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1000

[2405] 법륜스님

by 웰빙원 2026. 2. 12.

[2405] 법륜스님

 

질문: 법륜스님은 왜 이 시대의 스승인 척하고 나오는 것입니까?

 

스승님 척하고 나온 게 아니죠. 스승인 줄 알고 나와 있는 거죠. 저쪽에 학원에 가니까 이 선생님의 실력이 어떻고 저 선생님의 실력이 어떻고 그렇죠. 어떤 사람은 저주에 가니까, 아 유치원에 가니까 유치원 선생님이 있더라 이 말이죠. 그건 유치원 선생님이 우리 환경을 잘 알아야 돼. 누구를 낮추려고 하는 게 아니고 법륜스님이 그렇다라고 하는 게 아니고 법륜은 법륜스님이에요. 법이란 말이죠. 자기 이름을 그렇게 달고 나와서 자기가 이렇게 가르치는 거예요. 그 사람한테 배울 사람도 있고 저 사람한테 배울 사람도 있고 저 교수한테 배울 사람도 있고 배우는 건 다 틀린 거야 각자가.

근데 저렇게 설명이라도 해주는 사람도 없으니까 거기로 가는 것이고, 그거보다 더 훌륭하고 더 나한테 깊이 이렇게 지적으로 가르쳐 주는 분을 찾는 사람은 그거를 보다가 처음에 조금 맞기는 맞는데 더한 거를 지금 원하면 거기서 안 나오는 거죠. 그러면 또 다른 스승을 찾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역할들이 있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들이 이 사람 법문을 듣고 나서 다른 법문을 들으니까 어때요? 수준 차이가 나는 거예요. 우리한테 수준 차이가 있다면 이거는 우리 게 아니죠. 내 수준에 맞는 법문을 해 주면 이것은 나의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분이 되는 것이고, 나보다 질량이 떨어지게 가르치면 이건 질량이 떨어진 거니까 나한테 스승은 안 되는 거죠.

우리 아이들한테는 부모님이 아주 그 하느님보다 더 나았었거든요. 우리 아이들한테 아이들 조그마할 때, 여기 조금 크니까 하느님이 낫다네 엄마가 낫다네 하느님이 이지랄 하거든요. 조금 더 크고 나니까 이제 또 말이 또 틀린단 말이야. 나중에 다 크고 나니까 아버지가 낫다 어디다 갖다 대느냐 하거든요. 그 정도로 우리가 성장은 하면 할수록 우리 학과가 달라지고 나의 선생과 스승이 틀려진다. 요것이 누가 옳다 그러다고 하면 안 돼.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의 세상에 필요한 데가 있고, 여러분들은 지금 이 사회에서 기초 공부를 다 해 놨기 때문에 이 중고등학교까지 공부는 다 끝났어요. 그러니까 대학을 공부시킬 사람이, 큰 공부를 시킬 사람이 대학은 큰 공부예요. 사회 대학이라는 것은 큰 공부 이걸 잡아 주실 분이 없으니까 그래서 그런 분을 기다리는 겁니다.

누가 잘한다 못한다가 아니고 어느 수준이다라는 것은 본인들이 알게 되어 있는 사회입니다. 그러니까 내 수준에 맞춰 가지고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제 유튜브 들어가면 다 나와요. 앞으로 유튜브에 이제는 내가 말하고 싶은 거는 해 갖고 유튜브에 다 나오게 되어 있어. 그게 포문이 열렸어. 엄청나게 나올 겁니다 이제는. 전부 다 뭐 이렇게 글로 나오는 게 아니고 글은 기본이고 이제는 육성으로 전부 다 나와야 돼. 교수가 됐든 무슨 뭐 네가 뭐 깨달았다 하는 사람이 됐든 간에 이제는 네가 이 말을 해가지고 지금 인터넷에 다 흘리게 되어 있어요.

