 답답하지 않다. 지식을 갖춘 , 혹은 경제를 갖출 때는 재미있다. 내가 갖출 것을 갖추면 이상 멘토 밑에서 배우는 질량이 아니다. 나를 가르친 멘터와 동급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갖춰서 이제부터 답답해진다. 멘토 위에 있는 스승을 만나야 한다. 3 공부는 스승을 만나서 한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이 어디에 부딪혀서 매달려 있느냐? 2 공부 이후인 70% 매달려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턱걸이를 하면서 발을 올라가고 있다. 스승을 만났기 때문이다. 기업인도 대통령도, 어떤 실력자도 70% 매달려있다. 실력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70%이고 힘을 바르게 쓰기 위해서는 스승을 만나야 한다. 내가 가진 힘을 빛나게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사람, 길을 따주는 사람, 방향을 틀어주는 사람이다. 우리 국민들이 실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실력은 하늘을 찌르나, 이를 바르게 쓰고 있다. ? 답부터 말하면 지혜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지식은 선생한테 얻지만, 지혜는 스승한테 얻는다.

 

우리 국민들이 답답한 것은 2 대전 이후, 50대들이 그렇다. 그리고 답답한 모든 백성들이 스승을 만나냐? 아니다. 지도자들이 스승을 만난다. 스승은 지도자들의 기운을 틔어주고 여기에 지혜를 넣어서 지혜롭게 일할 있게 해주면, 사람들이 밑에 직웓들, 백성들을 틔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답답해진다.

 

지도자는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분이 지도자이다. 회사면 회장님이고, 사장님인데, 이들이 바른 사고가 틔어져서 바른 방향으로 이끌 직원들의 답답함이 풀린다. 어떤 단체에 있다면, 단체의 회장, 총장이 사람이 깨쳐야 한다. 사람이 지혜를 열어야 한다. 대통령이면 대통령이 패러다임을 열어야 밑의 장관들에게 바른 지시를 있다. 너무 모르던 것을 바르게 지시를 하고 이해되게 하니, 하나도 답답한 것이다.

 

그래서 분야의 수장들이 스승을 만나는 것이다. 스승은 제일 위의 사람들과 활동을 한다. 위의 분은 그만한 기운이 있고, 그만한 통찰력이 있고, 그만한 힘이 있어서 윗분이 되고, 사람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틔워내야 한다. 미래를 열어야되는 사람들이 어째 자꾸 과거의 것을 지금 답이라고 주장을 하냐.

 

선생이 제자를 가르칠 때에는 정성껏, 겸손한 마음으로 배운다는 생각으로 이끌어야 한다. 아이들이 선생을 싫어하고 딴짓하고 하냐면, 너희한테 맞게끔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선생들이 아이에게 맞게끔 이끌어주고 멋대로 가르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미래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될지 모르는 것이다. 후대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디지털이나 밑으로부터는 자체가 홍익인간이다. 배웠던 배웠던 앞으로 홍익인간으로 지적으로 살아야 사람들이다. 너희들 시대는 글로벌로 사는 홍익인간의 삶인데, 글로벌 시대에 맞게끔 내가 외국어도, 수학도 조금씩 갖춰놔야 한다. 홍익인간 시대에는 물건 팔아먹고 이런 것이 없다. 기술을 창출해서 위를 점하고, 이런 것이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을 얼마나 사회에 가르치고 인류에 가르치며 것이냐의 시대이다.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은 교육 밖에 없는 시대이다. 때는 TV만들고, 스마트폰 만들고 기계 만들고 이런 것을 30% 밖에 일을 한다. 디지털들도 40% 기술 만지고 개발하는 , 30% 기획하는 , 최상 30% 완전 지도력을 갖고 태어났다.

태어나길 이렇게 태어나는데, 여기에다 전부 일꾼을 만들려고 주입시키면 문제가 생긴다. 우리 것을 알려주면 눈이 반짝반짝하면서 들을텐데, 것이 아닌 것을 하라고 하니 틱틱거리고 힘든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알려주면 제일 좋아하고 자동으로 따른다.

