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엇인가? 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우리가 죄에 대한 본질을 좀 알아야 되고, 누가 내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도 내 죄는 누가 대신해서 사해 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도 내 죄는 대신해서 사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은 당신이 할 수 있을지라도 말을 한다고 죄가 사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내가 나의 분별을 해 갖고 내가 너한테 그래 말은 할 수 있으나, 그거는 내 분별로 말한 것이지 대자연의 법칙은 아니라는 거죠. 대자연의 법칙은 정확하게 법칙을 지금 말합니다.
그걸 물으니까 대자연의 법칙은 하느님도 내 죄를 사해줄 수가 없기 때문에 운용하고 바라보고 계십니다. 죄는 네가 하되 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는 데 힘쓰는 게 대자연이다, 이게 하느님입니다. 네가 가는 길을 아주 갈 수 있는 이 환경을 빚어 주는 게 이게 하느님이시지, 이래서 우리가 노력하면서 살아야 되는 게 70% 있고 우리가 인생을 사는 건 내 인생이지 하느님 인생이 아니에요. 내가 70% 내가 열심히 해서 살아야 되고 30% 하느님이 도와주신다, 대자연이 스스로 돕는다. 요렇게 해서 3대 7의 법칙으로 하여금 절대로 하느님이 30%를 넘어 이게 그 행위를 하시면 하느님이 월권 행위를 하는 겁니다.
대자연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요. 그래서 내 인생은 내가 살아 갖고 내가 원죄를 사하게 만들어지게끔 되어 있는 거지 하느님이 대신해 가지고 그 무거운 거를 내가 짊어져 줄 테니까 네 죄를 벗게 하겠다는 건 절대 없다 이 말이죠. 하느님도 대자연의 법칙에 거스르는 일은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럼 하느님이 사형 받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형을 받아야 되는데 하느님을 잡아 가둘 교도소가 없어 공간이 없다 이 말이죠. 하느님을 잡아둘 데가 있어야지. 그래서 절대 그런 법칙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내 죄를 사하고 가셨다는 것은, 예수가 내 죄를 사하고 가셨으면 정확하게 지금 나는 지금 천당 가 있어야 되는 겁니다. 예수가 내 죄를 다 사하고 갔다면 나는 천당 가 있어야지 여긴 왜 있느냐. 여긴 네가 왜 있느냐면 네 죄를 사려고 노력 중이라. 예수의 그 뜻은 거룩하다는 겁니다. 예수의 그 뜻이 거룩하다 이거는 말 됩니다. 하지만 예수가 내 죄를 다 가지고 갔다라는 거는 이야기가 안 돼요. 그거는 2천 년 전에 그 사람들한테 이야기하니까 그런가 싶어 가지고 그걸 기록을 해서 그분을 찬양할지 몰라도 오늘날은 지식 사회예요.
죄가 과연 뭔가. 죄는 원죄가 있고 현재가 있는 것인데, 현재는 너희들이 살아가면서 윤회를 하면서 3, 4차원에서 전부 다 우리는 소멸하고 소멸하는 겁니다. 내가 당신한테 잘못한 죄가 있으면 내가 지금 그 대가를 받아서 내가 어려워지게 살아요. 이것이 현재를 갚는 겁니다. 내가 잘한 게 있다면 잘한 답은 분명히 받는다. 이게 현생에 일어나는 일은 뭐든지 상호간에 이루어져 갖고 녹아버립니다.
우리의 죄는 뭐냐, 원죄다. 대우주에 있을 때 스스로 지은 죄가 이걸 원죄라 합니다. 우리는 대우주의 운용의 주체다 이 말이죠. 대우주의 운용의 주체인 우리가 운용을 하면서 역행하면서 행한 것이 있다. 유한 우주와 무한 우주가 있는데 무한을 천이라 하고 이 유한을 지라 한다. 천지 분리되기 전 무한 우주 스스로 있을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세포들이기 때문에 운용을 하는 주체입니다. 거기서 우리가 서로 상생하게끔 되어 있는데, 여기에도 조금은 오류의 차들이 있기 때문에 역행을 한 것이 있어 가서 요것이 서로가 서로한테 흠집이 남기 시작을 하고 탁해집니다.
억겁의 죄를 지어서 이 땅에 왔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죄를 짓다 조금씩 미세하지만 수없는 시간이 모여서 우리는 탁해졌습니다. 이 탁해진 이것을 원죄라 하고, 원죄를 소멸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 온 것, 이 땅에 쫓겨났다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라는 비유법이 이거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살기 좋은 에덴동산에서 광야로 쫓겨났다, 그거는 진네도 있고 아주 박테리아도 있고 너를 못살게 하는 송충이도 있고 오만 게 다 있는 거기에다가 쫓겨나 가지고 천상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환경에서 너희들은 살게 되므로, 여기서 네 잘못이 무엇이고 이런 거를 반성하고 깨우치고 렇게 해서 네가 거기에서 좋은 일은 무엇인가도 알고 남에게 득 되는 일을 행함을 깨우치고 배워서 행하도록 하라는 겁니다. 이 3차원 공간에서 우리는 이런 것들이 진화 발전하면서 성숙되고 요렇게 해서 우리 원죄를 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맑아지면 우리는 천상에 하느님 곁으로 갑니다. 맑아졌기 때문에 맑은 것은 뜨게 되어 있고 탁한 것은 내려앉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땅과 하늘이죠. 우리는 탁함을 벗지 못하면 천상을 못 갑니다. 그래서 예수가 너희 죄를 전부 다 사하고 가지고 간다라는 것은 예수의 그러한 뜻입니다. 나도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희 죄를 모두 내가 가져가고 싶어요. 하지만 그게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죄를 다 가지고 못 가는 대신에 너희들이 바르게 사는 법칙을 내가 알려줄 것이다. 그래서 너희들 죄를 스스로 다 벗게 하는 길을 열어준다, 이게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하시기 위해서 무한히 제자들이라고 하는 이런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깨달음을 얻게 하고 진화 발전을 시키고 이 사람들이 거듭나게 해서 이 사람들이 활동을 하는 영역을 만들어 나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일꾼들이라 합니다. 이분들이 공적인 삶을 살고 많은 백성들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모든 삶을 바르게 살아서 죄를 벗게 해 갖고 내 곁으로 인도하는 일꾼으로 쓴다 이 말이죠. 이것이 목회자들도 있고 과거의 예수도 그랬고 과거에 부처라고 부르는 이런 분도 그랬고 전부 역대 제자들이 많았습니다. 요한도 있고 바오로도 있고 많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활동을 하는 시절에 활동을 많이 하는 시절도 있고 주춤하는 시절도 있고, 오늘날 활동을 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자들도 있고. 이게 지금 목회자들이나 수행자들 이런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과거에 젖어서 내 죄를 하느님이 다 가져갔다, 예수님이 다 가져갔다, 부처님이 전부 다 용서해 준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무식한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오늘날은 그런 생각을 하면 무식하다고 이야기를 들어요. 이제 오늘날은 그분들이 그런 뜻으로 살아갔던 것이 얼마나 거룩했나, 참다운 뜻을 가졌을 때가 있었다 이런 걸로 우리가 받아들이고 우리가 이런 분들의 뜻을 되살려야 되겠다, 우리도 그러한 뜻으로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정신을 가지고 우리는 지금은 지적으로 남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 될 때다 요런 걸 찾아 갖고 우리가 그런 걸 행하는 사람들이 된다면 예수님이 기뻐하실 것이고 하느님 또한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고, 이것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예수의 뜻을 지금 왜곡하고 있는 거다. 예수님의 뜻은 거룩한 거 분명합니다. 내 죄를 다 가져간다고 안 했습니까? 그런데 나는 왜 이 땅에서 지금 고통을 받고 있느냐고 하면 예수가 뻥 쪄요.
앞으로는 말이죠,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이때까지는 하나님한테 매달리고 살았잖아요. 예수한테 도와달라고 매달리고 살았잖아요. 부처님한테 도와달라고 비굴하게 무릎 꿇고 우리가 살은 적이 있습니다. 이게 오늘날까지 역사입니다. 앞으로 역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분들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사는 그런 역사를 일으켜야 됩니다. 하느님을 기쁘게 하고 선지자인 예수님을 기쁘게 하고 노력한 공자가 기쁘게 하고 우리 조상님을 기쁘게 하고. 모든 신들한테 사정하고 도움만 받았던 우리가 인자는 우리는 지식을 가지고 인본 시대를 열고 사람으로서 출연하는 시대를 엽니다. 비굴하게 무릎 꿇어서 도와달라 하는 자들이 되지 말고 이 분들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우리가 분별하기 시작을 해야 된다. 그리고 기쁘게 해드리고 이 역사를 일으켜야 되겠다, 하느님의 역사를 우리가 일으켜야 되겠다. 그래서 기쁘게 하면 우리를 도와달라 안 해도 스스로 도우신다, 이런 한 단계 뛰어넘는 그러한 분별을 일으켜야 됩니다. 무식한 자들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행동하는 게 잘못하면 무식자가 돼요. 그래서 인제는 진짜 하느님을 기쁘게 해야 된다. 그러려면 내가 하느님의 일꾼이 돼야 되고 하느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찾아서 우리가 그 일을 행하기 시작을 해야 된다. 이것이 우리 죄를 사하는 길이고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길이고 우리는 천당 가는 지름길이 열린다 이 말이죠. 이해가 돼요? 당신 죄들을 내가 가지고 간다고 믿지 마.
