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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3000

[2322,2323,2324] 도량공부와 수행 (1,2,3)

by 웰빙원 2025. 11. 25.

수행자가 수행할 때 수행하는 곳을 수행처라고 한다. 수행을 마치면 도량을 연다.

수행을 할 때는 작은 규모로 하거나 아니면 나 혼자 한다. 사람들과 격리하여 수행한다. 왜 그리 하느냐? 사람들을 아직 접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 나 혼자서 나 자신과 싸우면서, 사람들을 접할 수 있을 때까지, 나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이 수행이다.

못난 사람은 수행 안한다. 실제로 잘나고 기운이 크게 태어난 사람들이 수행한다. 잘났기 때문에 내가 내 자신을 갖추려고 하지 않는다. 잘난 것은 인물이 좋던, 환경이 좋던, 하늘에서 감각을 똑똑히 받았던 이런 것들인데, 이는 내것이 아니라 자연의 것이다. 그런데 똑똑하게 사주를 받아오니, 내 것이라 착각하고, 내 공부를 안 하고 너 잘난 것으로 사랃믈에게 들이다대면서 사는 것이다. 이리 살다보면, 처음에는 나를 잘 대하주다가, 결국 나와 멀어지고, 뒤에서 나를 욕하고 하면서, 결국 내가 상대할 사람이 없어진다. 내 앞에서는 아무말 안하는데, 다 마음을 닫고 멀리 가버린다. ? 니가 잘났다고 해서 자꾸 나를 군림하려고 하고 내게 명령하고, 니 방법으로 되게하려고만 하니 꼴보기도 싫은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주관이 있고, 자신이 살아야되는 삶을 갖고 왔다. 그런데 잘난 사람들이 자기 방법대로 자꾸 그 사람을 끌고 가려고 하니, 처음에는 그 사람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가, 가면 갈수록 내게 안 맞으니, 내가 왔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 나는 내 인생을 살아야지, 저 사람 인생을 살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점점 멀어진다. 내게 사람들은 많은데,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래서 힘들어지고 외로워진다. 하는 일마다 잘 안되고, 왕따를 당하고 소외를 당한다. 그래서 산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말은 또 지가 세상이 싫어서 들어간다라고 한다. 니가 쫓겨나서 갈곳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산에 들어가는 것이다. 니가 사회에 있고 싶어도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홀로 수행처에 들어가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되는데 더불어 사는 방법을 못 찾은 것이다. ? 내 똑똑한 것을 내 것이라 착각하고 산 것이다. 그래서 내 공부를 안 했다.

수행이 뭔지도 모르고 산에 들어가는 것이다. 혼자 있으니 좋다고 하는데, 엄청 외롭다. 앞앞이 말 못하고 구석구석 눈물 흘리는 꼴이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이렇다고 말을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수행자들은 이런 모든 가면을 몇 겹을 뒤집어 썼는지 이를 다 닦을 때까지 수행해야 되는 것이다. 내가 살면서 님에게 안 좋게 하면서 이런 겹겹의 잘못쌓아왔던 가면들을 닦아나가는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외롭게 됐는가? 나는 왜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가? 이런 것을 찾아내는 것이 깨달음은데, 이는 모두 가면들과 모순들 밖에 정답이 없으니, 모순을 찾아내는 것만이 깨달음인 것이다.

뭐가 보이는게 깨달음이 아니다. 이는 신통되면 누구든 다 보인다. 땅밑이 보이고 미래를 알아 맞추고 이런 것들은 신줄이 들어서 하는 것이지, 깨달음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깨달음은 나의 자아성찰, 나의 모순을 깨닫는 것이다. 깨달아야 이제 수행을 들어간다. 깨닫기 전에는 헤매고 있는 것이다. 깨닫고 보니, 이렇게 내가 외롭게 사는 것은 100% 내 모순 때문이었다. 깨닫고 보니 나의 모순이 이렇게 큰 것을 몰랐구나. 이제부터 수행에 들어간다. 내 버릇과 내 습관을 고치는 것이 수행이다. 수행을 하니 맑아진다. 맑아지니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본다. 사람도 있는 그대로 보고, 말을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듣는다. 내 똑똑한 것으로 듣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게 된다.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다.