 

내가 어려운 것은 몰라도, 제자들이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면 나는 피눈물을 흘려야 홍익인간이다. 선생도 그렇고, 멘토도 그렇고, 스승도 그렇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이런 것들을 정리해주는 지식인이 되어줘야 사회가 맑아진다. 노력을 해도 되나, 백성들의 피와 땀을 먹고 많이 갖춘 , 경제를 많이 갖고 있는 , 기술과 재주를 갖춰 놓은 자가 일을 하지 않으면 후천시대에는 하늘이 가만히 두질 않는다.

 

이렇게 해서 천지 대공사 때에는 우리 백성의 30% 희생된다. 천지대공사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30% 안에 포함되어서 남을 위한 교과서도 되어도 의미가 있다 있는 거지만, 그런 인생은 제일 못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시대에 희생을 하다니. 하늘의 천기가 내려오는 시대인데, 나는 천기를 받지 못하고 일을 하지 못하고 희생되어 죽는 것이 좋은 인생은 아니다.

제일 1 대상자가 지식을 많이 갖춘 중에, 사회를 등한시 하는 자이다. 경제를 많이 갖춘 자가 등한시 하는 . 재주를 갖춰놓고 나는 먹고 사니 사회를 걱정하지 않는 . 시대는 질량이 계속 좋아지는데, 나는 뭔가를 발전하고자 노력하지 않는 . 직위를 높은 자리를 줬는데, 사회를 걱정하지 않는 . 너희들부터 샘플로 날라간다. 너가 직접 이루지 않아도 된다. 허나 사회를 걱정하고 뭔가를 하고려 드는 노력하는 자이면 된다. 이런 자들부터 희생을 하면서 변화의 물결이 일어날 것이다.

 

 

 

멘토와 선생

 

멘토의 교육과 선생의 교육은 틀리다. 선생은 내가 배운 기술이나 지식을 전수해주는 것이다. 멘토는 비유법으로 상대가 이해되게 이끄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사회를 이롭게 하면서 살아가는 방향으로 이끄는 자이다. 그래서 멘토는 사회를 가르친다. 멘토는 최소 4-50대이다. 30 멘토는 절대 존재하지 한다. 빨라도 40대는 되어야 멘토가 된다. 선생은 10대도 되고, 20대도 되고, 30대도 된다. 멘토들은 사회를 30대에 배워 나왔기 때문에 사회를 보는 관이 있고, 사회에 적응할 있다. 그래서 이런 사회공부를 이끌어주는 자가 멘토이다. 내가 가진 지식과 기술은 덤으로 가르치고, 사회공부까지 가르치는 자가 멘토이다. 이런 것까지 갖춰서 이를 빛나게 쓰게 해주는 자가 스승이다. 40, 50대가 되면 어떤 분야에서는 거짓 멘토가 되지만, 등급이 있다. 30% 급수의 멘토는 하급 멘토, 70% 급수의 멘토는 중급 멘토, 100% 급수의 멘토는 상급 멘토이다. 공부를 사람은 멘토가 되는 것이다. 기술만 가르치고 창만 가르치면 선생이다. 그런데 너가 창을 하면 어떤 사람들이 인연으로 오는데 이들을 바르게 대하려면 나는 어떤 품위를 갖춰야 하고 등을 알려주는 나의 인생의 멘토가 멘토이다. 스승의 정신적 기운은 안되더라도, 중간쯤 인생을 이끌어줄 있는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줘야 인생의 멘토가 있다.