질문: 그러면 원죄를 지었어도 남보다 더 많이 죄를 지은 사람과 적게 죄를 지은 사람이 구분되어 있습니까?
죄를 많이 짓고 적게 지은 게 아니고, 크게 지은 게 있고 작게 지은 게 있다고 표현을 해야 됩니다. 이 나라가 망해버렸어요. 우리가 잘 살던 국민들도 있고 백성들이 있고 우리가 지도부들이 있고 운영자들이 있는데, 이 나라가 망해버려 가지고 전부 다 도탄에 빠졌다면 누가 많이 잘못한 게 됩니까? 운영자죠. 거기에서도 수장, 대통령이 되겠죠. 그럼 그 임금이라든지 대통령이 최고로 무거운 짐을 지어야 됩니다. 잘못하셨거든요. 그다음에는 운영자들이 잘못하고 이렇게 해서 백성들은 죄가 작은 거예요. 무게가 작지만 너희들 또한 잘못이 있다, 그 잘못은 무엇이냐. 너희들이 이 꼴이 되도록 너희도 손을 못 쓴 죄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백성들은 원망하면 안 된다. 그래서 지도부가 잘못했기 때문에 이 죄를 내가 쓸어 안고 백성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된다, 이것이 하느님의 일꾼들입니다. 이분들의 죄가 무겁다는 거죠. 이것이 큰 죄를 지은 겁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스승인 나는 얼마나 큰 죄를 지었겠습니까. 내가 밥을 먹고 앞으로 천 년 공사를 이루는 데 이런 혜택을 받는 모든 사람들한테 잘못을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이걸 사죄로 가지고 내가 말로만 "사죄입니다"라고 수만 번 해도 안 되고, 네가 살아나가는 데 내가 도움이 돼줘야만 내가 그 죄를 벗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크게 죄지은 자가 수장이 되는 것이고, 더 크게 죄를 지은 자가 하느님의 최측근 일꾼이고, 거기서 제일 죄를 많이 지은 게 하느님이야. 이 하느님은 입도 뻥긋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거라. 그래서 내가 직접 나서지도 못하고 제자들을 시켜서 일을 행하심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 마음의 아픔을 우리가 좀 만져드리면서 우리가 일해야지, 그렇다고 내가 가르쳐 준다고 하느님한테 달라들면 안 되고 하느님이 계셔야 내가 존재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많이 지었다는 것은, 어떠한 세상에서도 직위를 높게 하는 자만이 그만큼의 죄의 값이 무겁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 앉아서 많은 사람의 추종자가 된다는 겁니다. 우리 회장님들은 죄의 무게가 크기 때문에 당신은 이 세상에 발자국을 크게 남겨서 내가 뜻있고 보람 있고 질적인 일로 해서 사람들한테 도움이 돼야만 당신의 업을 씻을 수가 있어요. 일반인이 하는 걸 내가 양을 더 했다고 너는 수만 배를 더 해도 당신 죄하고는 무게 차이가 틀려. 이분들은 일반인이 할 수 없는 걸 찾아서 하셔야만 당신 죄가 사해지는 거야. 그래서 이분들이 선지식을 찾고 깨달았다는 사람을 찾고 이렇게 해서 내가 할 일이 무언가를 물으면서 갖추고자 하는 겁니다. 노력을 안 하는 게 아니고 이분들도 하고 있는데, 이분들이 진짜 뜻있고 보람 있고 백성들 존경받을 수 있는 일을 행할 거를 정확하게 풀어주지를 못하고 다스려 주지를 못하고 이끌어 주지를 못한 것이 정신세계의 수행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수행을 해서 대자연의 법칙을 알고 이런 분들을 이끌어 주는 이런 일을 못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되는 겁니다.
그래서 고 이병철 회장도 사제들한테 이걸 물었던 거예요. 물었더니 아직까지 대답할 자가 없었던 거죠. 오늘 이 사람이 풀어주는 겁니다. 이병철 회장이 못다 풀고 간 것을 이제 풀어줘야 이 영혼이 이제 집착을 놓고 차원 세계에서 내 세계를 또 펼칠 수가 있다 이 말이죠. 엄청난 걸 지금 풀어주는 중입니다. 근데 이분을 풀어줌으로써 다른 영혼들도 지금 공부를 다 하고 있어요. 이 물음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이냐. 이걸 풀어준다는 것은 이병철 회장의 수준 그 이하는 다 풀리는 겁니다. 이분 하나가 풀리면 그 밑으로는 다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차원 세계는 그렇게 고리가 연결되어 있어. 그러면 이병철 회장이 그 영혼이 한 일이 얼마나 질량이 큰 걸 행한 게 되겠습니까. 이것이 만일 지금 이건희 회장이 이 세상에서 답을 찾지 못하는 거를 물어서 찾아냈다, 딴 사람은 못 묻는 걸 묻습니다 그런 분들은. 그래서 찾아낸 것이 있다면 이 세상에다 그걸 딱 내주면 다른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걸 찾아줬기 때문에 이건희 회장님이 얼마나 큰 질량을 이 세상에 해내고 가셨는가, 이러면 이분은 죄업이 소멸되고 해탈하고 이렇게 해서 집착이 남지 않고 그래서 원시반본하면 크게 공신이 되는 그런 반열을 가게 된다 이 말이죠.
오늘날 지금 이병철 회장이 세상에 죽음으로써 물음을 던졌던 거를 지금 푼다는 것은 자손들도 이것이 연결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지적인 일을 행하십니다. 죽음으로 물음을 던졌다, 엄청난 사건입니다. 이걸 오늘날에 풀게 된 것이 내가 풀어주는 것이 이 백성들이 이해된다면 영혼들도 이해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만한 수준에서 지금 찾고 있는 자들은 전부 다 이 혜택을 입게 되는데 이것이 이병철 회장한테 공이 간다는 거죠. 그럼으로써 이병철 회장이 해탈해서 큰 대신의 반열로 신선이 되는 반열이 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차원 세계에서 큰 일을 하신다 이 말이에요. 이해가 좀 됩니까?
질문: 그러면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자기 죄를 조금이라도 벗은 사람이 있었나요?
아직은 없습니다. 죄를 벗기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이 선천시대, 이것이 오늘날까지 온 겁니다. 이것은 누가 이루어낸 것이 아니고 이때까지 윤회를 하면서 세상에 살러 왔던 모든 중생들, 중생들이고 인간들, 인간이라 하는 이 육신을 벗은 영혼들, 이분들이 왕래하면서 빚은 거예요. 이제부터 죄를 사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까지는 바탕을 이룬 것이고 미래에는 죄를 벗는 일이 생긴다, 이것이 2013년도부터 일어납니다. 여러분들이 시작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얼마나 사람을 이롭게 하고 사람을 살리고 가는가가 이제부터는 해탈하고 인간 세상에 두 번 다시 육신을 가지고 윤회하러 못 오는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못 옵니다. 이건희 회장도 육신을 받아서 두 번 다시 윤회를 못 해. 근데 이병철 회장도 육신을 받아 갖고 못 오느냐, 옵니다. 아, 하도 윤회하시죠. 왜 그분은 바탕을 이루어 놨거든요. 진로를 열어서 바탕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 진로를 열어놓은 것이 발전되고 좋은 세상을 만들어 놨을 때, 이럴 때 이 세상에서 주관이 되기 위해서 한 번 더 와요. 바탕을 이루는 건 내가 해놓은 거라 그 것이 아주 꽃이 피면 그 후에 내가 인생을 살러 오는 거거든요. 그 인생을 마무리를 살고 두 번 다시 윤회를 하러 안 옵니다. 내 할 일은 끝났다라는 이야기죠.
그러면 지금 우리가 윤회를 못 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다음 생이 없으므로 이때까지 윤회하고 우리가 진화 발전을 한 우리가 혼신을 다해서 불을 태워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불을 태워서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라. 널리 이롭게 하고 가는 그 자체가 너는 모든 것을 불태웠고 인류에 우리가 살아나온 흔적을 모두 불태워서 남을 이롭게 하고 떠나는 것이 돼서 너는 부처가 된다, 불이 된다. 이것이 마지막 일생입니다. 마지막 일생을 받아온 우리는 마무리 멋진 장식을 해야 되는 것이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고 너희들이 홍익 삶을 살고 가야 된다. 두 번 다시 윤회하고 와서 너희들이 업을 씻는 부분은 없다는 겁니다. 이 민족의 분신인 고위직부터 30%는 윤회가 없습니다. 30%는 윤회를 한 번 더 하고 40%는 두 번 윤회를 더 합니다. 이거는 노동자들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노동자들은 두 번을 더 윤회를 하면서 네가 품위가 높아지면서 또 태어나고 수장으로 또 태어나서 모든 업을 또 벗는다, 그 바탕을 너희들이 오늘날 고생을 하면서 빚어 둔 것이다 이 말이죠. 그렇게 후회하지 말고 원망하지 마라. 너희의 바탕을 너희들이 생산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공평하게 아주 깨끗하게 진리의 세상입니다. 이게 정확하게 운용되고 있는 거니까 절대 남 탓하지 말고 내가 오늘 고생한 걸 보람 있게 생각하고 미래를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그런 일꾼임을 알고 그 미래 위에 내가 또다시 와서 내가 살아야 되는 터전이다 이 말이죠.
