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님이 좀 쉬라고 하면 예 하면서 좀 쉬다가, 한 100일 쯤 쉬다가 좀 안 풀어주시나요? 일을 좀 하고 싶은데, 하면서 합의를 봐야 한다. 누가 나한테 쉬라고 하면 좀 쉬어라. 병원에 눕혀놓으면 반성하라고 눕혀놓은 것인데, 반성하긴 뭘 반성해? 뭘 알아야 반성하지. 강의 듣게 하려고 눕혀놓는 것이다. 왜? 공부를 안 했으니까. 내 공부는 안하고 상대가 말 한마디 하면 따지고 욕하고 내 방법이 맞다라고 주장하려 하는데, 공부를 한 것이 아니다.
공부는 법문을 잘 듣고 나서 이해가 되니 공부가 된다. 공부는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내가 모자라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남의 말을 잘 듣는데, 내가 이해가 안 되면 내가 모자라는 것이다. 모자라니 공부를 해야 한다. 저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이해를 못 하는 것도 뭔가 내가 세상을 잘 모르니 이해가 안 된다. 거기에다가 내 방법이 맞고 저것은 아니다라고 달려드니 어려워진다. 저 사람 것이 내게 맞진 않다. 그러나 저 사람한테는 맞다. 지금은 이해가 안 되더라도 일단 다 들어놔라. 다 들어 놓으면 재료가 하나씩 다 들어와서 결국 이해가 되는데, 왜 자꾸 그것을 아니라하며 달려드냐. 분명히 남을 아프게 한 만큼 너가 아파야 한다. 남이 아팠는지 안 아팠는지는 너의 계산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아프면, 나는 모르고 있어도, 상대가 아팠던 질량만큼 내게 어려움으로 온다. 말 한마디를 강해서 해서 그 사람을 턱 받치게 했으면 그것들이 모여서 나를 치러 온다. 그만큼 가르치는데도 왜 상대를 뭐라하고 아프게 하느냐.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이 시대의 자연의 법칙을 알고 그 법칙에 잘 맞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모르고 있으니 가르쳐주고 있다. 내가 아무리 똑똑해도 저 사람을 뭐라할 권리는 없다. 왜? 저 사람이 아무리 내게 맞지 않는 말을 해도, 이 말을 한다는 것은 이 말을 해야할 환경이 되었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 그렇다. 내게 욕을 하고 뭐라해도 안 좋은 환경이 만들어져 있기에 저 사람은 그 이야기가 나온다. 내 잣대로 저 사람 잘못이라 하는데, 저 사람 잘못이 하나도 없다. 이 환경을 받아들여야 나를 발견한다. 사람이 나를 미워하면 나를 미워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내가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기꾼이 내게 오면, 내게 와야만 하는 명분이 대자연에 있어서 나와 인연이 되는 것이다. 내가 남을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것은 계산에 안 넣고, 내가 아파서 힘든 것만 계산에 넣는 것이다. 내가 병원에 들어갔다는 것은 빚쟁이도 벙원은 안 온다. 너 공부하라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이 때 반성할 것은 반성해서 퇴원할 때에는 바뀌어서 나와야 한다. 그래야 다시 아프게 안 한다. 병원 간 놈이 또 병원 간다.
처음으로 아프게 하기 까지의 과정은 많이 봐준 것이다. 그런데 진짜 아프게 했다면, 시간이 되어 이제는 공부를 해야만 하는 때가 온 것이다. 그런데 또 공부는 안하고 내가 맞다라고 하니 이제는 가면 갈수록 어려워진다. 반성을 제대로 해서 반성했다고 흡의를 받았으면 사회에 나오게 해준다. 그럼 여기에서 사회에 맞는 바뀐 행동들을 해야 한다. 내 입장에서는 혁신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전과 똑같이 행동한다? 또 아파야지. 진정 반성이 맞다면 행동으로 바뀌어야지.
