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가 수행을 하는데, 미련한 수행, 똑똑한 수행, 약삭빠른 수행, 우직한 수행, 심플한 수행, 무식한 수행 등 수행의 종류가 수없이 많다. 티벳 같은데 가면 무식한 수행들이 많다. 몸에다 피를 내가며 고통을 느끼면서 수행한다고 하질 않나, 도로 위에 절을 하면서 온 몸을 미니 온 몸에 피가 나는 것을 수행이라고 하질 않나, 가시 있는 줄기들을 묶어서 등과 온 몸을 막 때리면서 몸에 피를 내면서 수행한다고 하질 않나, 이러면서 고통을 통해 뭔가 찾아낸다고 상처투성이를 만들면서 무식하게 수행한다. 이런 고행수행들은 다른 나라에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 대한민국에 들어온 수행이다.
이 중에서 홍익인간이 되기 위한 천손들의 수행은 염연히 다르다. 이 민족 수행은 깨끗한 수행을 해야 한다. 고행이 수행이 아니다. 고행은 뭐냐? 너가 고집이 세면 고행길로 들어간다. 또는 내가 타고날 때 고행을 시키면서 자라나오게끔 하는 케이스도 있다. 고아로 자란다거나. 부모 없이 고아로 지내면 관리없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내가 직접 접해서 내가 이겨나가야 한다. 이렇게 커서 청년기에 가서 대자연에 감사해하면서 가느냐, 원망하면서 가느냐를 보고 떡잎을 알아보는 것이다. 조금만 어렵게 해도 막 원망하는 사람이 있고, 어려움을 내가 스스로 이겨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좋은 조건을 주면 여기에 빠져서 흔들리는지, 또 다른 좋은 환경에 가서 흔들리는지 본다. 흔들리는게 약삭빠른 것인데, 이런지를 대자연이 항상 보고 있다. 약삭빠르고 이런 것을 보니, 아 너는 몇급짜리 이렇게 결론이 나는 것이다.
이 사회에서 네게 주는 모든 환경이 다 수행이다. 어떤 사람은 신, 능력 이런 것에 욕심이 있다보니, 어떤 사람이 이렇게 하면 된다 하니 끄달린다. 이것도 흔들리는 것이고 약삭빠른 것이다. 어떤 사람은 100일에 들어가야 된다고 하니, 욕심이 있으니 거기에 흔들려서 따라하고, 돈내고 굿을 해야 한다니 그렇게 따라한다. 이런 신줄의 능력들은 신통으로 오는 것이지, 나의 자아수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우리 나라 국민들은 다 신줄 물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 물고 있느냐만 다를 뿐이다. 그래서 여기가 신의 천국이다. 밑의 70% 백성들은 일반 밑의 일을 할 수 있는 신줄만 와 있으니 성실하게 일을 한다. 하지만 위의 30%는 특별한 신들이기 때문에 자기만의 소질에 따라 리더를 만들기 위해서 신이 와있기 때문에, 상위 30%는 리더공부를 시킨다. 지도자 공부이다. 지도자를 만드는 신들은 신들의 급수가 다르다.
그래서 지식을 갖추면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신빨이 잘 안 온다. 왜? 급수가 높기 때문에 함부러 신빨이 턱턱 내리는 것이 아니다. 너가 지식을 무던히 갖추면서 실력을 쌓아가다보면, 저절로 때가 되면 신들이 동참해서 그 실력이 나오고, 그런 재주가 나오고, 힘이 나온다. 이것이 지식인들의 힘이고 지식인들의 신빨이다.
그런데 이걸 모르면서, 지식을 갖추는데, 저 사람들은 영적인 재주가 있어서 막 이렇게 저렇게 하는데, 나는 이게 뭐고? 자꾸 이러고 있으니 그런 것에다가 자꾸 끄달리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그런 것 해보려고 간다. 지식인은 지식을 갖추는 것이 최고의 신빨을 받는 것이다. 내가 지식을 다 갖추면, 갖추는만큼 언제든지 너의 서인들이 자동으로 자연스럽게 발복할 때가 온다. 그러니 무던히 내 지식을 갖추고 있으면 된다. 내 지식만 무던히 갖추고 있으면 다 알아서 될낀데,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이래서 시간낭비 해서 실력을 못 갖추고 실력도 안 갖춘 게, 신이 들어오면, 실력도 없는게 신을 받았으니 나는 짓이 얄팍하고 얕다. 그러니 신을 받으려 하지 말고 니 공부나 열심히 해라.
