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언은 기본이 100일이다. 이는 일반사회에서는 큰 기도이다. 수행처에서는 큰 기도는 아니다. 일반 사회 사는데 내 패러다임을 바꿔야할 정도면 엄청 사회에서 어려워서 100일 공부 들어간다. 보통, 3일, 7일, 21일이다. 이 때는 묵언 안 한다.
수행자들이 이 사람을 위해 말은 한다고 하지만, 묵언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는 아는 척을 한 것이다. 나는 이 사람을 위해 말했다고 하지만, 이게 잘난척이다. 그래서 너의 에너지가 빠진다. 수행자가 공부 중에 나와서 아는 척하면 그 자리에서 머물게 된다. 닦는 것이 끝났다. 수행자는 내가 다 알아도 몰라야 수행 중이다.
사람이 아는 것은 나의 근기에 나의 키에 맞게 아는 것이지, 이 위에 올라가면 전의 것은 답이 아니다. 그런데 전의 것을 답이라고 남에게 자꾸 쓰면, 인기를 얻는다. 누구한테? 내가 말한 것보다 낮은 질량의 사람들에게. 내 말 위에 있는 사람은 이 말에 동요 안 한다. 수행자들이 내 말을 다 따를 것이라고 많이 착각한다.
혜민은 오행도 좋고 실력을 갖춰서 큰 일을 해야 할 사람이다. 그런데 자꾸 나와서 사람들 앞에서 입을 여니, 수행은 정지가 되고 정체가 되니 더 클 수가 없다. 인기라는 것도 맛을 보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행동하는 너는 더 이상 크지 못한다. 한번 사회에 나와보는 것도 좋으나, 빨리 돌아보고 이를 알고 다시 공부하러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지금하는 공부를 마쳐야 한다.
우리가 입을 여는 것은 너의 정기를 쏟아내는 것이다. 너의 내공 에너지를 쏟아내는 것이다. 30% 내공 갖춘 사람이 자꾸 말하면 보충이 안 된다. 70%까지 공부된 사람은 자꾸 말해도 다시 자연이 채워준다.
경제를 갖출 때도 30%까지 힘이 찰 때까지는 이 경제를 쓰지 않아야 한다. 30%도 안 됐는데 막 쓰기 시작하면 너는 죽었다. 경제도 내공을 채워야 한다. 그래서 수행하는 것도 내공이 차야 한다. 내공을 70% 채워서 사회에 나와야 한다. 아이들 가르치는 것도 70% 차서 나와야지, 70% 안됐는데 가르치면 내가 힘이 딸려서 못 가르친다. 그 때는 어떻게 하느냐? 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개념이 아니라 나도 같이 공부한다는 개념으로 가야 한다. 공부 중이다. 누구를 돕는다는 것은 너의 에너지를 쓰는 게 되는 것이고, 현장을 접하면서 공부한다고 하면 현장학습이 된다. 사회 나와 있더라도 공부하는 자와 펼치는 자는 틀리다.
지금은 혜민이가 들어가서 공부하는데, 너도 까딱하면 공부자가 아니라 30% 갖춘 것으로 펼치는 자가 될 뻔했다. 다시 공부 들어갔다니 아주 잘 한 것이다. 70% 되어서 지혜를 열수 있게 가야 한다. 70% 수행한 것을 1차 수행이 끝났다라고 말한다. 70%까지 오면 스승을 만나게 되고, 여기에서 따게 되면 지혜가 열린다.
묵언수행의 정수는 보고 듣는 것을 말없이 흡수해라. 칭찬도 욕도. 너를 엮으로 오는 것도 다 견뎌내야 한다. 너가 양심이 바르면, 아주 다 죽어가는 노파를 데려온다. 이를 마음이 약해서 낫게해줄 것이냐, 자연이 왜 이렇게 만든지 근본을 모르니 피눈물을 쏟으며 돕지 않을 것이냐까지 시험본다. 있지 않은 자가 섣불리 잘난 척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사회에서는 100일 묵언기도 들어간 것이면 길게 들어간 것이다. 일반인이 최고의 수행을 들어간 것이다. 3년 묵언기도는 수행자가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더 크게 가면 7년이다. 완전 묵언수행 마치면 10년 된다.
