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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3000

[2449,2450,2451] 스승님의 생사 초월 수행 (1,2,3)

by 웰빙원 2025. 11. 25.

죽음을 수십번 오간 것은 액면 그대로 죽음을 말한 것이다. 실제로 나는 죽었던 것이다. 굶어도 죽었고, 노다지 죽었던 것이 굶어 죽은 것이다. 쌀이 없어서 굶어 죽은 게 아니라, 있어도 굶어 죽는다. 처음에는 없어서 굶어죽고, 나중에는 있어도 굶어죽었다.

처음에는 곡기와 물을 끊어도 20, 40일이 지나도 안 죽는다. 배에 축적된 기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7-8번 죽으면 나중에는 3일만에도 죽는다. 누가 살려놓아도 살려놓는다. 그러면 제일 먼저 찾는게 밥도 아니고 물이다. 물을 딱 뜨는 순간, 꺠치는 것이다.

목숨을 안 걸고 하나를 깨칠 것 같았더냐? 죽을 노력도 안 하고 깨치는 법이 있냐? 이는 나중에 수행이 끝나고 안거지. 죽는 것을 겁을 내서야 어떻게 꺠치나. 근기마다 수행이 다르다. 나는 죽음을 걸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근기이지만, 다른 사람한테 붙어서 뭘 이야기하면서 하는 재주는 없어서 이렇게 공부를 못 한다. 다른 사람은 이런 재주가 있다. 나는 타협이 안 되니 이런 재주가 없다. 근기마다 수행법이 틀린 것이지 누가 낫다가 아니다.

수행단체에 가니 이렇게 하라고 하니 내가 그대로 따라했잖아요? 이는 내 수행이 아니다. 부처의 수행이 이랬다 하니, 다 이를 따라한다. 너의 수행과 부처의 수행이 어떻게 같냐? 달마 수행과 너의 수행이 다르다. 태어난 장소도 시대도 다르다. 모든 사람들이 근기가 다 다른 것은 물론이거니와 시대조차 다른데, 왜 다 같은 방법으로 수행하려고 하냐.

지금은 지식이 홍수 같은 세상이다. 이 시대에는 지식을 모두 갖다 넣고, 흡수한 다음에 하는 것이 수행이다. 과거의 희생하면서 일어났던 모든 지식을 다 흡수하고, 다 뒤져봐도 없는 것을 따로 더 노력하면서 수행하는 것이지, 세상에 다 내놨는데, 이는 멀리하고 왜 생으러 하려 드냐.

이만큼 지식이 나왔다면 지식만 바르게 쓸어마셔도 여기에서 바른 문리가 일어난다. 이런 문리는 과거 달마나 부처보다 천배나 훨씬 높은 지혜가 열리는 것이다. 수행이 뭔지, 목적은 뭔지 모르고 수행하고 있다. 다들 접신해서 재주 들어온 것을 수행의 결과라 한다. 이는 신기라 하는데 전혀 수행과 관련 없다. 수행과 깨달음과는 전혀 상관없다.

수행은 많은 지식을 흡수하는 것인데, 지식은 내 앞에 있는 환경이다. 아주 어려운 환경이라도 다 흡수하는 것이 수행이다. 차원계를 열어서 보여주니, 이는 차원계 지식이 내 앞에 온 것이다. 그대로 흡수하는 것이 수행이다. 이런 것을 다 흡수해서 문리가 일어나야 나의 법이 나온다.

접신이 되어 신통하면 이떄부터 재주가 들어온 환경이 오니, 이 환경을 다 흡수해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보이는 것이 다르다. 이를 흡수해서 내 문리가 터져야 한다. 내가 기통을 하고 나면 기통하고나서 주어지는 환경이 달라진다. 이 때부터 진짜 큰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재주가 들어오고 나니, 나는 이 쪽에다가 궁전같은 도량을 지을 것이라고 세상 설계를 한다. 그 지랄하고나니 신이 뜨니 아무 공부도 안되고 실력도 없어서 실패한다. 신이 와서 접신되는 것은 특정시기까지만 네게 재주를 주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준다. 사람들이 어느정도 모였으면 신은 뜬다. 이 이후에는 100% 내 실력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근데 실력이 없으니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상한 사람으로 비춰진다.

