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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266]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사람 (1,2)

by 웰빙원 2026. 2. 8.

[265]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사람

 

질문: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 편에 붙었다 저 편에 붙었다 하는 것을 보고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는 사람은 왜 보게 되는 것입니까?

 

그 참 일상생활에 많죠. 이거 다 궁금합니까?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요. 우리가 이거는 주대 없는 행동이라고 그러죠. 이거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인데, 우리가 보는 사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잘못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 여기서 이 말 하고 저기서 이 말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거예요. 여기서 이 말 해도 이 사람한테 안 먹히면 저쪽에 가서 해야 됩니다. 저쪽에서 이 말이 안 먹히면 저기 가서 또 해야 돼요. 왜, 나는 지금 답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상대가 이걸 풀어주지 못하면 저쪽에서 구해야죠. 우리가 여기서 물으니까 답이 안 나오니까 딴 데 가서 또 묻잖아요. 똑같은 겁니다, 원리는.

그래서 이 사람한테 붙었다가 저 사람한테 붙는다는데, 사람한테 붙으니까 뭔가 볼 일이 없으니까 저기 가서 또 붙는 거거든요. 이건 잘못된 게 아니에요. 이 사람한테 갔을 때 목적 달성, 내가 목적한 바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 사람한테 갈 때는 분명히 목적이 있습니다. 내가 목적을 모르고 가는 수는 있겠지만 사람은 목적이 분명하다는 거죠. 이걸 정리를 안 해봐서 내가 지금 모르고 있는 거예요. 근데 무언의 이 목적이 있는데, 여기서 이 목적에 몇 프로를 얻어야 사람이 그 자리에서 머물게 되느냐. 목적의 30%를 얻게 되면 그 자리에서 머물고 딴 데 가서 헤매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프로테이지예요, 이게.

근데 30%를 못 얻었을 때, 이럴 때는 딴 데 가서 또 기웃거린다는 얘기죠. 70%를 내가 얻었다, 70%를 얻게 되면 기웃거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지만 이제 내가 필요한 것을 전부 다 이루었기 때문에 내 삶 자체가 한 단계 올라가 버려서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상대는 갑갑한데 옆에서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이 갑갑한지도 모르고 그 사람을 안 좋은 평가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자세히 나를 한번 지켜보십시오. 나 또한 그러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그렇게 합니다. 근데 내 거는 내가 보지 못하고 상대 건 내가 보이는 거죠.

상대 게 내가 보인다라는 것은 나도 그런 게 분명히 있음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하고 더 자주 보고 있고 그 말을 내가 직접 할 정도면 네 걸 봐보면 너는 정확하게 농도가 진하게 그런 게 있다. 근데 간접적으로 조금씩만 보이면 나는 걱정할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그런 게 조금 있다, 잠재하고 있구나. 만일에 풍 맞은 사람을 내가 자주 보고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내가 조금 이렇게 관심이 간다 이 정도 되면, 나도 풍이 올 수 있는 선이 30% 농도보다 넘어서 가지고 있다, 요래 보면 돼요. 그래서 내가 언제 풍이 딱 오느냐, 70% 딱 가면 풍이 딱 온다 이 말이죠. 30% 딱 넘어서부터는 나한테 직접적으로 가르쳐 주기 시작을 합니다.

30% 미만으로 풍이 올 수 있는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이 30% 미만일 때는 내가 그런 걸 보고 관심을 안 갖게 돼요. 근데 요런 원리나 똑같은 겁니다. 지금 남의 일을 볼 때 내가 이제 비유하기 쉽게 해주려고 이걸 갖다 대는데, 남이 행동하는 거를 보고 '저 사람 왜 저러지' 하고 관심이 간다라면 너는 50% 넘는 사람이에요. 나한테 지금 그런 것이 농도가 진하게 있는 게 50% 넘는다. 그래서 너한테 바로 놓는 겁니다. 이게 가깝게 다가온 거예요. 그럼 나한테 그 농도가 진하기 때문에 이게 끌려와 있는 건데, 그런 사람하고 오는 거예요, 내가 지금. 근데 그 사람을 자꾸 탓하고 있으면 나는 지금 농도는 나는 계속 진해 가고 있고 시간은 가고 있으니까 정확하게 나도 그 소리 들을 때가 다 와 간다 이 말이죠.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런 행위를 하면서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또 뜯어요. 내 걸 내가 못 보고 있다, 남은 보이는데 요렇게 되는 거거든.