그래서 이제는 2013년도부터 우리가 업을 벗는 시대가 열리니까 업을 이때까지 벗은 자가 있나 없나 이제 따지지 말고 나부터 벗어라 나부터. 나부터 벗고 가야 되는 것은 혼신을 다해서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고 사느냐, 너밖에 모르고 사느냐가 업이 벗어지고 안 벗어지고 하는 겁니다. 만일에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고 살지 못해 갖고 업을 못 벗으면 어떻게 되느냐. 그럼 나중에는 그다음 윤회가 있느냐, 없습니다. 차원 세계도 가 가지고 신들이 있죠. 아주 위에서 큰 일을 하는 대신이 있고 쫄마이 신이 있고, 아주 예예 하면서 쫓아다니며 뒷바라지밖에 못 하는 신이 있어요. 내가 세상에 한 일이 없으면 아래 신이 되고 한 일이 있으면 높은 신이 됩니다. 이거는 공평하게 꾸며져 있어. 근데 입으로 "나는 할 일 많이 했습니다" 네가 아무리 소리 해도 소용없어. 차원 세계 가면 저절로 정확하게 달아져 이게. 하고 안 하고는 네가 세상에서 사람한테는 "했습니다, 안 했습니다" 인정을 할까 안 할까 그 사람이 할지 몰라도 차원에 가면 달란트라고밖에 못 받고 그래서 "심보를 속이지 마라" 이 말이 그래서 나온 겁니다. 내 양심을 속이지 말 것이며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데 힘써라. 이해됩니까?
질문: 기독교의 어떤 종파는 "예수님은 원래 하느님으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다 짊어지고 다시 하느님의 자리로 가셨다"는 교리를 펴고 있습니다. 이런 논리를 어떻게 봐야 합니까?
그 시절에 예수가 살고 가면서, 예수가 행하고 가면서 어디 말에서부터 그런 것들이 이루어져 갖고 있느냐면 "예수가 너의 죄를 내가 다 가져간다" 그랬잖아요. 너희 죄를 이제 내가 전부 다 가져가니까 죄를 전부 다 이제 사한다, 그렇게 이 뜻을 바르게 읽어야 돼요. 언제 그 양반이 그 소리를 했느냐면 저 12제자 마지막 최후의 만찬 때 한 소리예요, 그게. 그때 뭐라고 했느냐면 "너희들 죄를 내가 다 가져갈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게 "내가 너희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이 말이에요. 이 소리가 무슨 소리냐면 여기 12제자가 있는데 내가 지금 마지막 코스를 이제 영적으로 아니까 내가 갈 때가 다 된 거야. 너희들 죄를 다 가져간다는 것이 인류의 죄를 가져간다 이렇게 소리한 게 아니에요. 너희 죄를 이야기한 거라. 너희들 죄 중에서도 어떤 거를 지금 이야기한 거냐면 "유다 너가 나를 팔아먹었는지 내가 안다. 또 너는 마음이 흔들린 것을 내가 안다. 너는 저쪽에 가서 내 뒤에서 딴소리 한 것도 안다. 누구하고 나를 의심한 것도 내가 안다." 제자 이야기입니다. 나한테 직접적인 너희들이 이렇게 한 것들을 내가 다 용서하고 그 죄를 내가 전부 다 가져가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마라, 우리말로 지금 표현을 하자면 너희들은 하느님께 부담 갖지 말고 널리 복음을 전파하고 앞으로 너희들이 할 일이 이러이러하고 요런 거를 참 설명하고 가는 그때가 있었던 겁니다.
이게 이제 때가 다가오는 거죠, 영적인 걸 다 알고 있으니까. 그전에 있었던 게 내가 고뇌를 많이 한 게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때부터 이제 고민이 들어가는 거예요. 그 한참 전부터 고민이 들어왔는데 이게 뭐냐,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게 무슨 소리냐면 하느님이 나한테 영을 전부 다 주어서 앞에 다가올 것도 내가 말하는 것도 다 이루어 주셨는데 지금 내가 이렇게 하고자 하는 걸 지금 안 이루어 주는 거예요. 안 이루어 주니까 엄청나게 지금 그 스트레스를 받는 겁니다. 말은 못 하고 아바 말 못 하고 구이 눈물 난다는 거예요. 영을 받던 사람이 갑자기 영을 못 받으면 미쳐요. 과거에 그런 게 많았습니다. 기독교에도 영 받는 제자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영을 받다가 언젠가 딱 끝나요. 다른 제자도 그랬어. 그런 게 많았는데 예수한테도 그게 온 거예요. 영을 못 받으니까, 그리고 내가 뜻을 이렇게 갖고 기도로 원함을 해 주실 때가 있었는데 안 해 주거든. 안 해 주니까 여기서 스트레스가 엄청 받기 시작을 했어요.
받기 시작을 해 갖고 결국은 내가 하느님한테 무릎을 꿇으며 "신이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때 피땀을 흘렸답니다. 피가 섞여 나와서 스트레스를 되게 받으면 잔핏줄, 실핏줄 이런 것들이 터져요. 이게 터져 갖고 피부로 피가 흐릅니다. 이게 땀에 섞여 내려오는 이런 일들, 예수가 고뇌했던 게 많아요. 때는 다가오고 나는 이제 형틀로 가게끔 되어 있는 이런 걸 영적으로 다 본 거죠. 그래서 모아놓고 최후의 만찬이라는 게 있는데, 이름은 참 거창하게 되었는데 그 만찬을 할 때 지금처럼 옷을 빨간 것도 입고 잘 입고 해서 그림 그려 놨듯이 그게 아니에요. 흙바닥 비슷한 거 있죠, 그때 사는 게 그랬어. 습도가 많지 않으니까 흰옷 입어도 되고 흙이 묻어도 툭툭 털면 되는 데였어요. 머리카락 길고 휘날리며 뭐 하나 걸고 다니는 거란 말이에요. 흙바닥에 앉아 갖고 판을 잘 짜서 앉아 있었던 게 아니라고. 전부 제자들이라고 있는 게 그때 막 3년밖에 안 됐기 때문에, 예수가 고향에 돌아와서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복음 펼치고 하려 하는 게 3년밖에 안 돼 갖고 의심이 굉장히 많았대요. 그러니까 그 의심하지 마라고 도수를 쓰고 술 가지고 아픈 사람 낫게 해주고 이런 거를 중간에 했었거든. 근데 그런 걸 보고도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게 그 앞에 선지자들이 수천 년 와서 그렇게 도술 쓴 사람이 많았어요. 예수보다 도술을 더 크게 쓴 사람은 바닷물 가른다고 했던 모세, 모세가 진짜로 도술 능력을 하느님한테 크게 받았죠. 예수는 그거 못 돼요, 힘 받아온 거는.
그런 식으로 그런 걸 많이 했기 때문에 나를 믿게 하려고 사실 도술을 주는 겁니다. 아픈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면 내 말을 믿거든요. 그래서 제자들한테 그 술의 힘을 주는 거예요. 근데 술의 힘을 주는데 여기 몇 년이 가면 나를 따르는 사람이 생기잖아요. 처음에는 너를 따르는 사람을 만들라고 술의 힘을 주는 겁니다. 그래서 그 힘을 갖고 내가 이렇게 하니까 나를 따르는 사람이 많이 생겼죠? 그러면 이제 네가 그 사람들을 바르게 인도하고 키워서 네 힘을 만들어야지 자꾸 술의 힘에 의존하면 안 되거든요. 이래서 술의 힘을 하나씩 거두기 시작을 하니까 또 안 보이니까 그런데 의존하려고 드니까 지금 하느님이 그걸 거두는 중이거든요. 이게 뭔지를 모르다 보니까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가 되는 거죠. 주님은 너를 버린 적이 없어요. 하느님이 나를 버리는 법은 없습니다. 내가 준 능력을 네가 바르게 쓰고 바르게 행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네 앞으로 모여서 무릎을 꿇을 것이고, 내가 준 힘을 네가 바르게 못 쓰고 일부만 쓴다면 일부의 힘밖에 못 쓸 것이라는 거거든.
그래서 제자들한테 마지막으로 했던 그런 말들이 와전이 되어서 나중에 소문으로 밖으로 나온 게 제자들한테 그렇게 이야기한 건 빠지고, 제자들이 그때 또 했단 말이죠. 그래서 예수 기록이 그렇게 안 남았던 거예요. 예수가 행하는 거 전부 다 쓴 사람이 없어요. 그저 말로 떠돌아다녔지. 무식한 사람이 말을 하면 표현하는 게 또 이상하게 돌아다녀요. 그러다 보니 우리가 모시던 선지자가 내 죄를 다 가져갔다는 것이 돌아다니면서 우리 죄를 다 가져갔다고 와전이 되는 겁니다. 몇 발 넘어가고 하면. 그래서 이 말들이 돌아다니던 것들을 주워 모아서 예수 평가를 해 놓은 게 예수가 가고 나서 몇십 년 후예요. 정확한 연도 수를 아는 건 아니지만 몇십 년 후에 누가 이걸 정리하기 시작해서 파일을 만들기 시작한 거라고. 적어서 정리해 가지고 그때 그렇게 정리가 된 거죠.