너에게 언제 발복하냐가 다 정해져 있으니, 욕심내서 생으로 발복시키지 마라. 다 실패한다. 그저 내 공부를 무던히 하고 있으면, 알아서 다 된다. 내가 아직 신이 발복안했는데, 나를 도와야할 것이 생기면, 인연으로 도반을 보내서 필요한 것을 다 전해준다. 인연이 오는 것도 신이 오는 것이다. 사람이 신이라, 사람 오는 것도 신이다.
영혼의 성장에는 맥이 있다. 대나무가 자랄 때 마디의 맥이 있는 것처럼, 30% 자랄 때 맥이 있고, 70% 자랄 때 맥이 있다. 29% 쯤 되어서 30% 가깡 되었을 때, 과도기에 여러가지 기운들을 받는다. 기운들이 여러가지 방향으로 뻗고 하다가 다시 자리를 잡고 맥을 넘어서 31%로 가서 또 주욱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무던히 꾸준히 공부하다보면, 맥이 딱 트일 때에는 어떤 인연을 만난다. 신이 발복을 안할 때라면, 이렇게 사람 인연을 준다. 그래서 내가 이 인연과 잘 의논도 하면서 서로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주고 받으며 가다보면 맥이 또 트여서, 또 새로운 마디로 가면 된다.
이렇게 진행되는데, 자꾸 저것만 신줄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때가 되면 어떤 사람이 와서 내가 모르는 것들을 따주기도 하고 알려주기도 한다. 맥에 다다랐을 때는 이런 공부들이 오는데, 이를 참신히 하면,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 “아~ 예~” 하면서 다 받아놓고 나면 이 사람들 다 가버리도 또 조용해진다. 이 때 조용할 때 내 수행이 들어가니, 그 때 들어놨던 것들이 톡톡톡톡 터진다. 뭔가 지식이란 것이 들어왔으면, 지금 바로 터지는게 아니라, 안에서 문리를 일으키는데 걸리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잘난척하지 말고 다 귀로 받아놓고 흡수하고 있으면, 내가 평온히 있을 때, 다 문리가 터진다. 그래서 수련이 높아진다. 내가 커야 돼. 내 자신을 발복시키고 키워 놔야 대자연의 어떤 기운도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내 자신을 아주 내공이 크게 기운을 만들어놓으니, 또 동시에 내 마음에니지가 6006혈로 대자연에 모두 프리볼트로 연결하고 있으니, 내가 대자연의 기운을 못 쓸 것이 없다. 그런데 내가 내공이 없으니 마음에너지를 못 쓴다.
신들이 어찌하던 놔두고, 나를 키워라. 이것이 정의 길이고 도의 길이다. 내 자신의 정도의 내공만 쌓아놓으면, 대자연의 어떤 신들도 내가 움직이면 움직이게끔 되어 있다. 내가 신을 움직인다. 그렇게 신들에게 힘을 써야지, 신들에게 무릎을 꿇고 있다.
도의 정도 길을 가다보면, 오만 것이 다 있는데, 이것을 전부 접하면서 가는 것은, 가는 길이니 있는 것이지, 그런데 사도는 잘못 한번 맛을 보면, 여기에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칼을 주니 칼을 휘둘러보는 것도 괜찮아. 재밌지. 오 촥 나가네? 문제는 이리 놀다보면 해는 저물고, 니 인생이 끝난다.
