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사회를 접하면서 이것이 오늘날 지식을 공부하는 과정임을 몰라서, 공부를 안 했다. 내가 50대가 되면 대자연에서 내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가?를 묻는다. 50대가 되면 50대의 할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것을 못 하면 어려워진다. 50대가 되면 하늘의 이치를 알고, 땅의 이치를 알고 나를 알고 지적인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적인 일을 안하고 노동을 해서 돈을 벌려고 달려들면 굉장히 어려워진다. 50대는 돈 버는 떄가 아니다.
질문자는 젊었을 때에도 먹고 살기 위해 살았죠? 가족 부양이던 뭐든. 먹고 살기 위해 산 사람들의 결과가 이것이다. 나는 먹고 살기 위해 살았고, 이런 사람이 인류평화를 위한다는 것은 생각하면 안 된다. 이런 잡다한 것이 들어가면 내 일을 방해한다. 내가 힘든 사람은 힘을 보충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 힘든 사람은 깨끗해야 한다. 내게 힘든 환경을 줬다면, 이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것이 내 공부이다.
어떤 사람은 부가 이미 다 있는 곳에 태어나게 하고, 어떤 사람은 경제도 없고 남루하고 힘이 없이 태어난다. 이것이 너희 사주이다. 이런 환경을 어른들이 몰라 바르게 못 이끌어주다보니, 나는 이 남루한 환경을 불만하는 것이다. 이 환경을 바르게 접근하는 방법을 못 찾았다. 그래서 나는 헤매고 있다. 이 환경에 태어난 것은 너를 공부시키고자 함이다라고 어른들이 설명하고 이끌어줬다면, 내가 어려움 속에서도 환경을 감사히 여기고 열심히 여기에서 일을 하고 공부를 하게 되면, 이 환경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렇게 바르게 알고 접했더라면 정확하게 이 환경에서 벗어난다. 또 그 다음 환경을 주니, 이를 감사히 여기고 환경을 존중하니, 또 여기에서 벗어나 그 다음으로 간다. 자연은 0.1mm도 틀리게 운영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식으로 잘못 해석하고 갖다대니, 나는 공부가 되지 않고, 이 환경이 계속 된다. 죽을 때까지 내가 공부될 때까지 계속 된다. 내 공부는 안 되고 돈만 벌려고 해서 벌었다? 누군가 분명히 와서 그 돈 다 가져가고, 너를 내려 앉춘다. 다시 공부해라이다. 시간이 가는 것과는 다르게 너가 공부가 안 됐기 때문에 네게 웠던 에너지를 다시 걷고 다시 공부 시킨다. 이런 식으로 계속 고난을 겪으면서 50, 60이 되는 것이다.
술집 공부 환경을 줬으면, 이 환경이 무엇을 위해 존재했는지 내 공부를 해야 한다. 내가 이 환경을 바르게 일깨워서 바르게 노력하면, 이 술집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런데 계속 우리는 그늘지고 계속 불만불평을 한다. 그래도 일을 계속하니 돈을 좀 준다. 이 돈으로 스파도 가고 관리하다보니 괜찮은 사람과 인연이 되고, 이 사람이 경제도 대주고 같이 살자고 하니 따라간다. 너는 벗어난 줄 알지만, 공부가 안 됐으면 정확하기 다시 술집환경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7-15년 후에는 정확하게 술집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한테 주는 직장도 마찬가지이고 주는 환경도 마찬가지이다. 너한테 준 환경은 너한테 최고로 적절하고 좋은 환경을 준 것이다. 이런 내면 공부는 안 하고, 자꾸 환경만 넘어가려고 한다. 경제가 좀 일어나니 다른 환경으로 가려고 하는데, 대자연이 정확하게 그 경제를 다 긇어버린다. 다른 환경 못 간다. 너의 공부가 되기 전까지는 이렇게 대자연이 한다. 이를 긁어야지 다시 이 환경으로 내려온다. 왜 이렇게 하는가? 전생의 했어야 하는 공부를 안 한 과오가 있다. 대자연이 전생에 준 공부를 너가 안 마치고 갔기 때문에, 이 생에서는 이 공부를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만 한다. 이번 인생에 못 짚고 넘어가면 다음 인생에 또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구천에 떠돌다가 윤회를 받아서 다시 이 땅에 온 이유이다. 내게 준 것은 절대 내 것이지, 남의 것이 아니다. 내가 해결해내고 가야만 한다.