이래서 그거는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죄를 내가 가져가기 위해서 왔다고 한 게 아니고 12제자들 이야기입니다. 너희들이 지은 죄를 부담 갖지 말라고, 내가 다 쓸어 가니 너희들은 그런데 신경 쓰지 마라, 우리말로 하면 그거예요. 그래서 내 하는 게 너희 그 죄 내가 다 가져가고 싶은데, 네가 잘못 나한테 한 거 있잖아요? 그것도 내가 못 가져가요.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데 나도 그렇게 하고 싶죠. 이 땅에서 네가 잘못한 거는 정확하게 이 땅에서 너한테 돌아오고, 여기서 소화를 못한 거는 다음 생에 네 자식한테 가요. 그렇게 해서라도 이거는 집안 고리입니다. 이 죄를 우리가 소멸하기 위해서 고리로 해서 전부 다 이어져가는 사실이거든요. 우리는 한 팀이에요, 팀워크. 말하자면 마라톤을 하는데 봉을 바톤 터치해서 잡고 가야 하거든요. 중간에 놓치면 큰일 나는 거라. 우리 집안은 팀이에요. 우리가 업을 벗기 위해서 팀이 짜여 있는 게 집안 고리라고 이게.
그래서 조상이 내가 못한 거는 자식이 해야 되고, 자식이 못한 건 그다음이 해야 되고 이렇게 해서 나중에 이걸 얼마큼 했느냐에 따라 내가 윤회해서 올 때는 그 환경에 다시 와야 돼요. 정리되느냐, 아니면 더 아주 지적으로 우리 집안의 기운이 남한테 도움이 돼서 얼마나 이 사회에 덕이 되느냐에 따라 거기서 내가 다시 온다니까. 요런 거죠. 그러니까 우리 죄를 다 가져갔다는 것을 우리는 오해하면 안 되고, 그분께서 내 앞에서 사람들이 나를 배신하고 팔아먹고 하면 내가 화가 나는 거예요. 근데 거기서 화를 안 내고 내가 다 거둬간다, 이 자체가 엄청나게 거룩한 생각을 낸 겁니다. 이거를 제자들이 다니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한 게 지금은 지식 사회니까 정확하게 그분의 공을 찾아 줘야 되고, 그럴 때 그분이 한이 맺혔던 게 풀려요. 그것도 오해를 만들어 내면 또 묶이기 시작을 한다고.
예수가 하나님인데 인간의 몸에 예수로 해서 변장을 해서 왔다, 그거는 아니에요. 신인데 인간의 몸을 받아왔다, 이 소리는 내가 풀어 줄게요. 그거는 맞습니다. 그게 뭐냐면 내가 죽으면 나도 신이 된다는 얘기죠. 이거는 무슨 신을 이야기하는 거냐, 깊이 들어가면 본 자체가 신입니다. 신인데 천신이 있고 지신이 있고 인신이 있다 그랬죠. 천기의 하나님이 될 수 있는 신은 아니에요. 나는 인기, 인신, 영신, 원소 에너지, 이건 될 수 있어도 하나님은 나처럼 될 수 있는 게 아니고, 나처럼 이런 신이 아니고 천지 대자연 스스로 있는 에너지란 말이에요. 이 몸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우리 몸에 들어가기엔 너무 커요. 이 우주 자체가 하나님이에요. 에너지인 이 개체 하나 전체가 하나님인데, 우리는 누구냐면 요 안에 활동하는 세포 중에 하나예요. 하나님 몸 안의 세포들인데 세포들이 자기 할 일이 다 있어요. 어떤 거는 암조직이 있으면 그 안에도 조직이 엄청나게 미세하게 많고 요거를 전부 다 다스리는 분야가 또 틀려요. 세포 중의 하나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는 몸체를 만들어서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은 되지만, 하나님은 들어갈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없어요.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받아 온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우리는 지금 지식인이기 때문에 요걸 요렇게 이야기하면 이해될 이야기입니다. 2천 년 전에 이렇게 이야기하면 "몸이 하나님이라"라고 전달해 버린다니까요. 대우주 기운 이건 빼고 못 보고 까먹어 버리고, 나중에 전하는 게 "몸이 하느님이라 그러더라"고 해요. 무식할 때는 그런 일이 벌어지거든요. 이때까지 신앙 종파들 여기서는 무수하게 말이 와전되고 빚어지고 전해지면서 또 다르게 만들어지고 해 갖고 정리를 한 그 시절에 그 사람들이 그러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거죠. 이 개념을 고스란히 이렇게 해서 그 안에다가 빚어 둔 게 지금 성경, 불경, 도경, 무슨 경 하는 것들이에요. 그런 때 그런 것들이 만들어져 갖고 지금 경들이 수천 년 된 경이잖아요.
오늘 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거든요. 오늘 경은 최고의 지식을 갖추었고 인류에서 최고 진화 발전한 너희들이 이제 빚어내야만 할, 인류가 끝날 때까지 설경이 이제부터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새로, 이때까지는 선천 세계 이때 빚어놓은 모든 것을 통합해서 전해온 것이고, 이제부터 미래를 살아 나가야 될 버전의 경, 이것이 정법 생산 이렇게 되는 겁니다. 너희들이 구시대에 만들어 놓은 이런 걸 가지고 우리가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가면서 모든 것이 지금 뭔가가 맞지 않다 싶어서 하다 보니까 여기서 부작용이 나기도 하고, 하느님한테 달라들기도 하고 여러 가지 많잖아요. 요런 모순이 나온 것을 너희들이 이제 알 것이니라. 이 모순이 왜 나왔는지 이런 걸 정리하라는 거죠. 미래의 설 맑은 정법의 경을 내놓아라, 이것이 오늘날에 너희들이 해야 될 일이라는 겁니다. 미래를 열어갈 너희들이 이런 것들을 정법을 생산해서 미래를 열어 줄 때 미래는 질서가 잡히고, 모순 사회를 후손들이 살지 않게 하고, 인류가 바른 세상에서 바른 법칙으로 살아나가는 것이 얼마나 상생이 되고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어내겠느냐.
이 땅에 평화가 이루어지면 하늘에 영광이 됩니다. 너희들 땅에서 평화를 이루어 내야만 하늘이 영광이지, 하늘의 영광이 있으면 땅에서 평화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너희들을 보살펴 이끌어 주고 힘이 되어서 뒷받침을 해 주니 너희들이 땅에서 평화를 이루니, 평화는 어떻게 해야만 일어나느냐 하면 상생이 돼야만 평화가 일어나요. 네가 하는 일이 나에게 득이 되고 내가 하는 일이 너에게 득 될 때 이럴 때 평화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이 땅에 평화가 일어나면 하늘에는 영광인 거라. 이 시대를 열라고 하는 게 오늘날의 너희들 사제들이란 말이죠. 인류의 최고의 사제는 제일 마지막에 나타나는 겁니다. 선천 시대의 마지막에 너희들이 모든 인류에서 나온 지식이라는 에너지를 쓸어 마시고 네가 깨어날 때, 이 지식인들이 탄생할 때 인류의 사제가 나왔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 사제들이 나오면 무슨 일을 하느냐, 하나님이 이걸 갖고 뿌리고 막 이런 도술을 가져오는 게 아니고, 지식을 다 갖춘 너희들이 지혜를 열면 너희들이 선지식이 되어서 지식을 다 갖춘 사람이 선지식이 되는 거지 지식을 안 갖췄는데 어째 선지식이 된단 말입니까. 지식을 다 갖추어서 너희들이 이 땅에 뭐를 하러 왔는지를 알게 되면 너희들이 깨닫게 된다, 깨우치고 나면 너희들이 하늘의 힘을 받아서 이 땅에 평화를 이루어라. 너희들이 할 일은 모든 이 법을 지금 정리를 해 주고 가야 되는 것이고 바르게 살게 이끌어 주는 이런 일을 해야 되는 것이지, 도술을 또 받아 가지고 무식할 때 받았던 도술을 지식인들이 받으려고 그러면 안 돼요. 도술 받으려면 무식해지라고, 제주를 가지려면 너희들 무식해져라 이 말이에요. 지식을 갖춘 너희들은 무식하지 않은 거로 너희들이 정리를 해서 백성들을 이끌면 너희들을 다 따르게 되어 있는 거로 하늘의 힘은 스스로 통한다, 진리를 이 세상에 복음 하라는 겁니다.
