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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 양자들이기

by 웰빙원 2026. 2. 17.

[394] 양자들이기

 

 

질문: 보통 우리 나라에서는 대를 이을 자식이 없으면 양자를 많이 들였는데, 양자를 들인 집안 치고 그렇게 썩 잘된 집안이 없습니다. 그 원리가 왜 그런지 좀 알려주십시오.

 

우리가 양자도 자식이냐 이렇게 물었죠. 양자가 자식이 맞습니다. 양자가 자식이 맞는데 우리가 이때까지 양자를 맞아들이는데 어떻게 맞아들였는가 요런 것들을 이제 잘 봐야 되죠. 지금 양자를 들이는 것은 욕심으로 양자를 들이죠. 이때까지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이 100%가 양자라는 것은 내 욕심으로 사견입니다. 이거는 욕심으로 양자를 받아들이면 이것은 너의 욕심으로 지금 뭐 일으킨 일이기 때문에 욕심이 든 만큼 눈에 안 보이고 그 사람을 뒷바라지하는 데 너의 욕심을 뒷바라지한 거지, 그 양자 그 사람을 위해서 노력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것은 바르게 절대 운용되지 않습니다. 양자를 데리고 왔으면 그 양자를 위해서 내가 어떠한 일을 할 것이냐는 근본이 안 서가 있다라는 거죠. 남의 인생을 이제 내가 책임져야 되는 겁니다. 근데 내 욕심으로 지금 그자를 이끌고 있는 거예요. 이건 절대 바르게 되지 않습니다.

그 양자를 들일 때는 어떻게 갖고 들여야 되느냐, 양자를 데려올 때 내 자식이라고 보면 안 돼요. 내 자식이라고 생각을 하면 안 된대요. 양자를 데리고 와서 인연으로 나한테 지금 오는 것이지 내 자식이 아닌 거거든요. 그럼 우리가 이제 양자로 보냈습니다. 양자로 보내고 그럼 양자로 받아들이고 이렇게 했으면요, 디자인이 어떻게 지금 이게 보고가 되느냐, 말로 따져 이해를 하게끔 한다라고 하면 이 보고가 되는 것이 "나는 자식을 놓았고 내 자식은 저어갔습니다." 요 보고예요. "이 사람 자식이 됐습니다." 보고가 아니에요. 그럼 우리가 양자를 보낼 때 천상에다가 서로가 뜻을 맞춰 갖고 탁 이렇게 우리가 이 맹세를 하고 이렇게 이렇게 한다고 한 사람 있어요? 네가 대자연에 구한 적이 없어요. 너희끼리 지금 친구끼리 어떻게 했든 형제끼리 어떻게 했든 상의해 갖고 하는 일이라고 절차가 있는 겁니다. 나한테 자식을 줬었을 때는 하늘에서 기를 놔갖고 줬는데 누구한테 허락도 없이 그걸 다 준단 말이고 누구한테 허락을 받았는데 받았어요? 하느님한테 허락을 받은 게 아니에요.

그러면 예전에 예전에 서양에서 그렇게 애수 시절 뭐 그런 때 그럴 때 이렇게 양자를 받잖아요. 양자를 받으면 거기다가 하늘에다 제를 올렸습니다. 이 이게 역사 뒤집으면 뭐가 그런 게 나올 거예요. 제를 올리고 탁 받아서 이렇게 해갖고 이 자식에 대한 걸 전부 다 하나님 믿고 구하고 뭐 요렇게 해가지고 이렇게 정성껏 이렇게 해갖고 이거 아낌없이 받았던 거예요. 거기서 양자 받아가 실패한 게 없어요. 서양에서는 양자로 넘어가면 굉장히 이게 그 마음이 정숙한 뭐 이런 방법으로 넘어가고, 주고 가고 나서도 항상 걱정해 주고 받은 사람이 항상 고마워하면서 이 협조해 갖고 키운다고요. 이게 근데 우리나라는 양자를 이렇게 주고 나면은 내 새낀 거라고 딱 욕심 부리고 아고 차고 여기 저 가서 사바사바하면 싫어해요. 제 부모인데도. 그리고 저쪽에는 또 한번 또 안아 본다고 섭섭하다 그러거든요.

또 이놈이 바로 될 리 있어요? 절차도 안 밟았고 너희끼리 싸우는 중이고 항상 애매모호하게 복판에 있는 겁니다. 이 양자가 누구 것도 안 되는 거야, 자부터. 주인이 없는 자가 돼 버렸어 이거는. 여기 가가 있어도 여기 자식도 아니고 여기 와도 여기 자식도 아니고 지금 중간에 붕 뜬 거예요.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서로가 욕심을 내고 있기 때문에 주어도 바른 마음으로 잘 합의하고 이렇게 해서 협조를 안 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자는 바르게 안 되는 겁니다. 이제는 이 양자가 됐든 나하고 인연 되는 사람이 내가 받아들였다면 이거는 얼마나 그 사람이 인생을 신중하게 생각을 해야 되는가 이런 거는 천상에 고해야 되고 제가 앞으로 이렇게 하겠노라고 고해서 답은 영적으로 못 받을지언정 네가 그렇게 신중하게 딱 고하면 10분만 제자리에 앉아서 자선을 하고 기다려 보십시오. 무슨 감이 쫙 와요. 기운이 내려뻗는다 이 말이죠. 내가 정성껏 이렇게 쫙 말씀을 드리고 10분만 네가 명상을 하고 가 앉아서 기다리라. 뭐가 몸의 표적이 옵니다. 그런 기운을 받는다 이 말이죠 이게 대답이거든요.

자연에서 승인을 내리는 이러한 내 몸에서 뭔가를 느껴요. 이런 걸 모르고 있는 거죠 지금. 그렇게 해서 이런 절차도 디자인에서 내가 절차를 행해야 되고 그러한 아량은 가져야 되는 거죠. 어떻게 해서 저 사람의 자식으로 인연으로 왔는데 내가 좋다고 주어진 거면 그 대자연은 뭔데 하느님이 어디 뭐 날나리 핫바진가. 꼴을 이래 만드는 겁니다. 하나님은 없는 거예요 간 곳도. 근데 잘된다? 절대 안 되죠. 나중에 문제들 다 발생합니다. 그렇게 됐던 거죠. 그래서 우리는 대자연과 같이 산다는 것을 인정하고 무언가를 큰 일을, 이거는 큰 일을 지금 하는 거예요. 이럴 때는 대자연에 고할 거는 고하고 받을 거는 받고 이렇게 해서 뭔가 절차가 있어야 되고 그렇게 해서 이렇게 함으로써 상대를 존중하고 상대가 나한테 양보하고 내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을 서로가 협조하는 마음이 생기고 이래 갖고 같이 이제 이자가 잘되도록 노력을 해줘야 되는 거거든요.

무언가는 나는 아들이 없으니까 아들을 하나 욕심을 내서 무언가 쟁취를 하려고 들어서는 안 된다. 너한테 하느님이 아들을 안 줬을 때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그 이유를 공부를 하고 숙지를 하고 뭔가를 찾아보려고는 안 하고 너무 알아 갖다가 내가 지금 이게 탐을 내서 데리고 오려고만 들면 되나요? 절대 바르게 안 됩니다. 그런 일을 하려고 할 때는 분명히 당당성이 있어야 되고 그 명분이 중요하고 이 명분이 있어야 하늘에 구할 수 있죠. 이것도 하나의 법칙을 지금 찾는 일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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