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보 되라 한 것은 수행자들에게만 말한 것이다. 수행자와 일반공부자의 공부는 다르다. 수행자는 능력 받으려는 자를 말하는게 아니다. 수행자는 자기 못남을 수행하는자다. 수행자는 나를 갈고 닦는 수련을 한다. 내 자신을 갈고 닦아서 길을 찾아 나가는 사람이다. 수행자도 종류가 있다.
사회에서 활동하고 생활하면서 지식을 갖추는 사람들이 있고, 정신적인 공부와 수도를 하면서 자연의 법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3년간 아무리 화가 나도 바보가 되라고 한 것은, 정신적인 공부하면서 자연의 법칙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말한 것이다.
그럼 사회(?)(”자연에서”인 것 같다)에서 활동하면서 수행하는 자들은 누구냐? 실패자들.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똑똑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늘에서 기운을 줘서 세상이 보이고, 미래가 보인다. 모르면 등신인데, 보이니 똑똑한 것이다. 남이 알기 전에 내가 안다. 아니 처리하는 방법도 아냐? 알기만 하고 처리방법은 공부 안해서 실력이 없다. 처음에는 처리가 되는데, 점점 질이 높은 미션이 들어오니, 내 논리로는 안 먹힐 때가 온다. 처음에는 자연이 이끌어주고, 미션 질도 낮으니 이는 되는데, 미션 질은 2단계로 높아지니, 내 논리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왜? 너는 너를 갖추지 않고, 너의 보이는 감각, 똑똑함만 갖고 자꾸 쓰고 있지 않느냐? 노력은 안하는데, 똑똑한 것만으로 일을 처리하는데 한계가 있다. 똑똑한 놈들이 공부를 안 한다. 일이 처리 안 되면, 내가 점점 어려워진다. 사람관계도 일인데, 이것부터 안 좋아진다. 앞에서는 티를 안내지면 뒤에서는 나를 돌아서고 있으니, 나는 오갈곳이 없고 외로워진다. 어려워지니 다시 나를 만지려고 수행을 하려고 산이나 절에 기웃거린다.
여기에서 공부할 주제는 딱 1개이다. 왜 일이 다 안되냐? 남을 생각하지 않고 너의 생각으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뭔가 맞추어서 하는게 아니고, 너의 논리로 니 방법으로 접근하니 지금 안 되는 것이다. 일은 상대에게 맞게 해야 잘 되게 되어 있다. 일은 항상 상대성 원리로 풀리기 때문에, 내 방법이 아니라 상대에게 맞는 방법으로 가야 풀린다. 내 혼자 답을 갖고 있는 것이 나 혼자 있으면 답이 맞다. 진짜 맞다. 틀린게 아니가 니가 실제로 자연적인 관점에서도 맞다. 그런데 이를 상대에게 쓸 때는 이게 상대에게 답이 아니라니까. 이 우주 법계는 상대성의 원리로 뭐든지 변하는 것이 순리이다.
즉, 내가 사람을 만나면, 내가 갖고 있던 답이 그 사람의 질량에 맞게 변해야 이것이 답인 것이다. 너는 똑똑하지만, 너는 아직 상대를 모르지 않냐. 상대를 모르면 아무리 내 논리로 잘 설명해도 일이 안 풀린다. 그래서 지금 어려워진 것이고, 다시 수행하려고 하고 공부를 새로 하려고 한다. 그러니 정확한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3년 동안 입 닫아라. 아는 척 하지 마라. 그건 너한테 맞는 답이지 다른 사람에게 맞는 답이 아니니라. 입 닫고 그 사람이 틀리게 하던 바르게 하던 보고만 지나가라. 토를 달지도 말고 답이라고 꺼내지도 마라. 3년간만. 아무리 옳고 그른 것이 보이더라도 그냥 보고 흡수하고 지나가라. 아무리 질이 낮고 탁하고, 잘못된 것도 다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것만 딱 3년간만 공부해라. 옳다는 생각도 밖으로 꺼내지 말고, 생각으로 그치고 또 흡수해라.
이렇게 하면 상대를 알게 된다. 여기는 3차원이라 3년만 내가 자연의 법대로 가면 모르던 것도 정확하게 알게 된다. 상대를 안 다음에 일을 처리해야 일이 되지. 너의 앞에 너의 질량에 맞게 공부를 다 보내주니, 이것을 그냥 말없이 쓸어담아라.
3년, 3년, 3년 이렇게 바르게 공부해서 10년을 하면 몇명을 돕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만지고 신들을 만지고 인류를 만지고 모든 정신세계를 만질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대승불이다. 이 분이 바르게 공부하고 세상에 나오면, 세상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을 해결하는 지혜를 쓰기 시작한다.