하느님의 일꾼이 교회에서만 나온다는 생각을 하지 마라 이 말이죠. 하느님의 제자는 어떤 종교 단체 그 안에서만 나오는 게 아님을 알라 이 말이야. 하느님의 제자는 자갈밭에서도 나고 모래밭에서도 나고 진흙밭에서도 나고 탁한 데에서도 다 나오는 거예요. 어째 너희들 단체에서 증표 줬다고 하느님의 제자라는 거야, 누가 그걸 허락했는가. 이 세상에 하느님 제자 아닌 사람 누군가 데리고 와 보라. 네가 부처님 제자라는 것은 스승 밑의 제자라는 얘기입니다. 인간들끼리 가르치는 스승, 내가 그 당시로 많이 깨달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키우니 네가 내 제자라 한 것이고, 나 또한 하느님의 제자예요. 하느님의 제자가 가르쳐서 네가 내 제자라면 너희들의 제자고 하느님의 사제인 거라.
이 땅에 지식이 갖추어질 수 있도록 모든 하느님의 백성이 전부 다 인생을 살면서 조금씩 일생을 산 것들이 지식이라고 모여서 압축이 되고 오늘날에 큰 지식을 빚어냈거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이 빚어내는 기가 여기서 나오는 겁니다. 네가 진흙밭에서 지식을 갖추었든 교회에서 갖추었든, 네가 지금 갖추고 있는 것은 이 대자연의 큰 일을 하기 위해서 너희들 실력을 갖췄고 진화 발전된 것입니다. 오늘날 너희들이 사제로 등장해서 하느님의 일을 이제 마무리하고 미래를 열어간다 이 말이죠. 이게 사제들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사제를 바르게 알아야 돼. 어떤 조직에서만 성자가 나오는 게 아니고 거지 집단 속에서도 나오고 시궁창에서도 하느님 일꾼은 나오는 법이라. 어째 지금 너희들이 만들어 놓은 그 교리만 읽어야만 그게 공부라고 하느냐고, 이런 것들은 이제 분별을 바르게 하라고 지금 해 주는 거예요. 내가 이래라저래라는 거는 아니고 이렇게 더 분별해 봐, 이걸 가르쳐 주는 겁니다.
사제는 무엇이 사제라면 기독교에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무릎 꿇고 요래 있었다고 사제가 아니에요. 이거는 고민하고 이러는 거지 모르는 거라. 왜 해, 하나님 좀 알려주십시오, 이것도 되죠. 네가 사제로 성장하고 나면 백성을 사랑하라. 만 중생, 만인은 하느님의 백성임을 알고 나는 하느님의 일꾼이니 이 백성들을 위해서 나는 뭐를 할 것인가, 내가 인류를 위해서 뭐를 하고 갈 것인가 이런 걸 생각하는 자가 되는 겁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살까 생각하는 게 아니고, 이 답답한 중생들이 교회는 내 끼다 이기야, 이 교회가 어찌 네 것인가 이것이 백성들 것이지. 저 벽돌 하나를 쌓은 것도 전부 다 백성들의 피땀이에요. 거기서 만들어놓은 모든 힘은 백성들의 피땀을 모아놓은 것이라,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세상에 이때까지 고생을 하면서 비조는 모든 방편과 힘을 갖추어 놨고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 사람들을 무엇을 할 수 있도록 보람 있는 일을 이끌어 주는 데 필요한 재원이에요.
인류가 필요한 그러한 일을 하는 데 아주 기초적인 씨를 발견했고 기초적인 아이템을 발견을 한다라고 하면 이것이 백신이 돼요. 인류 평화를 여는 데 백신이 된다고. 이 백신을 생산하게 되면 이거를 어디다가 활용을 해보고 이것이 바르게 생산된 건 실험을 해봐야 되는데, 우리 신약을 개발해도 바르게 못 써요, 임상 실험을 끝내서 부작용이 없고 병이 치료되면 이것을 등록해서 쓰게 된단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패러다임을 찾아도 우리 단체 우리 식구들한테 먼저 딱 써보는 거죠. 써보니까 우리 식구들이 답답하던 게 다 풀리고 살아나가는 방향이 나오고 이래 되니까 이것이 임상 실험이 끝나는 겁니다. 우리 가족들부터 써보고 이것이 너무 좋으면 이것이 밖으로 소문이 나요. 이 백신을 쓰려고 다 몰려온단 말이죠. 이때 널리 쓰면 되는 겁니다. 그럴 때 이 나라 안에 해결 못 하는 이런 일들을 우리가 해결하는 데 이 백신을 쓰는 거죠. 이것이 복지 사업 같은 거거든요.
그 요렇게 해갖고 이 탁 써 보니까 이 나라 안의 얼마나 이게 제 어렵던 게 풀리고 어렵던 게 풀리는 거예요. 조금 더 가 봅시다. 다리가 없어진 사람들 불구가 됐잖아요. 이 사람들을 돈 갖다 주면 어려움이 풀리는 게 아닙니다. 이 사람들 돈 갖다 주고 다리 닦아 주고 휠체어 갖다 주면 어려움이 풀리는 게 아니에요. 맹 어려운 그거는 똑같아. 어떤 어려움? 나는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 이게 풀지 못하는 어려움, 이건 똑같은 겁니다. 휠체어 열 개 사줘도 이 어려움 안 풀려요. 열 개 사 주면 골치 아파요. 이거 휠체어 한 개 있으면 되고 두 개 되면 이거 건사하느라고 골치 아파. 쌀도 먹을 만치 줘야지 더 주면 골치 아파져요. 보관하는 데 쥐가 오더라고요. 나도 산에서 쌀을 얻어 먹어 봤는데, 처음에 많이 주면 좋겠더라고요. 이게 쌀이 많이 왔는데 이걸 갖다가 어떻게 하지를 못하니까 비닐째로 주는 걸 저 돌에다 올려놨거든요. 올리고 한 3일 지나니까 쥐가 와서 뚫어 버리더라고. 아, 큰일 난 거라. 이거 어디 갖다 놓을 데가 없어. 저 안 와도 쥐가 올 거고, 많이 주면 골치 아파요 그거. 보관하느라고 딴 짓은 아무것도 못 해. 그 신경 쓰느라 쓰레기도 못 줍고, 아, 쓰레기 주우러 가도 저거만 쳐다보고 있는다니까. 그래가지고 내가 그때 처음 빌었어요. 아, 그 쌀 담을 그릇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이제 누구한테 부탁하면 안 하던 놈이 이렇게 자연의 소리를 한 거예요. 지금 신이 뭔지는 모르니까, 산신이라든지 나는 모르니까 뭔 신이 있으면 듣겠지. 그렇게 담을 그릇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했거든.
그날 밤에 어떻게 해갖고 굿한다고 와가지고 밥을 요만큼 하면서 솥을 이만한 걸 가져왔어. 아, 솥 밑줄도 안 닦인 거, 그게 전에 산에 와봤지? 산에 그 솥 하나 있죠, 그거 양은 솥. 거기 그 솥이야. 여기 밥을 한 15인분 해도 되지 이게. 근데 밥을 요만큼 한 그릇 하면서 그걸 가져와 갖고 밥을 해 갖고 산신 준다고 이렇게 하고 그걸 갖다가 아, 툭 던지고 가더라니. 덜렁 주워 가고 나서 쓰레기 좀 있는 거 그것부터 주워 와 가지고 쌀을 요다 탁탁탁탁 담으니까 딱 맞아. 뚜껑을 탁 닫으니까 고민이 딱 풀리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이 실질적인 내가 있는 거로 지금 비유를 하면은 잘 풀리니까, 우리가 이 불구가 된 사람이 최고 큰 고민이 있단 말이죠. 이제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요거거든요. 그럼 너 인생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지금 찾아 줘야지 저한테 최고 숙원 사업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너의 인생을 지금부터 바르게 살아 나가면 정확하게 나는 어려움도 없어지고 나는 고민이 없어지고 아주 이게 내 기쁨이 충만한 거라. 이게 즐겁게 산다 이 말이죠. 내 인생을 살게 해 줘야 즐거운 것이지 쌀 갖다 준다고 즐거워지지 않는다 이 말이죠.
나는 이 불구의 몸으로 무엇을 해야 되는가? 그 너의 일을 찾아 줘야 돼. 불구의 몸으로 박스 접어라, 그러면 그거는 제가 할 일 맞는 거 같아요? 성한 사람이 박스 접는 게 보기 나요, 불구한 사람이 박스 접는 게 나요? 뭐 대답 못 하네. 성한 사람이 박스 접으면 보기가 좋아요? 그것도 무식한 사람이 접어야 보기가 좋지, 그렇죠? 지식을 다 갖춘 사람이 성한 사람이라고 나도 박스 접으면 보기 좋겠네? 너 무식한 생각 하는 겁니다. 아주 저 하버드 대학 나온 사람이 가서 박스 접잖아요. 보기 좋아요, 나빠요? 답 나오죠. 박스 접어야 되는 사람, 박스 접을 만큼 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박스를 접어야 보기가 좋은 겁니다. 대학 나온 사람이 박스 접으면 이 우리 국민의 피와 땀을 먹고 너는 엉뚱한 짓을 하고 있으니까 보기가 안 좋은 거예요. 대학 나온 사람은 대학 나온 일을 해야 되고, 불구가 돼가 있는 사람은 불구로의 내가 최고 질적인 일을 하는 일을 찾아줘야 되고, 연세가 많은 분은 연세 많은 분이 하실 일을 찾아 줘야 되고, 부녀자는 부녀자 할 일을 바르게 찾아줘야 되고. 요런 일들을 지금 해내는 것이 지금 지식인들이 해야 될 일이란 말이죠. 이것이 선지자들이 해야 되는 일입니다.
