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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며느리를 딸같이 생각

by 웰빙원 2026. 2. 8.

[263] 며느리를 딸같이 생각

 

질문: 며느리를 아무리 딸 같이 생각해도 딸이랑 똑같이 대해지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딸같이 대할 수 있을까요?

 

며느리를 딸같이 생각을 하니까 딸이 안 되는 겁니다. 며느리를 딸로 삼으면 딸이 될 것인데 딸같이 생각을 하는 거죠. 어디 가서 물으면 그러잖아요, 며느리를 내 딸같이 생각하려 한다고. 그러니까 딸같이 대하는 거지 딸로 대할 수는 없는 거죠. 우리가 며느리가 내 집에 들어오면 내 딸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가 고부 갈등이 일어나는 원인이, 다른 데서 커 가지고 내 집에 오는데 내 집에 오면 내 식구가 되는 거거든요. 내 식구가 되는데 오는 사람도 받아들이는 사람도 기초가 없어요.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하면 며느리가 시집을 오게 되잖아요. 시집을 온 거지 내 자식을 너한테 뺏긴 게 아니거든요. 너는 이 집에 시집을 온 겁니다. 그러면 이 집 식구가 되는 거죠. 식구로 시집을 온 거지, '아들을 내가 너한테 줄게' 이렇게 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죠. 아들은 이 집에 있고 너는 이 집에 와서 살기 위해서 시집을 온 거예요. 그러면 이 집 식구가 되어 가지고 살아야 되는데, 제 남편하고만 자꾸 살려고 한단 말이죠. 제 남편하고만 그렇게 되면 이 계약에 뭔가 문제가 좀 있는 겁니다. 우리가 계약이라는 조건을 우리 국민은 잘 모르고 있어요. 살아가면서 서양에는 계약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는데 우리는 계약 문화가 없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오늘날에 이런 해프닝이 벌어집니다.

과거에 우리가 100년 전이고 200년 전이고 우리 선조님들이 이렇게 살 때는 계약 문화가 발달 안 된 데서 정확하게 일 처리를 이루었어요. 그때 시집을 가 가지고는 며느리가 아들을 뺏지 않았어요. 부엌살림을 열심히 살았지. 근데 부엌살림을 열심히 사는데 아들이 자꾸 제 부인 보고 그걸 못 하게 하든지 나하고 놀자고 이렇게 됐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이 며느리는 집안일을 열심히 하려고 시어머니 시아버지 눈치 봐가면서 집안 살림을 열심히 살려고 노력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집안일을 안 하고 남편하고 자꾸 같이 있으려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 며느리가 와 가지고 시집을 온 게 아니고 남편을 뺏으러 온 거예요.

지금 남편은 누구 자식이냐 하면 엄마 자식이고 아버지 자식이고 내 동생 오빠고 그래요. 잘 살던 집안에 이 며느리가 하나 오더니만 내 오빠를 뺏어가네. 잘 살던 집안에 이 여자가 하나 시집오더니만 내 자식을 뺏어가 버리네. 자꾸 지가 자꾸 이렇게 차지하려 그러고 나한테서 멀리하게 하니까 미운 겁니다. 뭐 때문에 미운지 몰라요, 나는 지금. 시엄마가 지금 뭐 때문에 미운지 모른다니까요. 근데 미운 만큼이 어느 만큼이냐 하면 내 자식이라고 품은 만큼, 네가 뺏어가는 만큼 미운 거예요. 0.1mm도 더도 덜도 안 되는 겁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 미워해요? 시아버지는 안 미워하죠. 시아버지는 욕심을 안 갖고 있거든요. 내 자식이라는 욕심을 가지고 집착을 심은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며느리가 내 자식하고 잘 사는 걸 보니 좋아하는 건데, 시어머니는 자꾸 샘을 하는 거죠. 이게 왜, 내 자식에 대한 집착의 욕심이 그만큼 강했다는 거죠. 그러니 여기 지금 이 며느리가 오기 전에는 일을 갔다가 오면, 어디 밖에 나갔다 오면 어머니를 찾고 인사를 하고 항상 어머니한테 뭘 잘해주던 게 이제 잠깐 보고는 얼른 제 마누라한테 바쁘거든요. 이제 요만큼 차이 나는 만큼 내가 지금 말은 안 하지만 뭔가가 딱 꼬이는 겁니다. 이게 하루 이틀 자꾸 되니까 이제 여기 쌓이죠. 쌓이니까 괜히 며느리한테 화풀이가 되기 시작을 하는 거예요. 왜 미운지 지금 몰라요 나도. 살살 화살이 가지요.