묵언은 또 공표하면 안된다. 사람들이 묵언하는 줄 알고 말을 안 건다. 혜민이 그렇게 묵언 들어갔다고 공표했으면 70%는 사기를 친 것이다. 공표 없이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묵언으로 흡수하는 것이 진정 묵언수행이다. 묵언하려면 한다는 말없이 묵언해야 한다. 내가 묵언하는 것은 하늘, 땅, 나만 알아야 한다. 타인이 어떤 사자짓을 하고 들어와도 이를 다 이겨내야 한다. 그래야 묵언수행을 마치게 된다.
묵언은 사람 속에서 묵언 해야 한다. 또 내가 묵언하겠다 공표하면 이는 묵언이 아니다. 시장 바닥에서 묵언을 한다면 최고의 수행일 것이다. 묵언의 근본은 아는 척하지 마라이다. 지금 너가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아도, 아는 것이 아니니 아는 척하지 마라. 누가 내 속의 심지를 건든다. 내가 아는대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참고 안 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이고, 저 사람이 아는 것은 저 사람이 아는 것이니, 그냥 들어놔라. 너가 답을 안다라고 하지 마라. 이게 묵언이다.
묵언이라 해도 아예 인사도 하지 말라는 것 아니다. 이는 초짜이다. 사람이 아는 척 하면 아는 척 해야 한다. 흡수만 해라. 너 답이 맞는 것처럼 하지 마라. 지금 니가 아는 것은 니 키만큼 아는 것이지 근본을 완전히 다 따버린 것이 아니다.
너가 근본의 공부를 끝냈다면 묵언을 할 필요가 없다. 기도는 내가 얼마나 정성껏 나를 낮추고 기복하는가인데, 이 정성에 따라 성불이 주어지고 안 주어지는 것이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공부를 들어갔으면, 기도하는 게 아니라 공부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흡수하는 것이 공부이다. 큰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묵언수행을 한다. 사람에게 예를 갖추는 것은 묵언에 들어가지 않는다. 큰 공부라서 어렵다. 묵언하는데 말 안 한다고 회사에서 잘리면, 잘려나가야 한다. 그런데 회장한테 이러한 이유로 모두 흡수하고 있습니다. 말하면 지혜롭게 풀어나가는 것이 된다.
내가 묵언 공부를 몇월몇일날 딱 들어가곘다 축원으로 올리고, 공부를 시작하면 오만 벌레가 다 들어온다. 축원 없이 그냥 나 혼자 하는 것과 축원을 하고 공부 들어가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그 공부기간안에 공부를 줘야하기 때문에 오만가지가 다 들어온다. 사자가 다 들어오고,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들이 막 일어난다.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미리 알고, 고비가 몇 번 올 것이니, 딱 준비하자. 이러면 절대 그 분야는 시험지 안 들어온다. 안심하고 있는 데 갑자기 생각치 못한 곳으로 들어온다. 자연은 니가 방어하고 있는 곳에 들여야밀지 않는다. 이러면 안 되고 깨끗하게 공부해야 한다. 100일 공부는 그냥 다 흡수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대꾸할 필요도 없다. 보았으니 지나가면 된다. 누가 욕을 했다. 아 미안합니다. 하고 그냥 지나가면 된다. 누가 헐 뜯어서 내가 아주 이상하게 만들어지더라. 아 내가 이렇게 모자라니 이런 소리를 듣는구나. 미안합니다 하고 그냥 지나가면 된다.
모자라서 공부한다고 헀으니, 오만 공부를 다 주는데, 이를 다 흡수하고 가면 70%가면 남은 30%에서 문리가 다 일어나고 정리가 된다. 답을 알게 된다. 이것이 성불이다. 재료를 안 넣으면 문리가 안 일어난다. 공부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
70%의 내공이 차면 갑갑한 마음이 든다. 내가 지식을 갖추는 동안에는 갑갑하지 않다. 어려워도 재미있다. 근데 다 갖춰서 못 쓸 때는 갑갑해 미친다. 대학에서 배울 떄는 안 갑갑한데, 졸업하고 할 것이 없으면 갑갑하다. 졸업하고 직장에서 일하면 또 안 갑갑한데, 요즘시대는 일하는데도 갑갑하다. 70%가 다 찼다는 뜻이다. 직장 다니는 것도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 성장하다가 어느 선에 가면 갑갑해진다. 70%가 찬 것이다. 더 공부할 것이 없다.