불구자의 고민을 풀어 줘야 돼. 노인들이 할 일을 찾아줘서 당신들이 사는 게 기쁘게 해줘야 된다고. 즐겁게, 기쁘게. 이게 선지자들이 해야 되는 일들이에요. 이게 하느님의 일꾼들, 최고 마지막으로 나온 마지막의 수행자들이에요. 지금 지식을 갖춘 사람들은 마지막 수행자들이에요.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인류의 마지막 수행을 마친 자들입니다. 이자들이 선지자입니다. 이자들이 교회에서 안 해도 어디 절에서 안 해도 너희들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닦고 노력을 해 갖고 오늘날에 너희들이 있는 거야. 네가 선 자리는 하느님의 법당이 아니고 네가 어디 서 있단 말인가. 네가 그 자리에서 서서 눈만 감아 봐. 네가 그 자리가 어디인가. 내가 눈을 감으면 네가 상상하는 대로 여기서 그려집니다. 눈을 뜨고 있으니 네가 내 앞에 있고 물잔도 여기 있는 거지, 까먹으면 없어. 하나님이 어디 있던가? 네 마음속에 존재하고 너의 뜻에 존재한다 이 말이죠. 둘이 아니고 하나니까 네가 주파수를 어디다 놓느냐에 따라 가지고 틀려지는 겁니다. 이것이 인신이에요. 인신이 네가 주파수 놓는 대로 전부 다 너하고 연결 다 돼. 내가 선 자리가 나는 하느님의 품이다, 하느님의 명당이다 하면 그 자리가 명당이 될 것이고, 그러면 여기서 사람들을 가르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어째 좋은 자리만 찾아야만 좋은 자리에서 내가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가. 그렇다면 이 선생님이 이런 비루한 자리에서 지금 가르침을 할 수 있는가.
이 선생님은 거지 복을 입고 산에서 하느님의 공부를 마치고 산에서 나올 때는 거지로 쫓아내더라고. 거지로 쫓겨 나온 거는 아닌데, 나올 때 나는 17년 전에 입고 들어간 옷을 17년 만에 그냥 입고 나온 사람이에요. 한 번도 갈아입지 않고 나한테 옷도 한 벌 안 줬다니까. 그래서 산에서 이렇게 나와서 나는 나와 갖고 세상을 둘러보고 둘러보라 해서 둘러보고 그래서 2, 3년 걸렸고, 둘러보고 사람을 하나 주니 그 자리에서 가르친 겁니다. 교회 뭐 이렇게 집을 챙겨서 해 준 게 아니고 온 자리에서 그냥 가르친 거야 한 사람을. 네가 왜 이 몸이 이렇게 어려운가? 네가 바르게 살지 못하면 몸이 이렇게 되느니라. 너의 뜻은 네가 훌륭한 일을 하고 열심히 일해서 네가 큰 일을 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네 몸이 이렇게 됐을 때는 네가 일할 것을 안 해서 이렇게 된 것이니라. 그래서 그걸 이제 잡아준 거죠.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살았다 하나 그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던가? 삶이 힘들어하지 않던가? 네가 이끄는 사람이 힘든 것은 네가 잘못 이끌어서 힘든 게 아닌가 이 말이죠. 그 사람들이 힘든 만큼 네가 몸이 이렇게 좀 아프다고 무엇이 그렇게... 이런 거를 가르치고 혼내고 하니 이 사람이 처음에 왔을 때 와사풍이어가지고 이 물을 이렇게 대롱으로 여면 이리로 줄줄 나왔어.
그래도 그 몸 낫게 해주기는커녕 네 잘못을 내가 끌어 주고 가르쳐 주고 그렇게 하니 이 사람이 눈물을 흘리고 그걸 몰랐다는 거지. 그래서 이 사람을 산에서 쫓아냈더니 다시 또 그 이틀 후에 또 기어 올라와서 그 눈밭에서 그 어려운 몸으로... 그래서 또 그날 혼냈더니 이걸 받아들이더라고. 네가 남을 도운 것이 아니고 남을 어떤 구렁텅이에다 몰고 간 것도 돕는 거라 하느냐? 이 사람들이 살기가 좋아져서 지금 아주 즐겁게 살면 이것이 돕는 것이 되겠지. 근데 네가 이 이끌어 준 사람이 전부 다 그렇게 살던 사람 한 명만 데리고 나와 보라 하니 눈물을 흘리고 이렇게 하니 내려가거라 했더니, 산에 내려가면서 이게 다 나아 버렸어. 잘못을 뉘우치고 있거든. 내려가면서 다 나아 버린 거라. 와사풍도 낫고 걷지도 못하던 게 그냥 뛰어 내려갔지. 그게 자네하고 그 행위지. 그 사람이 이래서 첫 인연이 되어서 그 사람이 병이 나은 원리를 보라 이 말이야. 내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는데 그걸 낫게 해준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렇게 힘들고 잠도 못 자고 힘도 못 쓰고 하던 게 일주일 동안 돌아다녀도 잠 한숨 안 자도 힘이 하나도 안 든다 이 말이야. 같이들 그랬지? 그게 사람을 일깨워줘서 너의 것은 네가 해결할 수 있게 돼 있어.
너희들도 하느님의 일꾼들이거든요. 너희들도 하느님의 자손이니 이 몸이 낫게 하려면, 이 몸이 병이 들었을 때 낫게 하려면 내 자리에 힘부터 키워야 됩니다. 그래서 안에서 스스로 활동을 해서 남한테 이롭게 되는 다른 세포가 이롭게 되면 너도 살아난다 이 말이야. 원리가 이러하거든, 이게 자연의 이치고 도야. 내 몸 안의 이 세포가 자기 일을 하기 시작을, 힘을 차려서 시작하니 다른 세포한테 이로움을 준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 나는 스스로 힘을 갖추게 되고 주위가 맑게 되고 모든 이 기운들이 서로가 연결돼서 이제부터 힘을 써 갖고 내 몸을 스스로 낫게 하는 것이거든. 그럴 때 너무 힘들었을 때 백신을 한 대 주고 약을 조금 넣어 주고 이런 것이지, 내 죄는 내가 사야 되는 겁니다. 내가 남한테 득 되게 살면 내 죄가 소멸되고 사해져요. 내가 안 하면 절대 사해지지 않는다. 내가 사지 못하면 내 자식을 잘 가르쳐서 내 것을 유지받아 가지고 그 자식이 또 남한테 더 큰 덕담을 행할 때, 그렇게 해서 네가 기쁘고 내가 기쁘니 그래서 사해져요. 하나님도 내 죄는 못 가져간다 이 말이죠. 네 죄는 네가 사야 되는데 네가 살 수 있도록 내가 주위를 잘 갈 수 있게 도와는 줄게, 이 일을 해야 되는 거라. 이해가 되나요?
질문: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말하면서 몸은 승천하고 무덤 속에는 몸을 쌌던 보만 남았다고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그 가르침에 지금 세뇌된 사람들은 믿고 세뇌 안 된 사람들, 일반인들 말입니다. 일반인들한테 그렇게 설명하면 지금 믿을 것 같으냐, 그런 것 같아요? 일반인들한테 지금 기독교의 가르침을 안 받은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먹힐 것 같으냐 이 말이죠. 그게 맞다면 지금 일반인들한테 그렇게 설명했을 때 일반인들이 "알겠습니다" 하고 받아줘야 돼요. 이러면 그게 맞습니다. 그게 맞다 안 맞다를 지금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그러한 것이 맞다고 들면 일반인이 지금 지전을 해... 오늘날의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에요. 일반인들은 누구냐면 어둠 쪽에 치우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원리는 일반인은 치우치지 않았다 이 말이죠. 근데 기독교에서 가르침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그거를 세뇌를 받아서 치우쳐 있다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이해를 다 한다고 자기들끼리는 맞다고 입을 다 모으면 이거는 진술을 해도 참작이 안 돼요.