이런 공부를 바르게 해서 사회를 바르게 접해서 너가 벗어나는 방법을 알아야지 내가 이 환경만 벗어나려고 하면 절대 못 벗어난다. 너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너가 꺠달음을 갖고 진화발전 시키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이지, 돈을 많이 줘서 호화롭게 살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너가 모르는 것을 꺠우치고, 한 단 뛰어 넘어가서, 또 그다음을 공부해서 한단 한단 올라갈 때마다 영혼이 맑아지게끔 하기 위함이다. 너가 맑아지는 만큼 주위의 환경을 다시 줄 것이다. 거기에서 또 너가 실력을 갖고 맑아져서 한 단 올라가니, 또 한단 높은 환경을 또 새로 줄 것이다. 이런 것을 모르고 헤매면서 지금까지 온 것이 50대들이다. 그래서 다들 얼마나 내가 어려웠는지를 말하는데, 내 어려움을 말하면 모두 쏙 기어들어가야 한다.
나는 4살 떄 부모에게 버림 받고 고아로 자랐다. 이 환경 속에서 나는 원망하면서 산 적이 없고, 주어진 환경에 그저 묵묵히 열심히 살았다. 누가 떄리니 맞는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살았다. 나중에 청년이 되어서 산 속에서 거지로 살아야 되니, 거지로 열심히 살았다. 17년 동안 거지로 열심히 산 것 밖에 없다. 거지로 살게 해놨으니 거지로 열심히 산 것이다. 이것 밖에 한 것이 없다. 열심히 살면, 내가 스스로 물리가 일어나서 내 공부는 스스로 된다. 원망을 하면 공부 스탑, 새로 다시가 된다. 내가 처음에는 바닥이라 공부하려고 열심히 한다. 열심히 하니 어느정도 내공이 들어온다. 내공이 들어왔는데, 받치는 것이 딱 들어오니, 이젠 힘이 있으니 원망을 한다. 이 떄 새로 다시이다. 이것이 우리 인생이다. 어떤 환경이 들어와도 이유가 있어서 들어오는 것인데, 이것을 내 기준에 맞춰서 원망을 하면, 새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몇 번 그렇게 당했으면, 지긋지긋해서라도 이제는 이 공부를 넘어가야 하는데, 미련한 놈은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당하니 무속인이나, 스님, 목사를 만나러 간다. 내 인생이 이렇습니다 하면서 하소연을 한다. 그럼 이 종교인들이 이 원리가 어떻게 되는지는 풀어주지 않고, 예수를 믿으세요, 부처를 믿으세요 이렇게만 했다. 그러니 이 사람의 이 공부가 안 끝난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이 공부환경에서 이탈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오는 것이다. 공부는 너가 직접해야 한다. 공부환경만 주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게 공부한 정신적인 지도자라면, 지금 일어나는 너의 모든 환경을 공부로 쓸어안고 열심히 같이 한번 공부해보자. 이렇게 이끌었으면 이 사람이 여기에서 공부가 되고, 여기에서 막 꺠어나고 기운이 크게 좋아져서 앞으로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텐데, 하나님이 다 좋게 해줄테니 그냥 무릎꿇고 빌어라라고만 하면시 기복하는 사람으로 만드니 이 사람은 더 의지하는 사람으로 변하고 앞으로 더 어려워진다.
지금이라도 네게 주어진 환경을 감사히 여겨라. 어떤 환경일지라도. 이것을 감사히 여기고 3년만 아주 겸손하게 이를 받아들이고, 열심히 너가 노력을 한다면, 너의 인생이 정확하게 변할 것이다. 공부는 열심히 하려해서 되는 공부가 아니다. 겸손 속에서 공부가 일어난다. 공부가 자동으로 된다는 것이다. 내게 주는 환경을 겸손히 받아들여야 한다. 왜? 이 환경을 너한테 준 것은 전생에도, 현생에도 너가 이런 환경에서 살게 할수 밖에 없게 살았기 때문이다. 이를 거부하지 마라. 이를 받아들여라. 잘 모르더라도 환경에 내게 왔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야 된다. 그러면 이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열심히 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 환경에서 오는 인연들이 있을지니, 이 사람들에게 겸손하고 내가 거기에다 아는 척 하지 마라. 왜? 내가 뭔가를 잘못 알고 있어서 힘이 없는 것이다. 오는 인연들에게 자꾸 아는 척을 하면 안 된다. 힘이 없는자가 어떻게 바른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냐. 힘이 없는 자는 바르게 아는 것이 없는 자이다. 그럼 말을 하지 말고 이를 바르다고 누구한테 갖다대지 말아야 한다. 평생 하리는 것이 아니라, 3년만. 이를 묵언기도라고 한다. 너가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입을 닫아야 하겠느냐.