그래서 요럴 때는 그렇다고 뭐 내가 뭐 나쁘다 생각하지만 내가 모르고 가고 있으니 빨리 그때라도 얼른 누가 잡아줄 수 있다면 잡는 게 좋다라는 거죠. 무엇이든지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든 사회 살면서 어떤 병이든 사회 살면서 어떤 욕이든, 뭐 나쁜 행동을 하든 이런 것들이 정확하게 나한테 지금 다가오는 농도가 30%, 50%, 70% 요기에 따라 가지고 내가 그런 유전자가 지금 자라고 있다. 이걸 정확하게 나를 짚어 보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아, 이거 보이면 이렇다 하던데' 지금은 안 그럴지라도 분명히 내가 다시 짚어볼 때 이제부터 내가 조심하기 시작을 하고, 농도가 더 가지를 않고 이제부터 다스려 갈 수 있는, 그렇게 해서 너한테 천대받지 않는, 천대받는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는 요렇게 가라는 거거든요. 세상의 디자인이 지금 가르쳐 주고 있는 거예요. 네가 보고 있는 게 네 공부다 이 말이죠. 여기 이해가 갑니까?

 

 

 

 

 

질문: 비슷한 경우, 시소처럼 양쪽을 오가면서 이간질을 시켜 싸움을 붙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간질을 당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거는 그 부분도 섞여 있고, 내가 그런 걸 당할 때는 나도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내가 그런 일을 지금 당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나를 이간하고 저쪽을 이간해서 이러고 있다 이럴 때는 나도 지금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공부를 시키는 거거든요. 근데 그런 사람을 나쁘게 봐야 될 것이냐. 내가 그런 것들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나한테 와서 이런 역할을 하는 겁니다. 이걸 바르게 발견해 가지고 나한테 쓴다면 굉장히 나한테는 고마운 거죠. 근데 이간질을 하는 게 처음부터 이간질을 당하는 사람이 계속 이간질 당해요. 한 번 그런 걸 당한 사람은 또 당해요. 왜, 그때 지금 답을 못 찾았기 때문에 또 그런 일을 당할 만큼 또 커가고 있는데 너는 모르고 있다라는 거죠.

그래서 이간질 하는 게 나쁜 거냐, 좋은 겁니다. 이간질 하는 사람을 나쁘게 보지 말라는 거죠. 그럴 일이 있어서 지금 그 일이, 이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라는 얘기입니다. 그 속에서 내 거를 찾을 거는 찾고 다음에 더 큰 이러한 것들이 일어나지 않게끔 내가 상황을 지금 만들어 가야지, 그렇게 하는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라는 거죠. 상황은 그런 걸 빚어 놓았고 그 사람이 그렇게 한다고 그 사람을 매도하고 나면 내 거는 지금 것도 잘못되고 다음에 것도 또 발전하지 못하고, 또 다 된 밥에 재 뿌릴 사람이 정확하게 오거든요. 그런 사람은 그런 거로 지금 공부를 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번만 딱 내가 이 기초를 알면, '아, 내가 지금 기분은 좀 안 좋더라도 이걸 잡아 가지고 그 사람을 탓할 게 아니고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게 만든 나를 한번 보는' 요렇게 하고 나면 내가 엄청나게 성장을 하고 다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일이 잘 풀리게 된다는 거죠. 남 탓 하지 마라고 하는 게 바로 이것도 그 안에 들어갑니다. 스승님 공부는 최고 근본적인 게 뭐냐면 남 탓 하지 마라예요. 잘못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잘못된 과오가 나한테 오는 것이지 너희들이 이걸 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 말이죠. 내가 잘못했으면 그 과오는 나한테 분명히 와서 가르쳐 줘야만 되는 거예요. 근데 이걸 가르쳐 준 것인데 이거를 남 탓을 하고 나를 바르게 잡아가지 않으니 조금 있다가 더 큰 것으로 나는 당하고 또 남 탓을 해야 되고, 여기서도 모르니 또 더 큰 것을 당하고 또 남 탓을 해야 되고. 나는 절대 발전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맨날 남 탓 하는 자리에 머물러 있다라는 거죠.

 

남 탓을 하면 나는 정확하게 어려우면서 풀리지 않습니다. 더 어려워지는 길로만 가는 것이지, 이게 내가 어려움이 풀리려면 내가 남 탓을 안 하는 데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기준이에요. 우리가 어려워지고 좋아지고 하는 척도가 여기에 있다 이 말이에요.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은 계속 어려워집니다, 한 칸씩. 근데 남 탓을 이제 탁 멈추는 순간에 이제부터 너는 정지가 됩니다. 내려가는 게 정지가 되고 여기서부터 내 자신을 보게 되고 조금씩 노력하게 되고 이것이 올라가는 척도가 이렇게 바뀌는 겁니다. 이건 기준이에요.