수행이 얼마나 됐는지 보려면, 상대를 존중하는지, 자기 아집이 아직까지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수행이 된 사람이다. 거지가 오면 거지도 존중하고, 임금이 오면 임금도 존중하고, 형제가 오면 형제도 존중한다. 이 존중하는 척도를 보고 너는 수행이 됐구나 덜 됐구나를 몇 도수구나 안다. 지신이 오면 지신도 존중하고, 무지랭이가 오니 무지랭이도 존중한다. 얼마나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느냐.

내 자신이 그렇게 잘 났다면, 상대 또한 잘난 사람이다. 세상에 필요없이 오는 사람 한명도 없다. 누구든지 자기의 삶을 살러 온 사람들이다. 얼마나 이들과 조화를 잘 이룰 것인가? 이루면 빛이 날 것이고, 조화를 못 이루고 부딪치면 시궁창이 된다. 갈수록 실타래가 어긋나고 어려워진다.

수행은 아직 내가 사람을 만날 때가 안 됐으니, 다 끊고, 나를 들여다보며 닦고 또 닦는 것이다. 수행이 다 되어갈 때에는, 자연이 사람들을 어느정도 내 주위에 보낸다. 사람을 거기에 보내봤는데, 또 내 방법대로 주장하면 또 이 사람이 떨어지고, 왔다가도 싸워서 떨어진다. 이게 시험에 걸린 것이다. 너가 수행을 얼마나 했는지를 보는 것이 중생을 보내본다. 거기에서 내가 하는 행위에 따라 꼬인다던지 하면 수행이 덜 돼지 않았느냐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자세를 낮추고 그 사람들을 존중하기 시작하니, 그 사람들도 세상에서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여기에 오니 나를 존중해주는 분이 계시네? 여기에 정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니 주위에 사람들에 내게 오기 시작한다. 수행이 됐다면, 이렇게 사람들이 온다.

사람이 모일 때는, 크게 2가지인데, 사람이 수행이 되어 마음이 편해서 오는 도량이 있고, 도술이 들어와서 도술이 필요해서 모이는 도량이 있다. 수행이 된 도량에는 도술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좋아서 오는 것이다. 그 분의 마음씀이 너무 고마워서, 또는 그 분이 좋아서 모이기 시작한다. 이 때 이 사람은 크게 공부한 사람이라 한다.

이 분이 식사도 같이 하고 예우도 해주고 하니, 너의 어려움은 스스로 풀린다. 이는 도술이 아니고, 너의 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술은 재주로 사람들이 모이지만, 법은 나한테서 풍기는 이 기운으로 온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더니 여기가 도량이 된다.

수행이 되면 도량을 여는데, 도량은 무엇을 하는 곳이냐? 도량주는 이 도량에 오는 그 누구든 내가 다 접하겠다는 마음으로 맞아야 한다. 누가 오더라도 반기겠다는 것이다. 안 반길 것 같으면 문 닫던가, 아니면 문에 사람 가려가면서 받음이라 하던지...

이래서 사람들이 오면 아주 고약한 사람도 오고, 오만가지 놈들이 다 온다. 이들을 내가 전부 다 접할 수 있다라고 하고 연 것이다. 이것이 도량이다. 아주 고집쟁이도 오고, 예전에 내가 수행하러 산에 들어가기 직전에 고집이 셌던 그런 사람들도 온다. 너가 수행을 바르게 했다면 이들을 대할 줄 알아야 한다. 수행을 통해 이 공부를 다 시켜놓은 것이다. 수행을 마쳤다면 도량을 열지니, 여기에는 전에 너처럼 아주 깊이 고집이 센 사람도 올 것이며, 불쌍한 사람도 올 것이며, 잘난척 하는 사람도 올것이며, 오만자들이 다 올 것인데, 너가 이를 접하겠느냐? 자연은 도량을 열려하는 너에게 이를 묻는 것이다. 그렇게 도량을 여니 이런 사람 저란 사람, 천태만상의 사람들이 온다.