 

제자는 항상 옆에 머물지 않는다. 제자가 영원히 옆에 머무는 것은 스승의 제자들 밖에 없다. 멘토도 내가 갖춘 100% 멘토라면 옆에 머물겠지만, 멘토도 공부를 동시에 하는 중이라 제자가 계속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이 인연이 오면 사람에게 주어야할 것이 프로 있고, 내가 사람으로부터 얻어야할 것이 프로 있다. 70% 것을 주지만, 30% 내가 얻을 것이 있어서 인연이 오는 것이다. 분들은 아직까지 멘토라 없다. 공부 중이다. 그러니 사람은 공부에 집중해야지 주지 마라. 사람이 내게 얻어가는 것이 있고, 나도 사람에 30% 얻으니 이는 서로가 도움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에 집중하고 있어야 100% 완전히 갖추는 완전한 멘토로 성장한다. 인연이 언제 떠날 것인가는 너가 계산하지 마라. 내가 필요치 않을 때가 되면 자연히 떠난다. 인간은 잡는다고 있어지는 아니다. 힘을 넘을 때는 있지만, 힘을 넘어가면 잡을 없다. 개는 목줄 걸어놓고 옆에 있게 있지만, 인간은 마음이 떠나면 옆에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 부인이라고 옆에 잡아 놨지만, 마음이 뜨면 이는 부인이 아니다. 마음이 뜨면 이미 여기 없는 것이다.

 

그러니 제자를 삼는다는 생각하지 말고, 인연이 나를 필요해서 왔으니 나는 정성껏 하면 된다. 내가 정성껏 하면 실력만큼 나오는 것이다. 내가 정성껏 하면 사람은 나를 고마워하고 떠나서라도 나를 잊지 못하게 되어 있다. 떠나더라도 떠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다시 나를 찾아올 인연이 된다. 정성을 다해서 대하면, 지금은 떠나지만, 분은 계속 성장하고, 나는 그동안 갖춘 것이 없다면 배우러 다시 돌아온다. 분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가 다시 , 나는 실력을 갖춰놨다면 자는 항상 곁을 떠나지 않는다. 오고 가는 것은 자유롭지만 주파수가 항상 내게 메여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갖추는 사람이고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마라의 원리이다. 제자된다고 전부 옆에 머문다고 생각지 마라.

 

이런 멘토 역할을 했는지 언제 알게 되냐면, 너가 50 중반, 60 지나서 알게 된다. 내가 정성껏 가르쳐놨다면, 지금까지 인연들이 항상 떠나지 않고 나를 찾게 되어 있다. 50-60대에 내가 외롭지 않고 어렵지 않는다는 것이 나를 멘토로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스승이 언제 표가 나나면 60 중반은 가서 나를 스승으로 모시는 사람들이 있어야 스승이 되는 것이고, 표가 난다. 50대에 스승의 대접 받는다? 없다. 50대는 스승을 이제 시작하는고로, 역할을 바르게 정성껏 했다면 10, 15 지나서 나한테 가르침을 받은 제자가 빛이 나고 즐겁고 기쁘다. 즐겁고 기쁜 일을 내게 일으켜 줬기 때문에 스승님을 존경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알려준다해서 존경하게 되는 아니다. 바르게 가르쳤다면 사람이 빛이 것이고, 연후에 은혜에 존경하게 되는 것이다. 니가 아무리 정법을 봤는데, 여전히 삶이 어려운데, 스승님을 놈의 존경이냐. 이는 기복이지. 부모 은혜에 감사하는 것도 내가 기쁘고 즐거울 은혜에 감사할 있는 것이다. 조상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내가 아주 인생을 살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서 즐겁고 기쁠 , 있는 것이다.

 

남을 지도하는 지도력을 갖는다는 것은 상대가 어렵지 않아야 내가 바르게 노력한 것이고, 노력이 빛이 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멘토인지 아닌지 따지지 마라. 그냥 아는 만큼 정성껏 대해라. 정성껏 가르치면 스스로 지혜가 나온다. 멘토의 지혜가 나온다. 스승의 지혜는 따로 있다. 높은 지혜를 탐하지 말고, 내가 지금 있는 지혜를 열고 있느냐? 그럼 것이다. 지금의 지혜는 상대에게 정성을 다하면 스스로 일어난다. 상대와 관계한다면 상대에게 필요한 지혜가 나오는 것이 참다운 지혜이다. 정성껏 지혜가 나온다. 재주를 부리고 기술을 부리면 지혜가 나온다. 정성을 담을 지혜가 나온다.

