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1000

[454,455] 바다에 사는 사람, 산에 사는 사람 (1,2)

by 웰빙원 2026. 3. 3.

[454,455] 바다에 사는 사람, 산에 사는 사람 (1,2)

 

 

질문: 사는 곳에 따라 사람의 성질이 다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기운이 세고 산골에 사는 사람은 순박한데 왜 이렇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바다에 해풍이 셉니까, 안 셉니까? 바닷물이 짭니까, 안 짭니까? 산에 물이 짜니까 바다 사람들은 해와 함께 사는 사람들입니다. 해풍과 싸우고 짠물에 사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짠 물에서 살고 해풍과 싸우면서 살아야 된다는 사람들은 거기서 그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왜 그 사람들은 그 지역에서 살아야 되고, 어떤 사람은 자갈치 시장에서 살아야 되고, 어떤 사람들은 저쪽 백화점에서 살아야 되는지 여기 전부 다 이유가 있는 것이죠.

꼭 바다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고, 이제 이것이 나왔으니까 우리가 지금 어디서 사는가를 한번 만져봐야 합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곳과 살아가는 곳은 전부 다 우리를 공부시키기 위해서 그 지역에 안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시키려고 말이죠. 그러면 내가 바닷가에서 태어나서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다가 평생 동안 생선 장사 하다가 죽으면, 거기에서 네 공부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백화점에서 시작을 해서 물건을 팔 때 백화점에만 머물고 있다면 그 공부가 안 끝난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있는 것이죠. 내가 평생 식당을 하면서 그릇을 들고 다닌다면, 너는 그 공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것에서 안 벗어나 지느냐 하면, 내가 하는 짓거리만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업그레이드가 안 되고 있다는 것이죠. 생각하는 질량이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 자리를 못 벗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병이 아파서 병원을 계속 달고 있는 사람은 네가 생각하는 질량이 업그레이드가 안 되어서 병원하고 친한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질량에 따라서 네 삶이 바뀐다는 이야기입니다. 너의 생각의 질량에 따라서 이동수가 납니다. 사람은 진화 발전하는 동물인데, 내가 이 환경에 살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이 환경에 놔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이 달라져서 신선하게 되면, 이 사람이 신선한 장소에 가서 살아야 되게끔 움직임이 있어집니다. 변동수가 생기는 것이죠.

내 자신을 지금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확한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바닷가에 살면서 왜 바닷가에 계속 살게 되느냐 하면, 먹고살려고 사니까 그렇습니다. 먹고살려고 사니까 바닷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는 게 그것밖에 없어요. 생선 잡아서 팔고 경매장에 가서 하는 것밖에 지식이 없다는 것이죠. 지식 자체가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면 살기가 어려우니까 거기서 계속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무언가 공부를 해서 지식을 갖추다 보면 눈을 다른 데다 뜹니다. 아는 만큼 옆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이 사람은 변동수가 일어납니다. 그 지역에서 벗어나서 말이죠. 안 그러면 그 지역에서 달랑달랑하면서 사는 것이죠.

내가 동해에서 서울로 다니면서 살다가 서울에서 이런 지식이 더 갖추어지면, 이제 어떤 데서 내가 그 지식을 가지고 살기가 좋은 곳이냐는 이 환경의 비례에 따라 바뀝니다. 바닷가의 것을 70% 가지고 있으면 바닷가에서 못 벗어나는 것입니다. 서울을 70% 챙기고 바닷가가 30%가 되면 바닷가에서 살 수 있는 퍼센티지는 30%밖에 안 되죠. 이것은 지식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내륙의 지식을 가지면 내륙으로 이동할 수 있는 범위가 생깁니다. 여기서 이동수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전자 부품을 오랫동안 만지고 있으면 전자 부품 만지는 지식밖에 늘지 않습니다. 전자 부품에서 못 벗어나는 것입니다. 어느 만큼 못 벗어나느냐 하면, 70% 이상 너는 전자 부품에 대한 상식 밖의 지식이 없다는 말이죠. 전자 부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예요. 고기를 파는 데의 지식을 계속 가지면 고기 파는 데서 못 벗어납니다.