병원과 교도소는 같은 곳이다. 산에 갇히는 것도 교도소이다. 유배가는 것 다 같다. 자빠져서 병원갈 사주, 교도소 갈 사주, 산에 들어가서 혼자 공부할 사주는 같은 하나로 나온다. 영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사각형 그리고 그 안에 점을 딱 찍는다. 사방이 막혔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이것 하나 밖에 없어서 다 같은 점괘가 나온다. 그런데 무속인들 자신이 얼마나 공부 됐는냐에 따라 이것을 풀어주는 것이 다른 것이다. 자기 논리로 말하는 사람이 있고, 진정 풀어주는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상좌는 자기 공부를 하고 있으면 되지만, 내 잘났다고 내 방법이 맞다고 고집을 피우면 대자연이 친다.왜 고집을 자꾸 피우냐? 왜 사람들을 이겨야 하는데? 신의 일꾼은 사람들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왜 내 방법대로 주장을 하고 그 사람이 내게 굽혀야 되는가? 그 사람들에게 맞게 끔 내가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 신의 일꾼들이다. 그 사람들의 근기에 맞게 내가 노력을 해줘야 한다. 왜 그 사람들이 내 방법대로 안 된다고 내가 짜증을 내고 싸움을 하고 세게 말하거나 뭘 던지질 안하나. 던진 만큼 너가 자빠질 것을 왜 모르냐. 여기는 공부하는 도량이다. 내 자신에 모순을 찾는 도량이다. 내 자신의 모순을 찾아서 이것을 고쳐야 한다. 목탁을 치면서 찾든, 고구마를 팔면서 찾든,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찾든, 혼자 산 속에 들어가서 하든, 조직에 들어가서 하든, 내 모순을 찾아라. 목탁은 장난감이지. 꽹가리 들고 리듬 타는 악기를 갖고 노는 거랑 뭐가 달라. 리듬타면서 있으니 시간이 잘 가는기라. 너 자신의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이 상좌들이다.
상좌는 어떻게 구별을 하는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상좌가 아닌 사람들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는다. 일터에 갔다가 저녁에 집에 와서 밥 먹고 또 내일 아침 일터로 나가는 것의 반복이다. 누구하고 다툼할 시간도 없다. 그래서 내 인성 공부를 안 해도 된다.
많은 사람들을 접해야할 사람들은 내 인성 공부를 해야만 한다. 왜? 내가 조금 잘못 말하거나 잘못 한 것이 상대방 인생에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 너의 말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사는 방향을 잘못된 방향으로 틀었다면, 그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 이것이 상좌들이다.
도량은 내 공부하는 곳이다. 내 성질 나는대로 하는 곳이 아니다. 그렇게 상대를 힘들게 한 만큼 니가 어려워진다고 얼마나 몇 년 동안 가르쳤나. 나는 가르쳐는 줘도 노력은 본인들이 해야 한다. 안해도 되는데 아픔도 너가 겪는다. 죽어봐야 저승맛을 안다. 니가 자빠져서 아파봐야 남의 심정을 안다면 너도 자빠져 봐야지.
건강은 한 방에 간다. 육신을 왜 만들어놨게? 너희들 벌주려고 만들어놨다. 육신을 잘 써서 인생을 바르게 살면 빛나지만, 잘못 쓰면 육신으로 너희들 벌을 준다. 도량에 왔는데 내 멋대로 하려면 산 속에 혼자서 해야 된다. 도량을 떠나라. 나도 내 멋대로 하려고 산 속에서 혼자 공부했다. 누가 뭐라 하나?
그러나 단 사람이라도 같이 있어서 둘이 됐다면, 상대와 맞춰서 살아야 한다. 3명 있는데 가면 조금 더 수월하지만 또 맞춰서 살아야 한다. 10명이 있다면 더 수월한데, 그러나 그 사라들과 다 맞추어서 살아야 한다. 30명 있는데 가면 더 수월하고 환경도 좋다. 왜? 저마다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 사람들과 맞추어 살아야 하는 것도 너의 의무이다.
상대를 어렵게 한 만큼 나한테 아픔으로 치고 온다. 인간은 이렇게 운영되게 되어 있다. 이렇게 자연의 법칙을 알려주는대도 어려움을 겪으려고 연습해보려면 연습해봐라.
나는 남을 아프게 안 했습니다. 어 한번 보자. 너가 결국 아프면 남을 아프게 한 것이다. 남을 어렵게 했다면 내가 어려워진다. 남을 힘들게 했다면 내가 힘들어진다. 남을 즐겁게 했다면, 내게는 분명히 즐거움이 온다. 남을 기쁘게 했다면, 분명 내게는 기쁨이 온다. 남을 행복하게 했다면, 나는 분명 행복하게 된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남을 힘들게 해놓고 나는 힘이 안 들려고 들면, 이는 뭔가 한참 거꾸로 가는 것이다.