 

선생의 조건은 아이들을 사랑하고 품어야 한다. 그럼 업무도 오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내가 피곤하질 않는다. 즐거움을 맛보면서 살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이를 알고 선생을 좋아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없고 직장이라고 생각하면 노동자이고, 모든 업무와 일들에 스트레스를 받고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굉장히 피곤하다. 교육자가 노동자가 되면 엄청나게 피곤하며, 애들 가르치고 말하고 모든 것이 생노동이 된다. 노동자 일을 해야할 사람이 노가다 하면 별로 힘들다. 나한테 맞는 일이기 때문에 아주 쉽다. 그런데 노동자 신분이 아니고 지적인 일을 해야할 사람이 노동을 하면 죽도록 피곤하고 힘들다.

 

교대를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고자 교육을 받았다면, 학생들을 사랑하고 가르치는데 매진하는 것이 일인데, 이를 직업으로 선택했다는 생각 자체로 첫번째 가중처벌을 받는다. 너는 교육자가 아니라 노동자가 된다. 노동자로써 먹고 살려고 하는데에서 2번쨰 가중처벌, 돈을 벌려고 하는 생각에서 3번째 가중처벌을 받는다. 이맇게 가중이 되는 만큼 힘이 든다. 가르치는 것이 나의 천직이고 교육자로서 임할 내가 하는 일이 힘들지 않다.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내가 일을 하는가 근본적인 주파수를 잡아야 한다. 직장일이 힘든 사람은 직장인으로 노동자가 되었으니 힘들고, 돈을 벌려고 하니 힘들고, 먹고 살려고 하니 더더욱 힘들게 되고, 빨리 출세를 하려고하니 죽을만큼 힘들게 된다. 이런 생각과 주파수들이 쌓여서 나를 힘들게 한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사회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으로 임하면 힘들지 않다. 직장은 버는 곳이 아니라, 사회 교육장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내가 사회에 나와서 직장을 얻었다는 것은 벌로 출세하려는게 아니라, 이제 사회공부를 하려는 바탕을 놓았다는 뜻이다. 안에서 주어지는 환경을 불만불평하지 않고 공부로 모두 흡수하리라 하면, 첫째로 너는 일이 어렵고 피곤하질 않다. 저녁까지 일을 해도 지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새롭게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공부는 안하고, 벌려고 일을 한다고 생각을 하니, 이것이 가중처벌이 되어 몸이 피곤하고 힘든 것이다. 먹고 살려고 벌려고 갔다는 것에서 가중처벌을 받아 무겁고, 여기에서 내가 지혜가 나오질 않고, 자연의 힘이 내게 발동이 되질 않고, 이러기 때문에 어렵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데 사람들을 잘못 대하니 기운이 막히고 어려워진다. 배우는 사람이 놈의 스트레스가 있어. 환경을 주는 만큼 배우면 아주 수월하다.

 

경찰이 얼마나 힘드냐? 그런데 경찰로써 사회를 배우고 사회를 지도하고 이런 것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만큼 힘들다. 밤새 노력을 해도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지치질 않는다. ? 경찰로 들어갈 정도면 그만한 신장과 그만한 근기와 그만한 기운을 가지고 들어가는 사람이다. 이런 기운이 없으면 경찰해야겠다는 생각도 난다. 그래서 그만큼 어렵지 않다. 직장도 이런 마인드로 해야지 힘이 들고 병이 온다. 벌려고 직장 다니는 것은 , 돼지 같은 동물의 근성인데, 이렇게 살면 50 되어서 엄청 힘들게 살아야 한다.

 

내가 공부를 , 30대에는 내가 어떤 위치인지 파악을 하지 말아야 하는 자체가 공부이다. 어디에도 겸손하라는 것은 어느 위치에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어디 있는지 파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파악하는 자체가 욕심이다. 그냥 너한테 주어지는 환경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가면 된다.