그래서 이때부터 이유 모르고 감정을 사기 시작을 합니다. 감정이 살살 감기는 거예요. 이게 이제 날짜가 가면서 이걸 풀지를 못하고 이유를 모르면 이게 두꺼워지고 평생 동안 원수가 됩니다. 여기 집착한 만큼 나는 손실을 보면 뺏기는 걸로 되어 있거든요. 고부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고, 우리가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해서는 딸이 절대 안 되죠. 안 되는 겁니다. 딸처럼 생각하지 말고 딸로 받아주십시오. 내 집에 이제 와서 이 애는 내 딸이다, 며느리로 보지 말라는 거죠. 내 집에 왔으니 내 식구니까 내 딸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품어야 돼. 그러면 욕심이 안 생깁니다. 내 딸로 품을 줄 알아야 된다는 거죠.

그러면 그 집에 시집을 갔으면 나는 그 집 식구가 되어 줘야 해요. 근데 이 며느리가 나중에 그 남편하고 다툼이 생기면 "너희 집에는 이러니" 그러거든요. 그럼 그건 제 집 아니라는 얘기예요. 남의 집에 와 있어. 남의 집에 와서 또 제멋대로 하려 그러고 이중 포지션을 쓰는 거죠. 여기에 와서 이제 자기 행세를 하는 겁니다. 분명치 않으면서 그런 역할을 하니까 여기서 문제들이 되는 거예요. 상대 집에 가서는 여기가 이제 내 집이에요. 그렇게 해 가지고 여기에서 내 가족으로 같이 살아나가는 것인데, 처음에는 가서 3년 동안 공부를 하는 겁니다. 내가 낯선 집에 가 가지고 처음부터 딱딱거리면 안 되죠. 가면 3년 동안 공부를 한다, 왜, 여기서 적응을 해야 되기 때문에. 이제 여기 살아야 되니까 3년 동안은 공부를 해야 돼. 큰 공부죠 이게. 일평생을 살아야 되는데 그런 기본 공부도 안 하고는 안 된다 이 말이죠.

근데 그런 공부를 안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죠. 며느리는 시집가면 그 집에 가서 3년 동안 공부한다고 생각을 하고 갔어야 됩니다. 이게 근본이에요. 그러면 이 며느리가 왔을 때는 이 시어머니는 며느리에 대해서 알려고 드는 게 3년 걸려야 돼. 내가 키운 게 아니잖아요. 내가 키운 게 아닌데 내 식구로 맞아들이기 위해서는 3년 동안 서로가 노력을 해야 돼요. 며느리도 노력을 해야 되고 나도 노력을 해야 되고. 이걸 노력을 안 했다라고 하면은 너희 집안에서 분명히 사고가 앞으로 일어납니다. 상충을 치거든요. 노력을 안 한 대가가 요렇게 돌아오는 거예요.

대자연의 법칙, 이제 여기서 원칙 나갑니다. 이때까지 설명을 하는 것이고, 원칙. 내가 남의 집에 지금 들어가면 지금부터 평생을 살 집이라면 3년 동안 공부를 안 하고는 바르게 살아지지 못한다. 남의 식구를 내 식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3년 동안 노력을 하고 공부를 안 하면 절대 내 식구가 되지 않는다. 여기는 차원이기 때문에 큰 공부의 역할이, 큰 인생이 걸려 있는 것들은 3년 동안 노력을 해야만 같이 상생을 이루고 도움이 되고 내 힘이 되고 서로의 힘이 되어 가지고 이 집안이 일어설 수 있는, 꽃을 피울 수 있는, 어려움을 다 풀 수 있는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거죠. 그래서 내 딸같이 생각한다 이걸로는 안 된다. 직접 이 식구가 되게끔 우리가 노력을 해야 된다. 요렇게 가는 게 맞습니다. 이해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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