근데 일반인들은 그러면 사고가 틀리다는 말이냐? 이렇게 되는 거죠. 이게 아니다라고 하면 너희들이 이해를 못 하는 건 너희들이 무식해서 그렇다고 하면, 일반인들이 이때까지 진화 발전을 했고 어떤 소속으로 세뇌 교육을 안 받고 시간 낭비 안 하고 열심히 갖춤을 갖췄는데 이 사람들이 무식하다면 이거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나. 조직 생활을 했다면 조직의 이런 가르침에 물들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사고를 깨야 돼. 내가 생각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확인을 해 볼 때입니다. 이 말을 가지고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 일반 지식인들, 무식한 사람한테 하라는 게 아니에요. 일반 지식인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한테, 세뇌가 안 된 사람한테 물어야 합니다. 불교 믿는 사람한테 가지 말고, 불교도 기독교도 안 믿는 사람한테, 도교도 안 믿는 사람한테, 이 사람들의 지식인들한테 이걸 물었을 때 이 사람이 뭐라고 받아들이고 정리할 것이냐? 여기에서 이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자체가 정확한 답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종교인들이 그걸 답이 아니라고 무시해도 안 되냐? 됩니다. 되는데 앞으로 너희들은 발전이 없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면 앞으로 사회는, 미래는 누가 이끌고 나가느냐? 치우치지 않은 사람들이 깨끗하게 신버전이 나온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온다 이 말이죠. 이것으로 운용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일로 엄청나게 몰리게 됩니다. 변하지 않는 너희들은 소멸하고 이 패러다임에 응호하는 자들이 이제 이 세상을 힘을 쓰게 된다, 이걸 어떻게 할 거냐. 내가 지금 이 세상에 일어날 일을 이야기해 주는 겁니다. 정확하게 이 일이 지금부터 일어난다 이 말입니다. 구태의연하고 너희들이 앉아서 안주하고 이렇게 해서 힘을 믿고 버티고 있는 자들이 어떠한 일들을 앞으로 당하는지 이제부터 시간 두고 보면 몇 년 안 걸립니다. 이 세상에 지금 지식인들이 나오고 있어요. 이 사람들이 하늘의 힘을 받아서 큰 일을 행할 것이니까 이 사람들이 선지자예요. 선지자인지 아닌지는 시간 두고 보면 알아요. 이 사람들로 하여금 사람들이 모여서 가르침을 받으려 하고 있다면 그 사람들이 선지자예요. 요런 일들이 벌어집니다.
과거에 뭐라고 기록을 해놨든 그것은 과거의 일입니다. 나쁜 일이라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과거에 그 사람들한테 그렇게 말해야 될 사정이 있었다면 그렇게 해가면서 사람들을 안정도 시키고 하는 방편은 될 수 있으나, 이것이 정확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지식인들한테는 안 믿기고 앞으로 태어나고 미래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 지식을 갖추는 이 사람들한테는 먹히지 않습니다. 왜 안 먹히느냐, 원리를 보충해서 가르쳐 줄게요. 앞으로의 우리 자손들은 어렵게 살지 않습니다. 이 지식인들이 나와서 이끌기 시작하면 우리 젊은이들, 자식들은 절대로 어렵게 살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서부터 어렵게 살지 않습니다. 어렵지 않으면 빌러 가지 않아요. 빌러 가지 않으면 너 말을 들어라 할 사람이 없어. 지금 신앙을 믿으면서 너희들이 구태한 것은 너무 도술, 어려운 거를 활용해서 사람을 모은다고 너무 거기에 빠져 있다 이 말이죠.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이야. 우리 젊은이들이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젊은이들이 신앙을 믿으라고 들지 않습니다. 당신들한테 도와달라고 찾아가지 않는다 이 말이죠. 안 찾아가는데 나한테 와서 믿으라 하면 더 안 믿죠. 아닙니다. 우리 젊은이가 지금 교회를 안 찾아갔는데, 안 어려워서 안 찾아갔는데 "교회를 믿어야 어려움이 풀리니까" 이러면 "나 안 어려운데요" 그런단 말이죠. 절에서 어려움을 도와준다고 오라 그러면 "나 안 어려운데요" 요렇게 하니까 안 갑니다.
사람을 모으는 데 법으로 모이는 게 있고 술로 모이는 게 있는데, 이때까지는 술로 모았는데 술은 어려운 사람이 있어야 먹히는 게 술이에요. 법은 어려운 사람이 있어야 펼쳐지는 게 아니고, 어려운 사람이든 안 어려운 사람이든 이 법을 찾는 게 인간입니다. 그래서 법 앞에는 안 되는 일이 없다. 네 어려움도 풀어줄 수 있고 네가 미래에 살아나갈 길도 이끌어 주고 이러니 법으로 안 모일 수가 없게 되어 있어요. 진짜로 하느님의 사제들이 지금부터 나오는 것이 이분들이 깨끗한 지식인들이 나온다 이 말이죠. 이분들이 나올 때는 다 같이 환영을 해야지 너희들이 배척을 하고 너희들 힘을 가지고 그 사람들을 밀어내려 그러면 너희는 하느님이 용서를 안 합니다. 진정 하느님의 사제가 나오는데 네가 배척을 한다? 하나님이 너희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앞으로 벌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맞다고 주장을 하고 남의 것이 아니라고 하던 이 사람들은 정확하게 여기서 각성하고 이제부터 놓아라. 너희들 힘을 놓으라는 것이 아니고 맞다는 그런 개념과 고집을 일단 놓고 남의 말도 들을 줄 알아라. 그래야 같이 산다. 그렇게 하면 너희 힘을 없애는 게 아니고 너희들이 사람을 모아놓은 데다가 이 법을 잘 쓸 수 있도록 거기에다가 법을 얹어 줄 것이고, 그래서 너희들 가족들을 아주 기쁘게 하라, 즐겁게 하라. 너희들이 모아놓은 너희들의 종단, 너희들을 믿고 따르는 이 사람들을 즐겁고 기쁘게 하라 이 말이죠. 이것을 해야 되는 것이냐, 아니면 우리 지금 조직의 식구들이 즐겁고 기쁘지 않더라도 이거를 붙들고 가면서 저걸 깨라고 전쟁을 하자 할 것이냐? 어떤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그렇죠. 나를 따르는 우리 가족들이 즐겁게 기쁘게 이렇게 사는 모습을 내가 보는 것이 그게 지도자들의 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도자의 자격이 있어.
그래서 너한테 하나님이 힘을 내려 줄 수 있도록 선지자들이 아버지께 축원을 올려 주는 겁니다. 너한테 몰려와서 네 무리들이 너한테 법을 찾으려고 드는데 법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너를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 아니고 더 충만하게 만 백성을, 너희를 따르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이런 걸 같이 나누고 이 법을 같이 통하고 이렇게 해서 그자들을 같이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는 세상을 열기 위해서 우리는 노력을 해야 되는 게 그것입니다. 지금 신앙 조직의 수장들이 지금 나를 놓아야 그게 가능합니다. 내 것만 옳다고 들면 절대로 이 선지자들은 너희들이 옳다고 판단을 안 해 줍니다. "예수가 이렇다는데요, 옷만 벗어놓고 하늘로 갔다는데요", 이거 한 가지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이게 맞니 아니니 옳으니 우리가 따져야 되는 건데 이거는 놔둬야 돼요. 놔두면 나중에 다 알게 돼, 스스로 알게 돼. "우리 예수님은 남자 씨를 안 받아 갖고 그냥 뿅 나왔다 하던데", 이거는 가만히 놔둬도 그걸 맞니 아니니 하지 마요. 그 당시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이야기하면 신비스럽고 그 사람을 따를 것 같으니까 그렇게 했을 수 있어도, 오늘날 지식인한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뿅 없다" 이렇게 나온단 말이에요. 답이 이게.
요런 것들로 가지고 우리가 잣대를 대지 말고 앞으로는 이것도 건드리지 말고 저것도 건드리지 말고, 그 당시에 그렇게 했을 때는 그 안에 원인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복음이라고 전파를 하면 사람들이 신비주의에 우리는 딸려 갈 수밖에 없었던 무식할 때였었다 이 말이죠. 그럴 때는 그렇게 방편을 써서라도 사람을 모으는 겁니다. 잘한 거예요. 문제는 지금 이 지식 사회, 미래를 열어가야 될 오늘 준비하는 이때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얕잡아 보고 지금 누르고 이게 맞다고 주장해서 너희들이 이래 믿으라 할 때가 아니고, 지금은 믿으라고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돼요. 바른 분별을 해서 너희들이 인생을 바르게 살아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데 힘써야지, 이걸 믿어라 믿고 가만히 있어라, 안 돼요 이게. 그렇게 있으면 다 어려워지는데. 요런 세상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요런 분별을 우리가 바르게 하자는 것이지 그게 옳다 맞다 아니다 그 잣대를 갖다 대서 사람들하고 이런 걸 논하지 말라. 과거의 것은 과거에 필요해서 한 것이고 오늘은 오늘의 법을 우리가 찾아서 갈지어다. 오케이?
질문: 저희는 스승님 공부를 하면서 병이 나았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성지순례를 다니면서 기적도 경험하고, 치유의 은사도 많이 얻고 있어 예수를 더욱 믿고 있습니다. 그런 기적을 술(術)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잘못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아프면 왜 아픈가를 좀 알아야 돼요. 우리가 아픈 모든 아픈 것을 한꺼번에 쓸어서 이야기합니다. 내가 지금 주부인데 주부인데 집에서 되게 아파 봐요. 이 아픈 사람이 왜 아픈지 그 안을 뜯어보면 왜 아픈지가 나와요. 왜 아프냐. 주부라도 그냥 일꾼 주부는 아파요. 조금 내 지식을 갖췄다 하는 사람들, 또 내가 누구한테 말을 지금 잘하는 사람들, 그게 누구하고 친구들하고 만나니까 그 나이라야 가야 이래 이야기는이라도 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주부로 그냥 밥하고 빨래하고 이것만 다람쥐 뺑뺑이 돌듯이 집안에서 이렇게 하고 시장 갔다 오고 또 뭐 이렇게 자유도 없고 막 이런 식으로 계속 돌아가면 이 사람이 아파집니다.