 

 

 

스승의 제자

 

스승님의 주변에 있다고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는 스승의 뜻이 좋아서 와서 식구가 되어가는 것이지, 제자는 이들 중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특급들이 스승의 제자가 된다. 멘토 제자가 아니라 스승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특급들만 면접봐서 기운을 내려주고 사람이 많은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하면서 이끌게 하는 것이다. 밑의 사람들을 제자 삼지 않는다. 모든 백성을 가르쳐서 제자가 나올 , 이끌기 쉽게 해주는 환경을 만들어줄 있지만, 백성들 중에서 제자 삼지 않는다. 스승님의 제자는 특급이어야 한다.

 

스승님 제자가 되려면 너가 아무리 못해도 이끄는 자들이 수십만은 되어줘야 한다. 만명 갖고도 스승의 제자가 없다. 너가 미치는 영향력이 수십만은 되어야 스승님 제자가 된다. 수천명 데리고 있다해서 제자 없다. 위에 너를 이끄는 사람이 없어 지금은 내가 봐줄 있어도, 제자될 사람은 아니다. 몇천명, 몇만명 이끈다고 중소기업 밖에 되냐. 중소기업인을 갖고 제자 삼지 않는다. 대기업 30인방에는 들어가야 자격이 된다. 지금까지 우후죽순으로 성장시켰지만, 앞으로는 세상이 모든 단체와 회사와 조직들이 합병이 되어서 30인방으로 축소된다. 압축되어서 모여야 힘을 쓴다. 앞으로 힘을 써야 되기 때문에 중구난방으로 하늘의 힘을 쓰진 않는다.

 

시험 기준은 너가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는가이다. 얼마나 백성들을 위해서 너가 너를 불태워 혼신을 있느냐이다. 인류에 너를 바칠 있느냐? 너가 이끄는 사람들을 위해서 너를 불태울 자신이 있느냐? 이런 시험을 치는 것이 있다. 그래야 너가 정말 홍익인간이 됐는가 아닌가를 아는 것이다. 홍익인간이 되려면 홍익인간 시험을 봐야 한다. 홍익인간이 되려면 무엇을 갖춰야 하고, 얼마나 공적으로 내가 나를 바칠 있느냐이다. 공에다가 목숨을 바칠 있느냐를 시험본다. 나를 불태우지 않으면 홍익인간이 되질 않는다. 홍익인간 천군은 하늘의 일꾼인데, 이는 하늘의 법칙에 내가 어긋나면 된다. 당장 그렇게는 없을지라도, 그런 각오를 하고 그런 뜻으로 뭐든지 나를 바칠 있어야 한다. 하늘의 천군은 하늘의 힘을 있게 되어 있는데, 욕심이 자가 하늘의 힘을 받는다? 말이 되나.

 

1명이 나와도 되고, 30명이 나와도 되고, 3000명이 나와도 되지만, 기준은 기준을 넘어야 된다. 나는 바친다고 하지만 언젠가 걸리면 걸릴 밖에 없는 사람도 있고, 홍익인간이라 해서 등급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급수가 다양하다. 특급 , 1 , 2 이렇게 있다.

 

너가 크게 이룬 것들을 바칠 있냐. 야망도 공적으로 바칠 있느냐. 야망일수록 내가 전부 나를 불태워서 나를 바칠 있기는 힘들다. 이런 사람이 깨달았을 상좌가 된다. 이런 사람들이 가슴을 열었을 때는 엄청난 빛을 있는 상좌들이다. 이들이 천군들이다.

 

그런데 모두가 제자라고 하니 자꾸 옆에서 욕심을 내는 것은 너가 자리를 욕심내고 있는 것이지 공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는 제자가 되지 못한다. 공부를 하면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제자가 된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자는 저절로 자기 자리에 간다. 자연의 법칙이 아주 존엄하고 정확하다. 나는 그럼 제자가 아닌가? 영원히 제자가 아니다. 이러고 있는 사람은 제자가 된다.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나를 제자 시켜줬으면 해도, 자기자리에 데려다놓는다. 자동으로 움직인다. 나를 갈고 닦는 . 정확히 자기 자리에 놓고 하늘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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