나는 자연의 일꾼이다. 자연을 함부러 욕하지 말고, 신들을 함부러 욕하지 마라. 자연의 법칙은 0.1mm도 틀리게 운행되지 않는다. 내 아픔은 내가 만들어서 겪는 것이다. 내 즐거움도 내가 만들어서 겪는 것이다.
고집 부리지 마라. 이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그리도 고집을 부리냐. 순리대로 따르며 가는 것이 즐거움을 얻는 방법이다. 남 위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나요?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상대는 등신이라서 내 욕을 들어먹고 있는 것 같냐? 더러워서 피한다. 내가 더러운 자가 되어서 되겠냐? 내가 성도 내고 욕도 해도 되지만 판단과 결정은 상대가 하는 것이다. 상대를 어렵게 만들려 하지 마라. 해도 되는데, 그 사람 아픈 만큼 정확히 돌려줄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나이가 많다해서 윗사람도 아니다. 윗사람은 위대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윗사람이다. 우리는 감히 위대한 사람으로 살아보려 하지 못하는 것을 그 분은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윗사람이다. 나는 저 사람과 다투고 있는데, 윗사람은 저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으니 윗사람이다. 나이가 윗사람이 아니다. 나는 나이가 그저 많아지는 것이지 윗사람이 아니다. 윗사람은 상대를 위해 노력할 때만이 윗사람이 된다. 노력한 것이 없으면 절대 윗사람이 될 수 없다. 내 자신을 불태워서 상대를 이롭게 해라. 그럼 나는 스스로 윗사람이 된다. 존경을 받고 추앙을 받게 된다. 나의 힘은 없는 것 같지만 대자연에 다 있다. 너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힘이 내게 오는 것이지, 대자연의 힘을 부른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하는 행위를 바꾸면 에너지는 정확히 돌아서 내게 온다. 홍익인간들은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고 살아야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화내고 성내고 내 꼬라지 내는 게 홍익인간들이 아니다.
내 앞의 사람들부터 조금씩 아끼는 연습을 하는 것이 수련이다. 내가 이해 안되게 했으면 미안하다.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너가 뭔가를 내게 말하는데, 내가 바르게 듣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생각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한뜸한뜸 노력하니까 언젠가는 내가 말하는 것을 저 사람이 다 바르게 이해하고,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이 내게 그대로 이해가 되네? 이렇게 커가는 것이다.
상대에게 성낼 수 있는 자격은 내게 주지 않았다. 그랬는데 성을 냈다면 고스란히 너한테 돌아온다. 절대 잊지 마라. 대자연의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상대가 내게 욕을 해도 상대에게 화낼 자격이 없는 것이다. 욕은 분명히 만들어져서 내게 와야만 하니까 오는 것이다. 욕을 맞았으면 이를 붙들고 왜 나는 욕을 맞아야만 했는가를 풀어야지, 오는 욕을 막으려 든다해서 막아지나. 너가 잘나려고 한다고 해서 너가 잘나지나? 내가 뒷바라지를 좀 해주면 어떠나? 이게 수행이다. 수행자는 빗자루를 들어야 한다.
도량에 많은 도반들이 오고 가매, 내가 이 도량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것은 진짜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3년만 입을 닫고, 빗자루질 해라. 못났으니 수행하는 것인데, 못난 놈이 입을 열어서 되는가. 무엇이 그렇게 잘났어? 공부하는 사람은 무엇이든 받아들어야 하고, 이것이 공부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 내 공부가 되는 것이지, 이것을 받아치는 것은 반항하는 것이다. 밖에서 오는 사람한테는 함부러 못하고 내 옆 사람한테는 함부러 한다. 내 옆 사람 처지가 나와 비슷하니 그것을 위로 올라탈라고. 에이 못난 놈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기운이 다 떨어져서 왔으니, 거기에나 올라타려고 한다. 도량에 들어가는 것은 내 기운이 다 소진되어서 들어간다. 그 사람들을 서로 아껴야 되지 않는가? 이 사람들이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조금 잘못하면 어떠노? 조금 아끼고 보듬어 주면 결국 너의 힘이 될 텐데… 그 힘들이 합쳐져서 잘 지내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보기 좋노.