그러니 우리가 기초없이 수행을 하다보면, 이렇게 빠져서 인생과 시간을 낭비한다. 사도에 머물다 왔구나 이렇게 된다. 바르게 공부하다보면 정도는 너의 생활 속에 있느니라. 자연이 준 너의 환경, 너의 생활에 불만하지 마라. 이것은 자연이 정확하게 너의 근기와 너의 과거 업장과 너가 앞으로 걸어나가야 될 모든 것을 고려해서, 이 환경 안에 넣어서 공부시키게 해주는 것이다. 이를 다 받아들이면서 순응을 하면서 가면, 30%, 40% 50% 내공이 갖춰진다. 70% 내공이 찻을 때, 힘을 쓸 수 있는 발복이 됐을 때, 세상 만물의 영장이 되는 것이다. 자연의 힘을 너가 스스로 쓸 수 있어야 너가 자연의 주인이 된다. 내가 뭔가 구걸하는 것은 비굴한 것이지 너의 인생이 아니다.
인생은 시간이 짧다. 다 해도 100년 안팎인데, 다른 것에 빠져서 가다가는 내 갈길을 못 간다. 우리는 마지막 인생인데, 이 마지막 인생 중에서도 마지막 2-30년을 어떻게 사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마무리를 잘 하면 중간의 과정은 뭘 했던 다 거름이 될 수 있다. 마무리를 잘 못하면 모든 과정과 내 인생이 개판이 된다. 이게 중요하다.
아무리 인생을 잘못 살았더라도 내 육신이 있는한, 대자연이 기회를 계속 주는 것이니, 살아있는 동안에는 기회가 있다. 항상 노력하고 찾고 하면 노력하는 자는 꼭 얻는다. 노력하는 자는 하늘이 스스로 돕는다. 그런데 뺸질뺀질한 자는 맨날 뱅뱅 돈다. 내가 노력하면 인연법을 통해서 내가 필요할 때마다, 적소적재에 나타나 다 잡아주고 한다.
정도는 누가 내놓느냐? 홍익인간들이 모든 지식을 다 흡수한 다음에, 정도정법을 내놓을 것이기 때문에, 아직은 이것이 나오지 않았다.
어떤 형제가 오면 어떠한 것에 시달렸으니 그것을 물을 것이고, 그것을 풀어줄 것이고, 가시가 어디에 박혔으니 그것을 빼줄 것이고, 전부 다 이렇게 계속 법문이 나올 것이다. 나오는대로 흡수를 하면 우리는 여기에서 탁탁탁 다 꿰게 되어 있다. 내가 막히는 에너지가 따질 때마다 내 에너지가 달라진다. 이것을 아직 경험을 안해봤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하나를 따니 날아갈듯이 가볍고, 또 혼자 노력하다가 무게가 쌓이고 답답한데, 누가 따주니 또 날아갈듯이 가볍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가벼워져서 내가 완성이 되어가는 것이다.
주가 되는 사람은 누구한테 배우는 사람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 형제들은 전부다 누구한테 배워서 또 하나 열고, 누구한테 배워서 좀 더 크고 이렇게 간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분들은 죽을 고행은 안 시킨다. 나는 법주이기 때문에 나의 수행법이 또 다르다.
법주는 어려서 자랄 때부터 남의 것을 접하고면서 옳니 그르니 하지 않는다. 세상이 만든 잣대에 거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왜? 이 세상에 새로운 법을 탄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행, 수행 방법이 아예 틀린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수행하는 것이 일반인과 틀리다. 모든 것을 다루어서 자연과 왕래할 수 있는 이러한 깨끗한 마음을 내가 가질 것인가? 이것을 수행시키는 것이다.
하나씩 지식을 배우는거 말고... 자연에 이미 백과사전으로 다 자료가 있는데, 뭘 지식을 하나씩 배워서 통달할 것이라고... 그럴 수도 없다. 나를 깨끗하게 맑히고 나면, 내 영혼은 자연을 왕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모든 자연의 기운을 다 끌고 왕래하기 때문에, 필요하면 자연에 가서 다 훑어보고, 에너지와 에너지끼리 교류를 해서 이것을 흡수해버리면 되는데, 뭐하려고 여기에서 글을 배우고 누구한테 지식을 배우려고 하겠냐. 자연의 있는 모든 정보의 판을 내게 땡겨오는 이런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나를 안 맑히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는 알음앓이로 내가 고집을 부린다. 그런데 정법을 들으면 이것들을 이해시켜서 이 고집들이 열린다. 그러니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스스로 이뤄진다. 사람은 이해가 안 가면 남의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나 나름대로 똑똑하고, 상대는 상대 나름대로 똑똑하니 이를 존중하고, 존중 속에서 서로의 에너지가 교류가 된다. 나 하나의 에너지는 미약하나 상대의 에너지가 융합되니 강해진다. 또 다른 에너지를 만나게 되고, 그것을 흡수하게 되고, 이것도 아직 미약하나, 또 다른 에너지가 오니 이것을 흡수해서 융합을 시키니, 질량이 좋은 에너지가 된다.