이는 뭐냐? 지금까지 갖춘 것을 너가 쓸 때이다. 더 공부할 것이 없다는 것은 너가 갖춘 것을 쓸 때가 되었다. 갖춘 것을 잘 써서 빛낼 때 그마 속이 시원해지고 가벼워진다. 이 빛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때 내 가슴이 시원해진다.
공산주의는 30%까지 농민들의 이념을 담은 체제이다. 지주를 없애고 다 공평하게 나누자인데, 국가 자체가 지주가 되어 아무리 일해도 내 땅 하나 갖지 못한다. 30% 이상 더 성장할 것을 보지 못한 체제인 것이다. 그래서 머물러 멈춰있다. 그래서 절대 70%가 안 된다. 민주주의는 30%까지 가는데는 불공평하게 보인다. 돈 많은 놈은 고기 먹고, 없는 놈은 라면만 먹는다. 그런데 각자 노력해서 30%까지 올라가면 먹고 사는 문제는 끝났으니 여기에서 이념이 생산이 된다. 이 때 진정한 민주주의 이념을 생각할 수 있게 되고 이런 것이 나온다. 30%가 되면 40%가 될 때까지 이념을 생산한다. 이런 뜻을 세우니 백성들이 일을 한 경제를 이 사람들에게 몰아준다. 이게 자연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 경제가 모이고 지식인들이 모인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이념을 따라 가고, 무식한 사람은 밥그릇 따라간다. 그래서 지식인들이 이념을 따라 모여서 일을 열심히 하니 엄청 팽창하게 된다. 그래서 70%까지 이 작업이 일어난다. 이게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에서 가난한 사람은 먹고 살려고 하는 사람이다. 이념을 세운 사람들이 아니다. 이념의 중요성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다. 먹고 살 것만 간신히 들어온다. 그 이상의 지혜가 안 열린다.
이념을 갖고 성장한 사람들이 이제 또 어려워진다. 왜? 백성들을 보니 질이 낮으니 같이 안 놀려고 한다. 나는 호텔 커피샵 가서 팝송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시간을 죽치고 있으니 이념을 망각한다. 형편이 좋아지면 이념을 망각한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형편이 좋아지다 보니 형편 어려운 사람을 보니 영 지저분하다. 여기에서 망하는 것이다. 내가 한 뜸 지식을 더 갖춘 것은 저 백성들이 어렵게 일하는 환경에서 오는 에너지였음을 몰랐던 것이다.
내가 경제가 좋아졌다는 것은 백성들이 한 뜸 더 노력하고 고생해서 이 에너지를 내게 보내줘서 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이런 공부가 안 된 사람들이다. 즉, 내 한 사람이 올라온 만큼, 몇백명의 백성들은 더 어려워져서 더 내려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백성들이 열심히 노동해서 내가 이런 지식을 쉽게 갖출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백성들이 거의 힘이 소진될 때가 되면 자신의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그래서 지식인과 경제인들이 탄생한 것이다. 백성들이 힘이 없는 이런 빈부격차가 크게 일어나는 사회가 된다.
그런데 중간에서 지식인들이 이를 모르니 자신의 할 일을 안 한다. 당신에게 이 힘을 주 는 것은 그 만한 이념을 갖고 있으니 그 일을 하라고 힘을 준 것이다. 내가 지금 공부를 하는데, 나중에 훌륭한 일을 하기 위해 공부하고자 했기에, 그 좋은 학교도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준 것이다. 다 갖추고 나니, 이제 뭘 할질 모르고 자기 더 잘 살려고 하고 있다. 근본이 뭐냐? 이 백성들을 즐겁게 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나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고생한 백성들이 즐겁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의리를 갚는 것이다.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무릎을 꿇고 기면서 고생했다면, 내가 성장을 다 하고 나면 이들이 즐겁게 살 수 있게끔, 등도 두드려주면서 기운도 줘야 하고, 손도 맞잡고 일으켜줘야 하고, 고마워해야 한다. 내가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고. 백성을 생각할 줄 알아야, 지식을 갖춘 지식인이다.
