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001-4000

[3114,3115,3116] 신불산 ‘수행처의 의미’ (1,2,3)

by 웰빙원 2025. 11. 25.

이런 산속에서 오랫동안 수행을 했다고 하니 대단할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와서 여러분들이 생각해야할 것은, 나도 고집불통이 되면 이런 곳에 쫓겨와서 공부해야 된다.를 알면 된다. 내 고집이 강하면, 오갈데가 없어지고, 이런 산속에 들어와서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야 한다.

사람에게는 인연을 많이 주는데, 이것이 내가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오는 성불이다. 이런 많은 인연들과 내 방법으로 안된다고 내 고집이 세던지, 내 방법으로 안된다 해서 짜증을 내던지, 남탓을 하고 산다던지 이렇게 하면서 버릇이 잘못되면, 내 인연들이 전부 마음을 닫고 나를 떠난다. 떠나버리면 내가 외로워진다. 사람들과 자꾸 상충을 치니, 나는 거기에서 쫓겨나게 된다. 쫓겨나면 오갈 곳이 없어진다. 그럼 할 수 없이 내가 찾아 들어가는 곳이 수행처라고 한다.

수행처라 하니 나는 세속을 포기하고 수행하러 갔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 좋은 환경도 버리고 수행하러 갔다고 하는데,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절대 이런 법은 자연에 없다. 나는 어떤 아주 부자 집안의 아들이고, 왕 집안의 왕자인데, 수행을 하기 위해 내게 준 모든 이런 조건을 다 접고 수행하러 갔다? 절대 이런 법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쓰일 곳이 없어서 쫓겨나서 어쩔 수 없이 찾아가는 곳이 수행처이다.

산속 뿐만 아니라, 사찰도, 수련도파도 수행처이다. 이런 조직에는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여기에 맞는 규율이 있다. 여기에 맞게 안 하면 또 쫓겨난다. 더 조그만 몇 명만 있는 절에 간다. 이 사람들과 맞출 수 없으면 또 쫓겨나니, 혼자 산에 가서 혼자 외톨이로 수행한다. 이것이 수행처의 의미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니 고집과 너의 주장이 그렇게 세다. 남의 것은 인정을 못해주고 계속 부딪친다. 그래서 쫓겨난다.

그래서 산 깊은 속에 수행을 한다. 아 그만큼 멀리 쫓겨났구나라고 보는 것이 정상이다. 수행처가 마을하고 조금 가까울수도 있는데, 여기에 조차에서도 너가 밀려나서 더 깊은 곳에 들어갔다. 쫒겨난 것이다. 쫓겨나서 수행해서 나오는 사람이 있고,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는 사람이 있고. 수행을 한다면 여기에서 내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내 자신은 못 속이니까. 내가 왜 이 지경이 됐는가? 이것을 꺠우치기 시작한다. 나 자신을 꺠달아야 한다. 나의 아상과 나의 잘난 척, 이 모든 내 잘못을 깨우쳐야 한다. 이것을 알고 나는 것, 내 모순들을 아는 것, 뉘우치는 것, 이것이 깨달음이다.

이렇게 나를 깨달으니, 이 깨달음을 갖고 수행에 들어간다. 수행이란 철저히 내 자신을 낮추고 나한테 있는 못난 모순을 철저히 걷어내는 것이 수행이다. 내 모순이 뭔지 깨닫지 못하면 수행에 들어가지 조차 못한다. 그냥 깊은 산 속에 쫓겨나서 살고 있는 것이지, 수행하고 있는게 아니다.

깊은 산에 있으면 나를 찾을 수 있다. 사람들과 관계를 안 하다보니, 이제 사람이 그리워지고, 사람을 알기 시작한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사람들과 항상 같이 있기에 그런 생각을 못 한다. 사람 없이 혼자 지내니, 내 잘난척 안해도 되지, 내 모순 안 나오도 되지, 하면서 내 시간이 많다. 다람쥐도 와서 나와 안 놀아준다. 외로움 속에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때 깨닫는다. 꺠우치고 나면 도술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 못남을 깨우치는 것이다. 못난 것을 깨닫고 나니, 내가 너무 미안하고 나의 못남을 알게 된다. 이 때서부터 자아수행이 들어간다.