우주에도 저 별이 탄생하기 위해서 수많은 쓰레기 같은 에너지들을 끌어모아야 한다. 이를 포용해서 가야만, 너도 아주 좋은 질량의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탁하고 가스 구름, 먼지 구름 같은 것들을 내가 소화를 못 해내면, 저 별처럼 영롱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핵이 안 만들어진다.
사람을 받아들일 때는 저 사람에게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다. 정사, 장단점이 항상 같이 함께 복합되어 있는 것이 사람이다. 이 사람을 흡수할 때에는 장점은 서로 잘 흡수하지만, 단점은 서로가 노력해서 그 사람에게 도움되게 해서 가야만 한다. 장점만 홀랑 빼먹고, 단점을 하나도 경험을 안 할 순 없다.
친구를 사귈 때에도 굉장히 신중해야지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것이지, 외롭다고 손잡고 흔들면서 친구하자고 하면, 이 사람의 단점도 모르고 천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친구하자고 한 것이다.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의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는데, 이 사람의 단점을 내가 소화해줄 수 있는가? 이런 것을 면접을 봐야 한다.
좋은 것만 서로 보여주고, 대화하다보니 서로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어 덜렁 결정했는데, 단점은 나중에 나온다. 이를 내가 뒤통수 맞았다고 당했다고 한다. 니가 처음부터 신중하게 면접을 안 봐놓고 남탓한다.
누구를 만나도, 사람은 처음에는 장점만 이야기하고 좋은 점만 말하지, 단점은 절대 말 안한다. 그러니 좋은 점을 말 할때, 가만히 잘 들어줘라. 다 듣고 끝이 아니라, 이제 단점을 이야기해보시오, 이렇게 단점을 끌어내는 것도 내 실력이다. 분명히 단점이 있다. 단점이 없으면 지가 다 해먹었지 여기로 왜 오냐. 단점을 보고 이것을 내가 해결할 수 있는가? 이 능력이 되면 내가 맡는다.
공사를 바르게 하면 절대 어긋나는 일이 없다. 면접을 잘 봐야 한다. 처음에는 좋은 장점만 보여주니, 이것이 30%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했을 때 어려운 것은 없겠나 해서 단점을 다 끌어내면 이것이 30%이다. 나머지 40%에서는 그래서 우리 능력으로 이 단점들을 해결해갈 수 있겠는가? 이 분량이 분명 포함되어 있다. 나의 기술, 재주, 주위 인맥, 만들어놓은 인프라 등을 갖고 이것을 소화해낼 수 있겠는가?
이것을 본다. 이것 같으면 내가 처리할 수 있겠다. 이것만 처리가 되면 장점은 내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면접을 봐야 한다. 처리도 못할 놈이 장점만 보고 확 잡아버리면, 이 장점이 결국 니 것이 되겠나?
사람 뿐만 아니라 일을 맡을 때에도, 다 보고, 이런 장단점을 다 보고 내가 이런 단점들을 소화할 실력이 되는가? 아닌가? 이를 잘 보고 맡거나 물러나거나 하면 하나도 실패를 안 한다.
자연의 법칙은 3:7이 안 담긴 것이 하나도 없다. 왜? 우주 생성 원리가 3:7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3차원에 있다. 70%를 어떻게 만지는가? 3차원에 있으면서 30%는 신들이 해주겠지만, 70%를 어떻게 만지는가? 이것이 우리 실력으로 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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