서로 예를 갖추다보면 조금씩 가까워진다. 가까워져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가 들어보니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이건 이래서 아니고, 저건 저래서 아니다. 이렇게 하지 마라는 것이다. 아는 척 하지 마라. 너는 지금 모르는 놈이다. 그러니 아닌 말을 해도 듣고만 지나가라. 너가 옳다 그라다 분별하지 마라. 너한테 들리고 보이는 것이 전부다 너에게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니, 너가 이것을 3년만 흡수하게 되면, 너 스스로 문리가 일어나서 답이 나온다. 이것이 3년 기도이다. 엄청나게 어렵다면 너는 분명 3년 기도를 해야할 것이다. 조금 어려우면 2박 3일 기도를 해야 한다. 그 다음은 7일, 그 다음은 100일 기도를 해서 너가 스스로 너의 모자람을 찾아서 공부를 할 때, 너의 문리가 일어난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입을 닫아야 한다. 기도할 떄 하는 말은 축원이 되어서 자연이 읽는다. 너가 잘난척 하는 것도 자연에서 읽어버렸으니, 너는 그 댸부터 대자연 관점에서는 기도를 안 하는 것이다. 새로 다시 해야 한다. 기도는 아는 척 하지 말고, 알고도 몰라야 한다. 내가 모자라고 힘드니,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이다. 내 스스로 내 모순을 찾아내서 반성하면서, 누가 내 앞에서 아무리 잘난척을 하고 무례하게 해도, 그것을 보면서 이마저 거둬들이기 시작하면, 나중에 이런 것들이 다 문리가 일어나, 내가 이렇게 잘못했구나. 이것들이 일깨워지고 찾아진다. 내가 갖추어져야 습관이 바르고 삶을 바르게 사니 내가 하는 일이 잘 되는 것이지, 내가 모순있게 만들어놓고 내가 잘되려고 하나. 이 자체가 욕심이다.
어려우면 반성의 기도를 해라. 반성할 것이 없으면 왜 어려울까? 이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라. 하나님 이렇게 해주세요는 기도가 아니라 축원이다. 축원은 기도 들어가기 전, 그리고 기도 다 끝났을 때 하는 것이다. 기도가 끝나고 나서 감사합니다. 축원은 기도 하는 중에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사실 기도 끝나고 나서는 축원할 것이 감사합니다 밖에 없어. 항상 나를 보호해주시니.
기도는 내가 어려워졌음으로 어려움을 풀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어려워졌을 때에는 원인이 있으나, 내가 이를 바르게 풀지 못하니, 하나님 도와주십시오가 기도이다. 100일이면 100일 동안 기도를 할 테니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가르쳐주시고 일깨워주시고 바르게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십시오. 이는 기복이 아니라, 모자라는 것을 겸손하게 축원하는 것이다. 이는 비굴한 것이 아니라 당당한 것이고 대자연 아버지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100일이면 100일, 7일이면 7일 공부한다. 아버지에게 이렇게 축원을 올렸다면, 앞으로 이 기간동안에 사람들에 내 앞에 와서 잘난 척을 해도 여기에 내가 입을 대면 안 된다. 너가 모자란다고 했잖아. 이것이 대자연의 시험지이다. 어떤 사람이 희한하게 내 옆에 와서 깔짝거린다. 천지도 모르는 것이. 그럼 내가 딱 입을 댄다. 너가 아버지에게 뭐라고 축원을 했는지 초발심을 떠올려야 한다. 아니면 시험지에 걸려서 새로 다시가 된다. 지금부터 100일 기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시간만 100일 채웠다해서 공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바르게 공부했을 때, 분명 기운이 맑아지고 주위의 일이 풀리고 너가 축원을 한 것은 스스로 문리가 일어나서 다 정리가 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는 역할이다.
그러니 또 내 인생에 새로운 환경이 오니, 이를 겸손하게 대하고, 이떄부터는 실수를 안 해야 한다. 이런 것을 수련과 같이 시키는 것이다. 나를 이끌어줄 수 있는 지도력 있는 분을 못 만나서 이를 못했다 하더라도, 그래도 너의 육신을 패서 병신을 만들지 않았다면, 아직 기회는 있다. 이 육신을 건강하게 줬다는 것은 항상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너가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빛나게 살 수 있는 길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니 게으르게 살지 말고 항상 공부를 하고, 내 자신을 조금 더 만지고, 내 성격의 모순은 없는가? 이런 것을 찾아가면서 조금씩만 노력을 한다면 길이 열린다. 노력 안하고 잘 살려고 하지 마라. 그냥 계속 어렵게 살아라.