수련과 수행은 틀리다. 수행은 나의 자아수행을 하는 것이다. 수행은 신하고도, 도술하고도 아무 관계도 없다. 수행은 나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내 자신의 모순을 찾아서 이를 깨부셔야 한다. 내 자신의 철저히 못남을 드러내고, 나의 아상을 드러내고, 건방짐을 드러내고, 기운이 세던 것을 철저히 낮춘다. 바닥까지 끝까지 낮추고 3년만 노력하다보면, 내 버릇이 다 바뀐다. 깨끗해진다.

사람은 누구든지 내 모순을 발견하고 정확하게 3년을 바르게 노력하면 180도 바뀔 수 있다. 기운이 맑아지고 깨끗해진다. 깨끗해지면 이 때 산은 산으로 보고, 물은 물로 본다. 깨끗해 졌을 때 보인다. 깨끗하니 자연이 스스로 티없이 보인다. 사람을 보니, 사람이 사람으로 보인다. 동물을 보니, 겁나고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동물로 보인다. 누가 내게 말을 하니, 이를 깨끗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니 그 말들이 스스로 내게 융합이 된다. 이것이 깨달은 사람이다. 깨달아서 자기 모순을 걷어내고 수행을 한 사람. 이 사람은 사람들을 깨끗이 대한다. 사람을 깨끗이 받아들이면 어떤 이점이 있냐? 내가 갖고 있는 에너지와 상대가 갖고 있는 에너지가 융합이 된다. 이러면 힘이 배가가 된다. 지식의 논리가 나오는 게 아니라 지혜가 나온다. 남이 말하는 것이 깨끗이 내 안으로 들어와서 융합이 되어야 진리가 나온다.

내게 힘이 엄청 많이 있어야 되는게 아니다. 나는 나한테 주어진 기본 힘만 있으면 되는데, 여기에서 타의 힘이 내게 들어올 때, 이것이 융합되어 기운이 커져야 한다. 내 인연으로 온 사람이 말을 하는데, 내가 깨끗하게 받아주니, 이것이 융합되어 힘이 더 좋아지고, 지혜가 스스로 열리고, 이 힘이 안에서 스스로 작용해서, 내가 말을 할 때는 진리가 나온다. 작은 진리이지만 이렇게 나온다. 이렇게 자꾸 사람을 대하니 커진다. 사람 사람 마다 다 내 에너지로 바뀌니, 내가 자꾸 커지는 것이다.

인간이 말하는 에너지는 이 우주에서 제일 질량이 큰 에너지이다. 그래서 최고 질이 좋은 질량일 수도, 최고 독이 되는 질량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이란 존재가 우리가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다보니, 우리가 일상처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질량이 큰 것이고, 얼마나 자연에 피해가 될 수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이는 내 마인드에 달려 있고,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질량을 키워야 한다. 내 질량이 깨끗할 때에는 내 질량이 클 수 있다. 내 질량이 탁할 때에는 내 질량이 크질 못 한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 내 고집이 세고, 내 주장이 세고, 내 방법이 옳고, 남의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내 에너지는 자꾸 소진이 되고 나는 자꾸 어려워진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인연이 있을 때에는, 내가 엄청난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인대도, 이를 받아들일 줄 모르고 쓸 줄 모르니, 들어오는 에너지는 엄청 많은데, 이를 어떻게 쓸 준 모르고, 내 힘으로만 살려고 하니 가면 갈수록, 힘들다. 우리는 한해 한해 질량이 엄청 커지는 사회를 살아야 하는데, 내 질량이 크질 못하면 이를 따라갈 수 없다.

산에 수행자는 세상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다. 내가 너무 잘난척하고, 내가 옳다고 하고, 힘이 있다고 내 방법대로만 하다보니 결국 사람들하고 멀어지고 혼자가 된다. 진정 수행을 하고 있는지 산 속에서 먹고 살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기도원가고 절간 가고 이런 것들이 전부 사회에서 쫓겨난 것이다. 거룩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을 그냥 내버려둬야 한다. 언제 이들을 보느냐? 말을 한마디 해도 내게 이로운 말을 할 때, 이 때 이 분을 보면 된다. 내게 이로움이 되기 전에는 절대 그 사람들을 크게 보지 마라. 그들을 거룩하게 보면 그들의 공부를 망치고 나쁜 버릇 다시 들게 해서 결국 또 사회를 망치게 한다. 사회에 도움 되는 것 같이 하지만, 결국 사회에 악이 된다.