발전한다는 것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에서 30% 정도는 다른 데다 관심을 써야 합니다. 내가 생선 장사를 한다면 생선 장사 틀 안에만 있으면 절대 못 벗어난다는 것이죠. 그러면 네 시간을 30% 빼서 다른 지식을 갖추고 공부도 하고 조금 나들이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바깥에 눈이 떠지고 거기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며, 지식을 얻으니까 거기서 창의가 일어나고 창의가 일어나니까 이동수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지, 고향에서 계속 못 벗어나는 사람은 고향의 향수 70%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거예요. 나도 나가고 싶은데 하는 것은 여기서 한 10%, 20% 오다가 또 제자리 돌아가 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고향에서 못 벗어나는 것입니다.

고향의 가족들, 집안들, 친척들 때문에 고향에서 최고로 못 벗어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지식을 갖추는데도 못 벗어나는 사람들입니다. 종친회의 일을 도맡아 보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고향에서 못 벗어나요. 아는 지식이라고는 그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계속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 너는 종친회의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종친회의 일꾼이 되고, 밖에 나간 사람은 사업해서 성장합니다. 나는 종친회 일꾼 되고 사업한 사람은 나중에 좋은 차 타고 벤츠 몰고 들어오는데, 나는 여기서 각그랜저 몰고 다니는 것이죠. 그 지역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럽죠? 부러우면 너도 벗어나라는 말입니다. 못 벗어나면 우리는 거기에 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바다의 기운은 기운이 큰 사람들에게 앉습니다. 그래야 해풍도 이겨내고 무언가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에 있는 사람들이 사고를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서 공부하기가 엄청나게 좋은 데가 바다입니다. 바닷가 사람들이 기운이 다 큽니다. 집안들 자체가 세다는 것이죠. 세면 어떤 줄이냐 하면 칠성줄입니다. 말로 표현하자면 칠성줄이 있어서 너희는 바닷가에 태어나서 바닷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기본적인 지식을 알고 무언가 기본을 배웠더라면, 바닷가에서 우리가 생활하면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누가 가르쳤더라면 바닷가에서 무식하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초 공부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죠. 기운은 센데 내가 갖춘 지식은 없으니까 이것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싸우는 데 씁니다. 싸우는 데 말이죠.

 

기운이 분출되는 것이 내가 무식하면 이 기운은 세지만 무식하면 성부터 내거든요. 기운이 작은 사람은 성을 안 냅니다. 그런데 기운이 큰 사람은 성부터 낸다고요. 성부터 내는 것이 무슨 소리냐 하면 무식하다는 말이에요. 무식하다는 것입니다. 기운은 그렇게 큰데 무식하니까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화로 해서 난다는 말이죠. 화를 낸다든지 큰 소리를 지른다든지 무언가를 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지식을 갖추면 갖출수록 성이 없어지고, 이런 것들이 전부 다 다스려져서 그 지역에서 큰 일을 맡게 되는 대표가 되는 것입니다. 기운이 큰 사람들을 대표하게 되면 그 기운을 다 다스려내는 사람이 되어야 하거든요.