이렇게 백성을 위하는 순간에, 손을 잡고 일으키는 순간에 지혜가 열린다. 이 백성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지혜가 스스로 열린다. 신패러다임으로 백성들이 보지 못하는 관점으로 이들이 즐겁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서 백성들을 사랑할지 모르는 지식인들이 세상에 나왔다. 전부 니 잘난척 하면서 토론하면서 여기저기 분야별로 부딪치고 있는 게 지식인들이다. 그래서 이 사회가 안 굴러간다. 답이 안 나온다. 너가 쌓은 지식으로 혼신을 다해 백성들을 살피는 자가 1명이라도 있으면, 이 세상문제 다 풀린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지식인들이 세상에 나올 때, 세상이 바뀐다.
그래서 갑갑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 너가 70%에 와서 갑갑하다는 것이다. 일 안하는 지식인들은 무위도식자들이다. 그럴거면 없는게 낫다. 그래서 백성들이 더 어려워진다. 차도 좋은 차 타야 되고, 집도 좋아야 되고, 스테이크도 썰어야 되는데 이를 백성들이 다 뒷바라지 하려면 죽는다.
지식인들이 자기 할 일을 안해서 자살해 죽거나 가족과 틀어져서 패륜아가 되거나,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70% 막판까지 다 왔단 소리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밑을 치는 일이 일어난다. 나를 키워준 백성들을 치면서 내가 살려고 하는 일들이 일어나서 아주 꼴불견들이 일어난다. 무식자와 지식인이 싸우면 무조건 지식인이 이기지. 그럼 백성을 치는 꼴이다. 백성부터 어려워져서 다 무너지는 와중에 너는 좀 견뎌나가겠지만, 결국 백성이 무너지면 너희도 다 무너져서 다 죽는다. 그럼 경제인들은 어떻게 되냐? 모아놓은 경제를 갖고 가족 쟁탈전이 일어난다. 종교도 윗선들끼리 쟁탈전이 일어난다. 백성들의 파땀을 갖고 쟁탈전이 일어나는데 이게 뭔 지랄들이냐. 너희는 하늘의 철퇴를 맞게 되어 있다.
인간의 진정한 인생은 36년 인생이다. 50부터 86세까지이다. 그래서 36년, 36년, 36년 3세대가 한 작품을 만들며 한 운영체가 돌아가니 108년이 된다. 1대가 다 이루는게 아니라 3대가 한 공동작품을 만들어 다 같이 해탈한다. 2013년부터 36년 공사를 한다.
100일 공부 끝나면 끝나고 7일간 정리기간이 있어, 통틀어서 108일이다. 내가 100일 공부 들어가면 나만 하는게 아니라, 나와 연결된 조상들과 신장들과 나를 관리하는 신들도 같이 공부한다. 자연의 일은 인간들만이 하고 있는게 아니다. 100일 이후, 7일 동안은 모든 것들을 정리해서 이런 신들도 선관에서 흡의를 받는 기간이다. 그러니 100일 공부 끝났다고 바로 술 쳐먹고 하면 흡의 받다가 반려되거나 때려버린다. 7일 동안은 집에서 근신해야 한다. 3일 지나고 4일쯤부터 막 선몽도 들어오고 한다. 그 뒤에는 막 뭐가 보이기도 한다. 조상들이 어떤 품계를 받아 오는 것들을 내게 알려주는 것이다.
100일 동안 공부 중에 너의 근기, 환경 등을 다 보는 시험을 한다. 그래서 공부 후 여기에 맞는 합당한 에너지를 보충해주고, 인연을 보내주고, 길을 열어주는 일들이 생긴다.
이런 것들은 그러니 평소 공부이다. 내가 말 하나 잘해서 올라가고 하는게 아니다. 어느정도 이렇게 공부하면, 때가 되면 미션이 분명 들어온다. 공부하는 사람이고,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니 처리 가능한 미션을 준다. 이 미션을 바르게 처리하면 굉장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이를 바르게 처리 못한다면 평소 공부한다고 했던 것은 거짓말이다. 공부 어찌되었건 뭔가 안 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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