종교가 어떻게 커졌냐? 어렵고 아픈 사람들이 찾아오니 이 사람들에게 돈을 걷었다. 그래서 커진 것이다. 그래서 이 힘을 바르게 이용했으면 뭐라 할 일은 아니나, 이를 바르게 못 쓰니, 결국 어려운 자들은 더 어렵게 됐고, 종교만 배불려준 꼴이 됐다. 종교지도자들은 왜 신도들이 어려워졌을까를 연구해서 이 사회를 이끌어주는 역할인데, 이를 못하고 있다. 아파서 온 환자나 신도들의 데이터들을 하나도 안 만들었다. 그래서 연구를 할 수 없다. 이런 해야할 의무는 안하고 주기도문 외워오세요만 30년 했다.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지 기록을 하나도 안 해놔. 이런 자료들을 몇 십년 모으면, 이 사회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있는 연구자료가 된다.

인간관계, 사회관계, 갑을관계 이 모든 것은 천부경에서 인극에 해당된다. 내가 이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나도 내 모순을 다 닦고보니, 대자연과 하나가 되어 모든 우주의 역사를 짧은 시간에 다 배울 수 있었는데, 그것이 결국 다 자연의 섭리인 천부경을 배운 것이었다.

상대를 위해 살면 나는 절대 어려워지지 않는다. 반면 내 욕심으로 살면 내가 어려워진다. 우리는 안 해봐서 상대를 위해 사는 게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데, 반대이다. 상대를 위해 사는 것이 쉽고, 나를 위해 사는 게 어렵다. 상대를 위해 사는 것은 상대를 아낄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인연을 만났다면 그 인연을 아껴야 한다. 이 마음만 가지면 그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는 힘은 스스로 나온다. 대자연, 천신은 내가 1사람을 이롭게 하면 2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는 분명 준다. 사회를 이롭게 하면 더 많은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는 힘을 분명히 준다. 힘은 배가수로 준다.

100명을 이롭게 했으면 200명을 이롭게할 힘을 먼저 준다. 그리고 200명의 인연이 내게 오는 것이다. 그러니 아끼고 사랑하라. 그런데 내 앞의 사람을 아낄 줄 모르고 욕심으로 내가 잘 살려고 드니까, 내 마음대로 안된다고 짜증내고, 옆으로 틀고, 그러니 자연의 힘을 받을 수는 없고, 나는 갈수록 힘들어진다. 내가 어려우니 남을 탓하고, 남을 탓하니 내가 더 어려워진다. 또 남을 원망하고, 그러니 힘이 더 없어진다. 자연은 이렇게 운영을 한다.

이 대자연에는 천,,인의 법계가 있으니, 천은 스스로 있는 대자연의 에너지(하나님)이고, 너희들은 항상 천과 같이 있다. 천과 떨어져 있을 수가 없다. 지는 지상에서 빚어낸 에너지이다. 육신도 포함된다. 그럼 너는 누구냐? 인기이다. 영혼이다. 동물은 지기로만 만든 것이다. 천지기운으로 빚어서 만든 것이 동물이다.

너에게 주는 인연들을 이롭게 하고 살라. 그럼 너의 영혼이 가벼워지느니라. 그래서 천상에 가야 되는데, 100년 안팎의 시간에 내 방법대로 안된다고 짜증내면, 니 영혼이 잘도 맑아지겠다. 탁하고 더 무거워진다. 그러면 욕심과 집착에 메여 구천을 벗어나질 못한다. 육신으로는 100년 안팎을 사는데, 영혼으로는 천년 만년을 떠도니 이는 무서운 일이다.

하늘은 노력하는 자는 절대 어렵게 하지 않는다. 내가 잘못 가르쳤는데, 여러분들이 노력을 열심히 했다면, 나는 천벌을 받지만, 여러분들은 성불을 본다. 노력안하고 게으른 자, 욕심을 내는 자는 성불을 줄 수 없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