지금까지는 일반인들의 삶이고, 내가 수행자에 가까우면, 이 사람들이 어려움에 꽁꽁 묶여 있으면 이 사람들은 기본이 3년 노력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100일 동안, 내가 3년 기도를 할 것이냐? 아니면 일반적으로 똑같이 살것이냐를 결정하는 기간이다. 3년 하겠다고 했으면 열심히 해서 내가 몰랐던 내 모순을 찾아내고 바르게 바꾸리라 노력하리라.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되면 이제 3년 공부가 들어간다. 3년 동안 내가 가진 모든 모순들을 정리하고 습관들을 바꿔내서, 3년 후에 사회를 다시 접하리라. 이런 각오를 갖고 3년 공부를 한다. 그럼 너한테 줄 수 있는 환경과 기운은 하나님이 스스로 다 해준다. 이 법을 믿으라는 것이다. 다른 것을 하라는게 아니라. 노력하는자 하나님은 내가 항상 뒤에 있으니 절대 너의 뒤를 내가 보살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게시이고 이것을 믿으라는 것이다.
게으른 자야. 나를 믿기만 해라. 내가 다 해줄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한 적이 없다. 노력하는자 하나님이 항상 볼 것이고, 고집피우고 아집피우는 자 하나님이 너를 보지 않을 것이다. 너가 아집 피운다해서 하나님이 벌 안 준다. 응 하고 돌아앉는다. 그러니 이제부터 너가 힘들다.
지구는 교화소 감옥이다. 감옥 안에 육신이란 수갑을 차고 영혼 너희들을 여기에 넣어서 질량을 채우고 있는 중이다. 육신이 영혼성장에 쓰기 좋은 연장이기도 하지만, 환경들을 주고 열심히 안하고 게을리 하면 너의 오장육부들을 틀어서 아프게 할 것이다. 자동수갑이라 수갑이 희한하다. 아집과 고집을 계속 부르면 육신에 암덩어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성을 많이 내거나 화를 많이 내면 혈압이 올라서 그냥 자빠질 것이다.
내가 나와보니 충분히 이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이 있었으므로 이제 내가 바르게 가르쳐줄테니 이를 공부해서 가면 다 좋아진다. 대자연을 바르게 접하고, 주위에 주는 인연들도 바르게 알아서 내가 인연들과 함께 상생하면서 함께 기운을 바르게 같이 써서 빛나게 살면서 이 세상을 살고 가야 한다. 이렇게 바르게 빛나게 살고 가면 해탈은 스스로 된다. 해탈은 얼마나 사람들을 이롭게 살았느냐에 따라 내가 자동으로 해탈되는 것이다. 너를 위해서 살지 못하면 나는 한 뜸도 해탈하지 못한다.
지금 이런 많은 사람들 접하는 환경에 우리에게 주었다는 것은 이 모든 인연들에게 너를 불태워 널리 만중생을 이롭게 하여 살라는 것이다. 그렇게 사니 너가 해탈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힘이 없을 때에는 힘이 없는 그 환경도 감사해라. 이 힘 없는 환경에서 나는 힘을 갖추려고 노력해라. 이 힘을 갖춘 연후에는 이 힘을 남을 이롭게 하면서 살기 위해 모두 쓰니, 만중생들을 이롭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나를 해탈 시키는 것이다. 우리 욕심으로 살고 헤매면서 살면, 구천에 남아 떠돌면서 아주 어려운 행보를 하다가 다시 윤회해서 와야 한다. 그러니 앞으로가 중요하다.
바르게 살면 내 질량이 높아지는데, 내가 원래 사주로 받아온 질량 안에서 낮았던 것이 좋아지는 것이다. 내가 어렵고 자꾸 내 잣대를 갖다대는 것은 받아온 100% 중 30% 밑에서 못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만 살짝 올라서서 중간에만 와도 환희가 일어나고 보이고 들리는 것이 다 달라진다. 중간에 올라오면 더 이상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옳지 않은 것이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을 중도라 한다. 뭐든지 옳은 것이다. 상대가 잘하는 것도, 잘못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이 세상에 나왔다. 이를 알고 내 앞에 모든 환경과 모순들을 바르게 접하는 사람이 중간에 올라온 사람이다. 이 삶을 살 때에는 내가 갑갑한 것이 없다. 이 중도를 행하면서 윗 인연들도 보고, 아래인연들도 보고 하면서 일을 잘 하는 것을 사회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중도지식인들이다.
그런데 전부다 한 쪽이 치우쳐져 있으니 화합이 일어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사고를 일으켜서 30%를 넘어가고 중도에서 사회를 공부하면서, 인연들을 공부하면서 바르게 가니, 70% 위까지 올라간다. 이 70% 위까지 올랐을 때, 내 자리에 온 것이다. 이렇게 올라가는 것이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라, 금방 간다. 50대가 됐다는 것은 이미 경험해야 할 것들은 모두 다 접했기 때문에 정리해서 따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나이가 30대 같으면 금방 못 간다. 앞으로 경험해야만 하는 것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형제들을 이해시켜주러 온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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