불만 있으면 떠나라. 여기는 사람을 잡는 곳이 아니다. 오국장도 그렇고 자신의 재산을 전부 여기에 넣어놓고 이렇게 공부할 수 있는 도량환경을 만들어줬는데, 이것이 얼마나 고마운가. 당신도 자기 재산을 다 내놔서 이렇게 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공부하는데 서로 이해하고 노력하는 공부를 해야지. 똑똑한 놈이 최고 등신이다.
대자연에서 똑똑한 소질을 주니 바로 엉뚱한 짓을 하고 있지 않은가. 공부를 더 열심히 크게 하라고 똑똑한 소질을 줬다. 똑똑하니 공부는 안 하고 남 위에 올라타려고 한다. 그러니 나중에 대자연에게 얻어터지기 시작한다. 대자연에서 내게 이런 힘을 준 만큼 더 열심히 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보석이 된다. 이것이 신의 제자들이고 상좌들이다. 내 잘났다고 하면 얻어 터지는 것이 상좌라고. 또 동시에 사람을 위해서 살면 빛나는 것이 상좌이다.
우리의 사는 삶의 방식을 바꿔놓고 인류의 사는 방식을 바꿔놔야하는 홍익인간들이다. 이것이 민족의 사명을 띠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고함지르고 화내라고 하늘에서 네게 힘을 줬던가? 기운을 크게 줬더니 쓰는 법을 모른다. 내가 기운이 크면 백성들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지금은 내가 비메이커라 혼내면 뒤돌아설까봐 혼을 못 내는 중인데, 내가 메이커가 되어서 세상이 알아주면 지를 위해 사는 상좌들에게 철퇴를 내릴 것이다. 전부 다 오냐오냐 해주는 것은 뒤돌아설까봐 봐주는 것이다. 그런데 지가 잘나서 그런 줄 안다. 그래도 된다. 니 아픔은 니가 겪을 테니까. 잘 나려고 하지 마라. 잘난 것이 못난 것이다. 수행자들은 항상 내가 겸손하고 나를 낮추고 상대를 바라봐야 한다. 상대가 모순이 있어도 그것도 내 공부로 받아들여야 내 모순을 없앨 수 있는 것이다. 잘못 행동하는 것도 사랑스러워. 왜? 나한테 교훈을 주잖아. 이것이 도량공부이다. 도량공부는 입을 닫고 나를 낮추어야 한다. 잘났다고 고개 드는 만큼 얻어 터진다. 그럼 도량에 들어오지 말아야지. 이런 도량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 되나. 마음이 닫혀 있으면 이렇게 좋은 신선도량도 지옥처럼 느껴진다. 이런 좋은 환경에서도 내가 바르고 공부 못하면, 더 안 좋은 환경으로 내려가서 공부해야지.
내가 쓰러지면 병원까지 들고갈 사람들이 있잖냐. 혼자 공부하면 내가 죽던 쓰러지던 병원에 데려갈 사람이 없다. 데굴데굴 뒹굴다가 뒤져야 한다. 이런 천벌을 받아야 한다. 여기에서 공부할 사람은 다시 마음 잡아서 공부하고, 공부 안 할 사람은 떠나라. 당신들이 한번씩 잘난 척 할 때마다 내 얼굴에 먹칠하는 것이다. 조금만 좋아져서 기름끼가 차면 아주 지랄들 한다. 이러면 여기에 내가 아예 안 나타날 것이다. 초발심을 생각해야지. 얼마나 마음이 어려워서 왔었나. 조금만 좋아지면 또 깃대가 살아가지고. 그러다가 또 한방 맞으면 좋으나? 빚자루를 들고 걸레를 들어라. 다른 사람들은 즐겨도, 이 사람들이 잘 지낼 수 있도록 나는 닦아. 그래야 그 사람들이 결국 나를 아낀다. 내 행위가 결국 상대들을 만든다.
공부할 때는 자존심은 물론, 내 자신조차도 버리는 것이 공부이다. 내가 이 나이 먹고 지금 어떻게 공부를… 내가 육신이 멀쩡하고 목숨이 붙어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깨칠 수 있고, 잡을 수 있는 기간이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 조금이나마 노력해서 육신을 벗고 갈 때에는 두 번 다시 깨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차원계와 여기는 연결이 되어 있다. 내가 이 인생에서 노력한 만큼, 차원계에 가서 천년 만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도 좋은 말만 하면 내가 인기가 있을 줄 안다. 그러나 힘이 들어도 뭐라 할 때는 뭐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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