그렇게 하면 그 마을의 대표가 되어서, 대표가 되면 서울도 왔다 갔다 해야 합니다. 대표가 되는 사람은 누군가 서울에 못 가는 것을 내가 대신 가서 해결해야 될 것들이 나온다니까요. 이제 이동수가 되는 것이죠. 서울에 가서 이 사람이 만나는 사람이 기운이 또 큰 사람을 만나니까 거기서 또 눈이 떠지고, 거기서 지식이 다르게 갖추어지고 분별이 나니까 이것을 고향에 와서 또 업그레이드 시켜 나가는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공부를 해야 되는 것들에 대한 기초를 모르다 보니까 그냥 가버린 것이죠. 그러니까 일평생을 거기서 썩어 버리고,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고기 잡아서 파는 것밖에 더 있습니까? 네 삶에서 네 인생을 못 살고 가는 것이죠. 이렇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산 밑에 사는 사람들, 산 주령이 깊고 이런 데 마을에 사는 사람들, 특히 지금 이쪽에 저 지리산이나 덕유산에 사는 게 아니고 저쪽 전부 다 함양이나 진주 이런 데는 전부 산 쪽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줄이냐 하면 산신 줄입니다. 용호쌍박이라고 이 자연의 줄이 있는데 이것이 용 줄이 있고 호랑이 줄이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산신 줄은 호랑이 쪽에 들어가고 용신 줄은 용에 들어간단 말이죠. 그래서 용가리 통뼈라고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용이 셉니다. 용이 세고 호랑이는 센 것 같아도 아주 영리합니다. 호랑이는 영리한 동물이에요. 용은 영리하지 않아요. 영리하지 않고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우리가 산에서 공부를 할 때, 산에서 공부하는 것은 아주 바다에서 공부하는 것과는 틀린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산에서 공부를 하면 보호받으면서 공부를 합니다. 산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이 보호를 받으니까 온화하지요. 하지만 바닷가는 보호를 받는 게 아니고 모든 그 기운에 우리가 상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상대하면서 공부를 해야 된다는 것이죠. 여기서 이제 공부의 방법이 조금 틀려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역마다 이사를 다닐 때도 그 지역에 공부하러 가는 것입니다. 서울 사는 사람이 부산에 이사를 했다면 부산에 공부를 하러 가는 것입니다. 대연동 살다가 수영동에 갔다면 수영동에 공부하러 또 간 것입니다. 남천동으로 갔다면 남천동에 가서 또 공부를 하라고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는 안 하고 자꾸 불평이나 하고 있으면, 너는 그쪽의 시간은 다 됐고 또 다른 데로 옮겨야 되는데 그 기본을 모르다 보니 또 불평하며 살다가 공부는 안 되고 자꾸 이동만 하다가 늙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식해지는 것이죠.

공부는 왜 시키느냐 하면 앞으로 너에게 할 일을 주려고 공부를 시키는데, 그 할 일을 주었을 때 공부가 안 된 사람은 그 할 일을 바르게 하지 못해서 네가 어려움을 당합니다. 대자연이 너에게 공부를 시킬 때는 할 일을 주려고 공부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공부를 잘못하게 되면 할 일을 받았을 때 이것을 처리를 바르게 못 해서 너에게 어려움이 닥친다는 말이죠. 이것이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려서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사회에 가면 이런 것들을 써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안 해 놓으면 사회에 나가서 기를 펼 수가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는 이유는 내 앞에 무엇이든지 오면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이 나에게 신의 기운으로 무엇을 주어도 처리를 해야 하고,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주어도 처리를 해야 하고, 무슨 환경이 나에게 놓여도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이야기죠. 이것을 처리 못 하면 내가 어려워지니까 이것이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지역에 있든 너를 공부시키려고 그 지역에 있는 것이라는 기본 원칙은 잡아야 한다는 것이죠. 내가 어디로 지금 이동을 했다면 그 지역에서 공부를 하고, 그 지역에서 만날 사람이 다시 생기고 그 안에서 네 공부가 있는 것이니 지금은 그것에 충실하십시오. 그러면 여기서 공부를 어느 정도 하고 나면 또 더 좋은 곳으로 이동수가 옵니다.

'1-1000' 카테고리의 다른 글

[457,458,459] 졸업유급 (1,2,3)  (0) 2026.03.07
[456] 화가 나는 이유  (0) 2026.03.03
[452,453] 현명한 대화법 (1,2)  (0) 2026.03.03
[451] 깨치면 맑아지는지  (0) 2026.03.03
[450] 청소년 연예인 우상  (0) 2026.03.0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