내가 저 사람보다 위가 되려면 저 사람의 아픔을 내가 전부 해결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저 사람이 이해를 못하는데 맞다고 우기면 윗사람이 아니라 아랫사람이다. 이래서 자꾸 내가 신용을 잃고 어려워진다.
나를 갖춰라. 나를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으면, 그 질량만큼 인연이 정확히 온다. 수행은 힘을 얻기 위해 하는게 아니라, 나의 자아수행이다. 나의 잘못, 모순을 깨닫는 것이다. 내 모순들을 전부 찾아서 전부 정리하는 것이 수행이다. 이런 것이 모두 정리되고 나면 탁한 것이 없고 고집이 없고 맑아서 자연은 스스로 대한다.
사람을 만나는데 사람이 누구냐? 자연이다. 탁한 사람이 와도 그것도 탁한 자연이다. 이를 대할 줄 안다. 저 사람의 탁한 것을 내가 녹여줄 수도 있다. 자연에 스스로 깨끗하게 접하니 무엇이든 답을 다 찾을 수 있고, 이 힘을 쓰니 이미 대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더라. 수행을 마쳤다고 하는 자는 도술을 갖는게 아니고, 아무것도 안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 자아수행을 마치고 나니 가지고 있는 것도 아무것도 안 가지고 있는다. 자연이 되어 버리는 것이라, 자연의 힘을 스스로 쓸 수 있게 되어 버린다.
내가 너를 위해서 사니까, 너를 위해서 살면 자연의 힘을 그대로 쓸 수 있다. 나를 위해서 살면 자연의 힘을 못 쓴다. 그래서 안 되는 일이 없다. 내가 상대를 위해 노력하니, 상대는 내 말을 따라주기면 하면 다 이뤄진다. 그럼 이해를 잘만 시켜주면, 이해가 되니 예 하고 바로 따라하니 뭐든지 다 해결된다. 너가 아프지 않느냐? 아프니 이렇게 이렇게 하거라. 예 하고 따르니 아픈 게 없어진다. 이게 자연의 법칙이다. 도술과 접신재주가 들어온 것은 임시방편이지 언젠간 소멸되며, 자연의 힘을 쓰는게 아니다. 법으로 들어가는 것은 나자체를 바꿔가는 것이기에 소멸되지 않는다.
수행은 자아수행을 하는 것이고, 수행에서 너의 모순을 찾는 것이 1단계이다. 그래서 깨닫고 나면, 나의 모순을 씻어내기 위해 생활에서 노력하는게 2단계이다. 3년만이 노력을 하면 모순이 어느정도 다스려진다. 모순을 다스리고 나면 자연을 접할 수 있고, 자연을 접하면 자연의 힘을 깨끗이 내게 들어올수도 있고 나갈수도 있고 쓸수도 있고 자연과 하나가 된다. 그리고 이제부터 공부가 시작되는 것이다.
즉, 모순을 가지고는 공부자체가 안 된다. 모순을 갖고 있으면 모순을 갖고 자연을 계속 접하기 때문에 왜곡해서 보니 공부가 될 수가 없다. 수행처에서 바르게 공부시키는 것은 3년 동안 빗자루 주고 쓸어라 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정확하게 바르게 시키는 것이다. 허드렛일만 해야지 욕심을 내면 안 된다. 3년이면 하늘이 알아본다. 3년 내내 계속 보고 있지만, 그 초심과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으니, 깊게 알아보는 것이다. 이제 너한테 어떤 길을 열어줘야 되겠는가를 본다.
마당을 쓰는 것은 내 안에 모순, 불평, 잘못된 버릇을 청소하는 것이다. 왜 허드렛일을 하느냐. 다른 곳에서 잘난 척을 많이 했으니, 그만큼 허드렛일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잘난 척 많이 해봤으니, 이제 이런 일을 3년동안 해봐라 하는 것이다.
3년 동안 바르게 하면 이제 세상이 보이고, 나는 180도 바뀌어져 있다. 이것이 수행이다. 그런데 뭔가 도술을 받고 메세지를 받는 것을 수행이라 알고 있다. 이는 귀신 불러서 노는 것이다. 너 자신을 낮추고 아주 세상에 보이고 들리는 것을 그냥 받아들여라. 귀뚜라미 소리도 그냥 받아들여라. 새가 아침에 와서 우니 그것도 받아들여라. 꽃이 피니 그것도 스스로 받아들여라. 나를 낮추고 뭐든지 들어오는 것을 그냥 받아들여라. 이것이 수행이다. 그럼 너 자체가 바뀐다. 모순을 찾아려들지 않아도, 저절로 만져지고 저절로 바뀌도 다 된다. 3년만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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