오는데, 내가 수행하느라 아무것도 없으니, 쌀을 들어오는 사람, 따뜻한 이부가지들을 가져오는 사람 등 내가 필요한 것들을 들고 온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은 아 집을 지어드리고 싶다 하는데 알고보니 집 짓는 사람이어서 집을 지어준다. 그러니 집도 생기는거라.

그런데 이것이 뭔지도 모르고 고맙습니다 하고 집을 덜렁 받으면, 너는 곧 있으면 쫓겨나는 일이 생긴다. 함부러 받는 것이 아니다. 주는 것 덥썩 덥썩 받아먹으면 체해서 들고 실려나가는 일이 생긴다. 세상에 공짜가 절대로 없다. 이런 것들을 공짜라 생각하고 다 받으면 어느정도 발복한 후에 꼭 시비거리들이 다 만들어져 있다. 이런 것 때문에 발칵 뒤집어진다. 그래서 마음고생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도량 문을 열면 어떤 사람이 와도 나는 피하지 않고 상대하겠다라는 각오가 되어야 한다. 이게 될 때 문을 여는 것이다. 오는 인연들을 내가 이끌어야 되고, 내가 감당해야 하고, 이런 것들을 도량주가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주 탁한 사람도 맑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어려운 사람도 어렵지 않게 만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힘든 사람의 짐도 같이 짊어질 수 있을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수행자의 근본이다.

신통, 영통은 하고 나면 재주를 갖게 되는데, 이는 내것이 아니라 신계, 영계 것이다. 이런 재주를 갖게 되면 사람들이 모인다. 모이게 했으면, 이 사람들이 왜 아픈지를 근본을 알아서 이를 도반이 되어 같이 나누고 공부하면서 이들이 더 이상 아프게 안게 할 수 있는가? 이것이 핵심이다. 이 근본원리를 모르고 그냥 낫게하고 풀어만주니, 아무것도 도운게 없다. 왜 저 사람을 아프게 했는가? 몇년을 돌아다니게 만들어놓고 시간낭비하게 해놓고, 나한테 와서 덜렁 낫는다? 자연이 왜 이런 장난을 치냐는거지. 왜 저 사람이 아프게 됐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이 사람이 어려운 이유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이유를 찾아서 이것을 없애주니 이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앞으로 바르게 살 수 있지 않은가?

 

나를 갖춰놓지 않고 이를 쓸 줄 모르는 자에게 호미를 주면 바르게 쓸 것 같냐? 이를 주면, 어떻게 쓸지 몰라서 앞에 있는 사람의 대가리를 찍는데 쓴다. 호미 쓰는 법을 잘 아는 사람이면, 자연이 호미를 준다. 그러니 나를 갖추어라.

너가 돈을 원하지 말고, 돈을 바르게 쓸 줄 아는 실력을 갖춰라. 그럼 돈은 언제든지 준다. 너가 건강한 몸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갖추면, 건강을 준다. 자연이 네게 힘을 주면 나는 이 힘을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을 찾아라.

앞으로는 홍익인간시대이다. 신들이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홍익인간들끼리 머리 맞대고 의논하면서 뭔가 세상에 큰 일을 하려 할 때, 여기에서 큰 힘을 다 쏟아준다.

홍익인간 1대들이 너희들이 뭔가 움직여서 할 때까지, 신들이 안 도와준다. 너희들이 뭔가 해야지 일이 일어나고, 너희들이 해야지 문제가 해결된다.

도량은 도량주가 찾고 공부한 법을 전부 나누어서 가족이 되어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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