왜냐. 네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 기운은 큰데 밖으로 안 쓰고 안에서 하는 일은 일 양을 작은 것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하면 이것이 에너지 질량이 남아도는 게 활동을 안 해서 너를 친다는 사실입니다. 이걸 순환을 바르게 시켜 줘야 되는데, 안 그러면 활성이 안 되는 거죠. 이렇게 이제 막 우울증으로 아프기도 하고 무슨 종기가 나기도 하고 뭔가 아프다라는 것은 말이죠. 내가 한군데가 딱 아픈 것은 여러 분야가 다 지금 이게 형성이 되어 아픈 조건을 만들어 내가 여기 아프거든요. 그렇게 아픈 사람은 다른 거 제도도 다 안 좋아요. 몇 프로씩 안 좋다는 얘기죠. 여기서 도움 시간을 더 끌면 더 아파요 이게.
이럴 때 낫게 하는 방법은 어떻게 하느냐. 내 친구가 저 교회 간다고 자주 가더니 이렇게 나았다는 얘기죠. 나도 따라서 가면요, 가 갖고 그중에 취미가 붙어 갖고 좋다고 하면 이건 나아 버려요. 왜, 리듬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리듬을 바꾸어서 낳는 겁니다. 이건 성령이 낫게 해주는 게 아니고 네 생활의 리듬을 바꾼 것이고, 성령은 네 에너지가 성령입니다. 너의 에너지 자체가 성령이에요. 또 우리가 성령을 최고 많이 받는 것은 지식을 갖추는 게 성령을 많이 받는 거예요. 지식은 성령 속에서 나옵니다.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많은 희생 속에서 지금 만들어지는 것들이 이것이 지식이라는 거예요. 이것이 많은 사람이 살아가며 희생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지식이 쌓여 갖고 오늘날의 이 성스러운 에너지가 되는 겁니다. 이게 성령이에요. 이것을 우리가 갖추게 되면 성령을 받는 거예요 지금 이게. 조상들의 성령도 받고 과거에 우리 선지자들의 성령도 받고. 이분들이 지식을 내놓았던 거 아니에요, 멈춰서. 이게 전부 다 하느님이 지금 운용 속에 일어나는 거예요. 대자연의 운용 법칙 안에서.
이런 거를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안에다가 가둬 놓으면 정확하게 병이 납니다. 이럴 때 병을 풀러 가려면 일차적인 병을 푸는 것은 문을 따 버려야 돼. 꽉 문 잠가 놓고 안에서 안 나가고 하는 걸 문을 탁 열고 나와서 이리로 나와야 돼요. 그래야 운용되는 기운이 도니까 그 기운과 같이 돌아야 하는데, 돌고 가는 위험성이 기운이 달라지는 거죠. 리듬을 바꾸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교회 가야만 낫느냐. 절에 가도 낫고 교회 가도 낫고 산을 뛰어도 낫고 산에 가도 나았어요. 나오고 자전거 있죠, 요즘 그 자전거 붐이 일었지요? 자전거 타면서 나 나았다고, 자전거 타도 낫습니다. 우리 팀 만들어 갖고 축구 하자 하고 축구 하면요, 네가 100일만 하면 나아요. 몸이 나빠졌던 것도 회복 다 되고 아픈 것도 안 아프고 다 나아요. 그러면 우리가 여행 가보자 하고 여행 몇 바퀴 돌다 보니까 다 나았어 뭐.
순례도 여행이에요. 순례 간다, 순례 가면 지금 요 안에서 갇혀 있던 게 저 밖에 눈 뜨러 가는 겁니다. 외국에 나가는 이유는 바깥 세상을 알기 위해서 가는 거라 해야 돼요. 다른 걸로 덤으로 다 낫고 나갔으면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에너지가 들어가요. 경제라는 에너지, 시간이라는 에너지가 들어가는데 이것을 쓰고 나가면 거기에 가서 뭔가를 보고 와야 되고 느끼고 와야 되고 내가 배우고 와야 되고 뭔가 깨치고 와야 되고 싶다는 뭔가를, 패러다임을 내가 보고 흡수하고 와야지만이 네가 바르게 나갔다 오는 거예요. 다른 것은 다 덤이고 병 낫는 것은 자동이죠. 스승님 따라다니면서 안 나았어요? 스승님이 가듯이 이렇게 아프고 따라가 본 적이 있던가 누구. 그래서 아팠잖아. 네가 이리로 가는데 너희들 갈 사람은 내가 가게 해 주마 따라와라 하니까, 따라다니다가 그렇게 몇 년씩 아프던 것도 다 나아 버리잖아. 내가 약 줬나, 성지순례 갔나. 안 나은 사람 나오라.
이런 식으로의 병 낫는 것은 무엇을 해도 낫습니다. 리듬을 바꿔야 해. 요렇게만 살던 방법을 바꿔 봐라, 바꾸면 이거는 낫습니다. 이걸 바꿔서 나을 동안에는 내가 어떻게 해서 이런 병이 왔는가, 무엇을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맨 그 집안에만 있고 하면 사람은 뿐이라. 사람은 진화 발전해야 되는 동물로서 진화 발전을 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으면 나한테 변이 온다. 요겁니다. 병이란 근본 원리를 알아야 돼. 네 생각이 한 뜸도 바뀌지 않고 오는 시간을 간다면, 그런 개념만 가지고 계속 운용을 하고 있다면 너한테는 종기가 생기고 피부가 변하고 암세포가 살아나고 오장육부가 이제 썩는 겁니다. 이 고인 물이 썩어요. 인간은 운행을 해야 함으로써 진화 발전을 하고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야 되는 것이 인간의 운용의 법칙이에요. 이렇게 못 해서 아팠던 거라.
개념 전환, 개념 발전. 이렇게 되면 절대로 내가 아프지 않느니라. 개념이 올라가면 아까 이전에 아팠던 거 전부 다 정화가 되고 이게 낫습니다. 또 여기서 내가 나은 부분은 한 30% 되고 40%는 덜 나아서 70%가 있다면, 이 70% 덜 나은 것은 이 개념이 또 하나 올라가면 이로써 또 나아요. 그리고 40% 남겠지요. 또 개념이 하나 더 올라가면 이것은 100% 낫습니다. 진화 발전을 해 버리기 때문에 낫는 거예요. 수준이 낮은 데 있던 병은 수준이 올라가면 낫습니다. 리듬을 틀어라. 네 삶이 정지되고 있는 삶이 아닌지는 보았더냐, 요거죠. 그래서 스승님은 약 한 방울 안 주고 무엇도 안 줘도 너희들 개념을 이끌어 줘 가지고 한 뜸 한 뜸 좋아질 때 네 병이 없어지고 네가 모든 것들이 전부 다 이제 풀려버리는 거라.
그래서 성지 순례에 가니까 기적을 받았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네가 갈 때 그걸 봤고 새가 날아가는데 그 시간에 저기서 밴드를 돌 때 내가 거기 가면 그걸 보는 겁니다. 그걸 남은 못 보는 걸 내가 봤다고 네가 그 자리에 그때 네가 가서 본 거지. 그러면 갈 수 있는 길을 이끌어 줘서 맞기는 하지만 그건 기적이 아니야. 밴드를 돌 때 돼서 본 거란 말이야. 아직도 그런 거를 그렇게 우리가 몰고 가 버리면 안 되죠. 지금은 과학 시대입니다. 지식이 발전 발전 발전해서 최고의 발전 속에서 지금 과학 시대예요. 어째 그런 거를... 지금 기적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지금 그렇게 본다라고 하면 과거에 묻혀 있는 겁니다. 지금은 아니에요.
이 세상에 기적은 없습니다. 일어날 일이 있어서 일어납니다. 그거 잘 풀어본다면 그 안의 그 법칙이 이루어졌음을 알고 이걸 내가 안팎을 모르고 그것만 본 거예요. 마술을 한 번도 안 보다가 요 집안에서 텔레비전도 없이 그냥 이렇게 살다가 어느 날 밖에 나왔고 저 어디가 잡으러 갔더니 텔레비전 큰 거 하나 놓고 마술 하는 사람이 나왔고 저 서양 사람 나왔고 비행기가 저기 있는데 칼을 갖다 대더니 비행기가 없어졌어요. 그럼 기적이죠. 그 사람한테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하지만 마술을 계속 보고 있던 사람은 기적이 아니지, 마술이지 안다고요. 마술도 모르는 사람 이 사람한테 기적이 돼요. 이게 무슨 소리냐. 무식한 사람한테 기적이 있고 지식을 갖추고 유식한 사람한테 기적이란 세상에 없는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일어날 일이 있어 일어나고 그렇게 할 수 있어 하고 있는 거예요. 무슨 소리 이해가 좀 됩니까?
'1-1000' 카테고리의 다른 글
| [326,327,328,329,330,331,332] [잊혀진 질문] 종교가 필요한가 (1,2,3,4,5,6,7) (0) | 2026.02.09 |
|---|---|
| [325] [잊혀진 질문]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0) | 2026.02.09 |
| [317] [이병철회장의 잊혀진질문] 악인창조 (0) | 2026.02.09 |
| [314,315,316] [잊혀진질문] 고통 불행 죽음 (1,2,3) (0) | 2026.02.09 |
| [313] [이병철회장의 잊혀진질문] 신의 존재 부인 (0) | 2026.02.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