수행이 이상한게 아니다. 사회 환경을 주면 사회에서 수행을 해야 한다. 준 환경에서 공부를 못하고 잘못 시간허비하면 더 악조건에다 데려다놓고 공부시킨다. 여기에서도 수행을 못 하면 더 악조건으로 간다. 여기에서도 못 하면 더 악조건으로 간다. 사회에서 그릇 씼는 사람도 악조건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산속 들어간지 12년이 지나고 13년차에 봄에 싹을 피는 것을 봤다. 이제야 세상이 보이는 것이다. 그전에는 어딘가에 몰두 중이라 안 보였다. 12년까지는 세상이 안 보였다. 딱 쓰레기. 밤에는 차원계 다녀오고 낮에는 쓰레기 줍고. 이것밖에 안 했다. 잠도 15분씩 2번밖에 안 잤다. 엄청 피곤할 때 2시간씩 재워줬다.

내가 바른 공부를 하고 있고, 여기에 집중하고 몰두하고 있으면, 그 외의 더운 것, 추운 것 전부다 자연이 알아서 다 해준다. 스스로 전부 견뎌나가고 이겨나가면서 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인간인 내가 하려고 달려들면, 자연이 안 도와주기 때문에 굉장히 고통이 따른다. 그런데 산에 100일 기도하러 간다고 하며너 100일치 먹을 것, 라면, 햇반, 과자 다 싸간다. 이건 산에 소풍 간거지 무슨 100일 기도냐. 빈손으로 100일 동안 기도하면서 죽을 각오로 기도해야지 100일 기도이지. 먹을 것이 없으면, 죽으면 돼지. 산에 소풍온다. 니가 다 가져왔는데, 산신이 너한테 먹을 것을 갖다줄 일이 없다. 빈손으로 가서 죽던 말던 100일을 하려고 하다가, 못 먹어서 깔딱깔딱 할때, 그럼에도 너가 타협하지 않고 하려는 그 진심, 그 마음을 본다. 그 첫 고비를 보려는 것이다. 너가 하고자 하는 정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실험하는 것이다. 산에 가서 굶어죽는 놈은 없다. 그런데 99% 우리는 다 첫 시험에 걸린다. 이러다 죽겠다 무서워서, 실실 내려가서 먹을 것 준비해서 온다. 너는 이미 근기가 깨졌다. 첫 고비를 보는 것이, 이런 근기를 다루는 것이다. 그래서 100일기도를 어찌됐건 하고 왔다. 자연에는 너는 이미 근기가 깨져서 안 한 것이다. 그러니 몇 년 안에 또 100일 기도 하러 간다. 매일 이 짓만 하면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묵언기도 100일 들어간 사람, 20년 후에 만나도 또 묵언기도 들어간다고 한다. 근기가 약해서 계속 딸린다. 30년이 지나도 한 단을 못 뛰어넘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혹은 근본을 알면 잘못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커가는 과정들이 있기 때문에 잘못을 해가면서 커가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빨리 이를 푸는가? 순응할 것은 순응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면서 또 더 나은 길로 가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지 잘못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잘못한 것에 내가 묶이면 안 된다. 계속 죄책감에 빠져 있으면, 에라이 이 놈 하면서 더 후들려 팬다. 여자들이 우는 것도 조금 울어야지, 계속 질질 짜고 울고 지랄하면, 딱 보기 싫어져서 더 때려버린다. 자꾸 울어서 상대한데 부담을 주면 되는가. 빨리 탁 잡고 탁탁 또 나가고 이래야 이쁨받지, 지 좀 좋아한다고 계속 질질짜고 지랄하고 있으면 대빤 쫓아내버려야 한다. 심장충격도 강약 조정해가면서 잠깐 해야지, 계속 누르고 있으면 죽는다. 약을 먹을 때도 잠깐 먹고, 또 놓고 또 이렇게 해야지. 강약의 조절을 잘 해야지, 한 가지만 곰파면 다른 것을 다 잃어버린다. 볼링을 할 때도, 계속 볼링만 하면 막힌다. 등산도 가고 어디 좀 돌아다니다가 와서 또 볼링하면 실력이 또 잘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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