그래서 우리 사람들이 남 탓하고 남 간섭하는 거에 병이 걸려 있다 이 말이죠. 워낙 똑똑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다. 우리가 무식할 때는 남 탓 안 해요. 똑똑하니까 남 탓을 하는 겁니다. 무식하면, 똑똑하지 못하면 남의 게 어떤지 보이지를 않아서 남 탓을 안 하고 남 간섭도 안 합니다. 어떤 마을에 과거에 보면 나무라고 간섭 많이 하고 다니는 사람 있죠. 똑똑해서 그러고 다니거든요. 똑똑해서 보는 것마다 간섭 다 할 수 있는 만큼 똑똑한 겁니다. 근데 이 사람 삶이 어때요? 잘 사는 사람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왜, 네 것은 안 하고 남 것만 계속하고 다니는 거예요. 시간이 내 것을 70% 해야 되는데, 그래야 내가 좋아지거든요. 남의 것 간섭, 남의 것 탓, 남의 것 뭐 이런 것을 갖다가 70% 해버리니 나는 절대 좋아지지 않는다죠. 90% 그렇게 버리면 나는 엄청나게 어려워져요. 갈수록 나한테로 돌아오라. 너는 네 삶 사는 거지 남의 것 간섭하고 사는 거는 네 시간을 허비하는 겁니다.

남의 거를 이렇게 보는 거는 좋죠. 듣는 거는 좋죠. 들으면 이게 내 것으로 가져오기 때문에 좋은 거예요. 이러면 남의 에너지를 받아 가지고 나한테 쓰기 때문에 나는 질이 좋아지는 겁니다. 근데 남의 거를 간섭을 하게 되면 내 시간을 까먹는 게 되어 가지고 너는 자꾸 어려워져요. 원리가 그렇게 돌아가는 겁니다. 이해됩니까?

 

 

 

[265,266]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사람 (1,2)

 

질문: 남에게 가슴 아픈 말이나 악담을 하면 자신에게 되돌아와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남한테 악담을 하는 거는 악담을 받을 수 있는 짓을 해서 돌아가는 겁니다. 악담을 하면 누가 아파요? 악담을 받는 사람이 아파요, 한 사람이 아파요? 받는 사람이 아프죠. 한 사람은 조금 아파요, 안 아파요? 덜 아프죠. 요거는 받는 사람이 70% 지금 악담을 받을 이런 원인이 제공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받은 것이지, 누가 악담을 하느냐라고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참 이 이치를 모르고 있는 상황이에요. 하는 사람은 30% 악담을 할 수밖에 없게끔 작용을 받아서 내 입에서 튀어나오게 만드는 게 되는 거죠. 그러면 이 사람도 딴 데 악담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것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겁니다. 앞으로 네가 악담을 자꾸 하지만 네가 네 공부를 안 하게 되면 이 상대 역할이라는 게 30% 가지고 있는 게 네 것이 지금 발복할 것을 예고를 하는 것이고, 악담을 받은 사람은 지금 받을 만큼 채워온 거예요. 이 사람은 지금 받고 있는 거고 너는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거고 여기서 또 네 공부 시키는 거거든요.

내가 상대한테 욕을 하고 나면 욕한 사람은 공부의 권리가 있는 거고 욕 받은 사람은 두드려 맞은 겁니다. 원리가 그래요. 내가 욕한 사람이 너는 욕하고 나면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욕을 하고 돌아서서 너는 네 일상생활에 들어가 버리면 조금씩 네가 앞으로 이런 것들이, 욕하는 사람이 한 번만 욕을 하지는 않거든요. 몇 번 욕하고 다니면서 네 공부를 안 하게 되면은 네가 정확하게 이 욕을 듣고 악담을 받는 이런 처지로 바뀝니다. 그래서 악담을 하는 사람은 잘하는 것이고 악담을 받은 사람은 잘 받은 겁니다. 이걸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거죠.

근데 악담을 내가 받고 나면은 한 방 먹었다는 거죠. 한 방 먹었으면 정신을 번쩍 차려야 되는 겁니다. 근데 정신을 번쩍 안 차리고 상대를 막 원망을 해요. 그러면 조금 있다 망치 들고 또 와요. 이래서 또 때린다는 얘기죠. 이제 조금 큰 망치 가져와요. 항상 몇 미리 더 큰 망치를 가져온다고. 이렇게 해서 계속 악담을 받는 사람은 또 받아요. 요럴 때 한번 받았을 때 입 다물어라. 남 탓 하지 말고 왜 내가 이런 악담을 받아야 되는지 뭔가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내 자신 주위를 파보고 내가 이때까지 행동한 걸 다시 한번 곰곰이 씹어보는, 그런 악담을 받고도 내가 지금 자수하고 내 공부를 안 한다면 너는 또 맞아도 쌉니다. 그래서 악담을 하는 것은 나는 환영합니다. 이해가 갔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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