앞으로는 이제 육성 시대, 너무 책을 봐놓고 내 것처럼 책을 베낄 때가 아니고 네가 육성으로 해갖고 저 사람이 마음에 들게끔 해야 되는 예수 시절에 인터넷 나왔으면 기가 찼겠죠. 석가 시절에 저는 뭐 저 인터넷에 나왔으면 지금처럼 거짓말 하나도 못 시킵니다. 네가 육성 한 것만 지금 믿어 주게 되어 있어. 앞으로는 이 사람이 이렇게 촬영할 때 봐 봐. 여기에 대본이 하나 있는가. 현장에서 바로 물으면 바로 다 나오는 거예요. 지금 왜? 나의 진리로 풀어 주니까 진리는 대본이 없어. 당신이 어떤 상태에서 어떻게 물으면 지금 답이 나와야 되기 때문에 이건 대본을 짤 수가 없어. 어제 물으면 어제의 답을 내 줄 것이고 오늘 좀 변동되어 갖고 물으면 거기에 맞게끔 내 줄 것이고 항상 답은 변하는 거예요. 상황에 따라서 답은 항상 변하게 되어 있는 게 그게 법이라. 그래서 법은 흉내를 못 내는 거야.

누가 잘한다 못한다 이런 걸 하지 말고 이제 내 공부를 조금 해 보면 저 사람 걸 들어보면 아 수준이 어디 있구나, 아 중학생을 가르칠 수준이구나, 아 저 사람은 초등학생을 가르칠 수준이구나, 아 저 사람은 유치원생을 지금 가르치고 있구나. 사람이 나이가 많고 어른이 됐다고 해서 유치원생을 안 가르치는 게 아니고 수준이 낮으면 유치원 공부를 해야 되고 수준이 높으면 아주 이게 하이 클래스 공부를 해야 돼요. 요게 틀린 것이지 그 사람들이 잘못하는 건 아닙니다. 누구든지 나의 진리를, 너의 진리를 꺼내 놓으면 이거는 어디다 쓰이고 어디다 쓰이는 것이지 이건 잘못하는 게 아니야.

앞으로는 누구든지 전부 다 법문을 해야 돼. 세상에 내놓으면 이 백성들이 전부 다 분별을 해 갖고 판단을 다 해주고 인민 재판을 다 해 준다. 전부 다 네가 이렇게 전부 다 말을 해 놓으면 국민들이 재판을 하는 거지 네가 재판하는 게 아니에요. 하는 시대야 이제. 매체라는 게 이게 그냥 개발되어 나온 게 아니에요. 이제 법의 각축장이 됩니다. 요 인터넷이 법의 각축장이 돼. 여기 지금 선두로 나온 사람들이 몇 명 있죠. 여기에도 이 사람이 끼어 있는 거야. 여기 전부 다 보고 분별하게 되어 있어 앞으로. 그래 갖고 정리가 딱 돼 이제. 그래야 이쪽 편이 나오고 이쪽 편이 나오고 이쪽 편이 나오고 전부 다 이제 막 정리가 된다고. 이제부터 인터넷에 안 나오면 이름 못 써 이제.

앞으로 막 이렇게 말없이 그냥 찾아갔던 거 인터넷으로 해가지고 국민들이 출렁거리면서 이제는 이 편이 다 갈라지기 때문에 이제는 인터넷에서 알아. 저쪽에서 도술 조금 있다고 해먹고 도술 다 걷어 보니까 이제는 아주 그쪽 파워가 없어져. 법으로 승부를 해야 되는 거라. 그러니 누구 게 옳다 그러다 이런 기준을 두지 말고 이제 재밌을 거야 이제. 이 비교학 공부를 해 보면 아주 그 저 이게 좀 신학에도 비교학 공부 이런 것들 이제는 그런 걸 할 때가 된 거라. 우수하고 질이 떨어진 것 대번에 분류해 버려. 정법이 나오기 전에는 맨 그 소리가 그 소리고 그 소리가 그 소리고 그 소리가 자꾸 헷갈렸는데 정법이 딱 태어나고부터는 정법하고 비교를 해본 거야. 확 달라져요. 법이 없었으니까 몰랐던 거지. 진법이 나오면 사법하고 진법은 아주 그냥 확연히 달라져. 이해가 돼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